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일러스트=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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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임이랑
로뎀나무 아래(2)

존재적인 죄인의 실상이 역사 가운데 충분히 드러났던 아합의 시대는 하나님의 특별한 종 엘리야라도 낙심시킬 만큼 절망적이었다. 로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 원기를 회복한 후 다다른 호렙 산의 굴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낙심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뿐인데 악은 더 창궐할 뿐, 어디를 둘러봐도 하나님의 백성은 보이지 않고 오직 엘리야 한 사람만 남은 것 같은 상황.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낙심과 두려움만 가득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5~16)

주님이 외면하시고 거들떠보시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지독히 외로워하며 로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호렙 산의 굴속에 은둔한 채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은 지쳐 무력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전까지 상실해 버린 한 사람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이든, 쏟아진 물처럼 스스로를 추스를 수 없는 형편이든, 아무런 희망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이다.

범죄하여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숨어있던 비참한 죄인 아담, 그가 숨어 있던 그 자리는 추악한 죄악과 흑암의 자리이자 배신의 자리였다. 하지만 그런 아담에게도 주님은 찾아가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가셨던 디베랴 바닷가, 그 곳엔 배신한 제자들이 밤이 새도록 빈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들은 주님이 몇 차례나 예고하셨던 부활의 메시지를 까마득히 잊은 채 이전 삶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찾아가셨다.

구할 수도, 부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곳이라도 주님은 찾아가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가 비록 땅끝에 있을지라도 찾아내신다.(사 43:5~7)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실패와 타협으로 영적으로 병들어 두려워했지만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은 그들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다. 주님만큼 ‘교회’인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은 없다. 주님은 교회를 반드시 회복하시고, 승리의 길로 이끄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혹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있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떠나야 한다! 두려움, 무력감, 비전을 상실한 불신앙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짓누르는 두려움에 마음을 내어주고 있는가?

복음을 운명으로 받긴 했으나 믿음의 자리에서 슬쩍 물러나, 믿음의 도전은 포기한 채 은둔하며, 적당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굴속에 숨어 있는가? 여호와 앞에 서라! 그리고 길을 돌이키라! (2016. 7. 메시지 정리)<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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