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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도시 고린도

김수길 제공

그리스 이야기 (7)

사도 바울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고린도는 현지인들의 언어로 ‘아카이아 고린도(αρχαία Κόρινθος)’라고 부르는 구 고린도를 말한다. 이곳에 가려면 겨울에도 온화한 아름다운 신 고린도에서 차로 약 20여 분간 시지퍼스의 신화가 있는 산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관광객이 뜸한 유적지 입구는 작은 산촌 마을의 풍경에 이어 작은 음식점과 민예품 가게들이 이곳을 찾는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힘들게 지나면 고대 도시임을 증명하듯 오랜 세월의 무게에 흐트러진 그림 같은 유적들이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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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가까운 곳에 고린도 박물관이 있다. 성경에 인용된 청동거울과 그리고 신석기 시대로부터 로마시대에 이르는 도자기들이 진열돼 있다. 그중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Ἀσκληπιός)에게 드리는 여러 인체 모양의 도자기들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잠시 붙잡는다.

옆방에는 고린도에서 발굴된 여러 가지 형태의 시저와 옥타비아누스가의 동상들이 있다. 이 동상들을 보노라면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들은 여전히 고린도의 주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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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박물관의 작은 안뜰에도 많은 비석과 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고린도의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유대인들의 묘비명과 메노라가 조각된 비석 등이 공간 한쪽을 채우고 있다.

박물관 옆에는 옥타비안 황제의 신전이 아칸서스 문양의 전형적인 고린도 양식으로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고대 고린도가 가장 흥왕하던 주전 5세기에 세워진 우뚝 솟은 아폴론 신전에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일곱 개의 기둥만 남았지만 아주 오래전 이 아폴론 신전은 대리석으로 지은 다른 신전과 다르게 시멘트를 사용하여 큰 구조물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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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옥타비아누스는 아테네가 아닌 고린도를 로마의 속주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린도 양식은 로마 시대 이전 고린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아니라 이 당시 고린도에 생활했던 로마인들의 미술과 건축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할 즈음 고린도는 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완벽한 도시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로마의 도시로 거듭난 것은 도시의 모양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고린도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행동까지도 로마화된, 완전한 로마화 그 자체였다.

동서양에서 몰려들어 다양한 인종과 많은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이 도시는 극심한 빈부의 차이가 존재했으며, 바울 사도가 교회 안에서 여성도들에게 머리에 수건을 씌울 정도로 사치와 향락이 차고 넘쳐흘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디오니소스 축제(Φεστιβάλ Διογένεσης)는 라틴어로 바커스 축제 등 퇴폐적인 이교 행사와 음란한 생활상을 낳았다. 이에 따라 고린도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이러한 문화의 영향으로 의붓어머니와 동거해도 탓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은 문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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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미 자신이 체험하여 알고 있는 로마를 보았기에, 그는 바른길을 제시하고 싶었으며 바르게 살기를 권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바울 사도는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약 2년간의 사역을 끝내고 고린도의 외항 겐그레아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머리를 깎아 준 베뵈 집사에게 쥐어준 편지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 건너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쓴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고소로 신임 총독에게 끌려갔던 바울 사도의 재판 자리에 서면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무엇인지 숙연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도시, 고린도의 주인은 역사 속에 명멸해 간 수 많은 동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초라한 비문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직접 텐트를 만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쉰 목소리로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사도 바울과 수많은 그의 동역자들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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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고린도 광장에는 이 비마가 지금도 남아 있고 북서쪽 상점들의 유적지엔 아주 오래전에 벽에 새겨둔 십자가가 나타난다. 오랜 세월 전에 새겨진 십자가들은 많은 건물 주인들이 바뀌면서 석회석 벽화에 숨죽이고 있다가 근래에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박물관의 동상들과 비교할 때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내게는 어느 무엇보다도 크고 충격적인 조각이자 흔적이었다. 따라서 세월의 생체기 같은 신앙의 흔적들과 징표들은 고린도는 바울 사도의 애증이 담겨진 바울의 도시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된 도시이다. 옛날의 명성을 뒤로 하고 지금은 흩어진 돌조각으로 남아 있는 고린도, 그러나 그 퇴락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일렁일렁 어리는 것은 어인 일인가?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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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관련기사]
[김수길 칼럼] 고린도 스타일 그리고 방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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