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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를 시작으로 근대 교육이 시작되다

▶ 신흥학교 초기의 기와집(희현당)(왼쪽)과 초기의 기전여학교 풍경(출처: 전주신흥학교역사다큐멘터리, 한국기독교회사)
조선선교열전 (6) – 전라북도 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성경학교의 시작

전주의 첫 세례자들이 나오자 1896년 9월 두 번째 세례식에서는 30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았다.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어지자 선교사들은 지교회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킬 필요성을 느껴 성경학교를 열었다. 1899년 14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이 성경학교는 수 주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전킨과 레이놀즈 부부가 교사가 되었다. 이들은 성경공부뿐 아니라 성서 신학, 예수의 일생과 성지, 지리 등을 공부했고, 주일 오후에는 노상전도를 나가 말씀을 전했다.

성경학교를 열었던 이듬해 1900년 9월 9일에 서문밖 완산 북림 기슭에 있는 레이놀즈 목사의 사랑에서 당시 16세의 소년 김창국 한 사람으로 근대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전주에서 시작된 최초의 근대교육인 신흥학교의 출발이 되었다.

김창국은 전주 최초의 세례 교인 5명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조모와 모친 역시 전주 최초의 신자들이었다. 테이트 목사의 사동(使童)이었던 그는 해리슨 부인의 주선으로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를 거쳐, 평양 신학교에 진학하여 호남 지방 최초의 신학교 졸업생이 되었으며, 그해 목사가 되었다. 제주도와 전북에서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설립했고,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시인 김현승이 그의 차남이다.

전주 최초의 근대교육 신흥학교

그 후 1901년 7월 1일 의료선교사였던 해리슨 목사와 그의 어학 선생에 의해 8명의 남학생을 대상으로 작은 주간학교가 시작되었다. 시작할 때부터 선교부는 기독교 학교의 목적을 두고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했다. 교육비는 자립적으로 학부형들이 나누어 부담하기로 했다. 해리슨 목사는 1901년 7월 9일 자 보고에 다음과 같이 썼다.

“기독교 가정에서 온 소년들을 위해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를 여는 문제에 대해 부모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부모들은 학교가 시작하기 전부터 8명이나 되는 소년들을 보내 주었다. 그들 가운데는 커다란 희망을 품고 있는 몇몇 어린애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건물과 책, 그리고 유능한 교사 등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이 부족하다.”

처음 몇 년은 사택 사랑채로 모여드는 어린아이들을 비공식적으로 가르쳤다. 1904년 가을, 화산리로 이전했을 당시 학생은 10명이었고, 선생은 해리슨의 부인 등 5명이었다. 1906년 봄에 희현당 옛 터에 기와집 한 채를 지어 이전할 무렵의 학생수는 55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학교 책임자로 니스벳 부부가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교육이 지원되고, 1908년 그동안 ‘예수교학교’라고 불리던 이름을 ‘신흥(新興, 새 여명)’이라고 했다. 1909년 보통과 제1회 졸업생 5명을 배출했고, 그해 한국 선교의 후원자 그래함(C.E. Graham)씨가 헌금한 1만 달러로 벽돌 양옥 2층 학교 건물이 세워졌다. 당시 학생 수는 보통과를 합하여 150명이나 되었다.

사랑방에서 시작된 기전여학교

남학생을 대상으로 작은 주간학교가 시작되자, 1902년부터 매티 테이트는 12명의 소녀들을 모아 자기 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 교육과 일반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04년 전킨 선교사의 전주 부임 이후 그의 부인 메리 레이번이 교육을 담당하였고, 다시 1907년 2월에는 교육 전문가인 랭킨(Rankin) 여선교사가 파송되어 와서 본격적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처음 전주여학교라고 불렸던 이 학교는 이 지역의 개척선교사였던 전킨 사후에 ‘전킨을 기념한다(紀全)’는 뜻으로 ‘기전여학교’로 불리게 되었다.

이 땅의 근대교육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선교사들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전킨 선교사와 아내 메리 레이번은 어린 세 아들을 연달아 이 땅에서 잃었고, 전킨마저 타국에서의 많은 고비와 그로 인해 얻은 지병으로 1908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랭킨 역시 기전여학교를 맡은 지 4년 만에 충수염 수술 후 1911년 이 고장에서 별세했다.

신사참배 강요로 자진폐교

전북지방의 청소년들이 신교육을 받기 위해서 모여 들었던 기전여학교와 신흥학교는 1919년 3.1운동에 앞장섰던 학교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구국기도회를 만들고 일본어 시간에 침묵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후에 두 학교 모두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폐교하였다가 해방 후 다시 복교한 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전북선교 120주년과 예수병원설립 115주년 기념 포럼>(2013) <한국선교이야기, 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도서출판 동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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