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호 | 믿음의 삶
며칠 있으면 아버지의 2주기 추도일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년 전에 방광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러나 암세포 전이가 빨랐고,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시고는 집에서 돌아가시고 싶다고 하셨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고, 아버지 말씀에 무조건 “네.”하고 싶었다. 그때는 그것이 쉬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근원적인 이기심,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입원하실 때마다 왜 매번 내가 보호자로 들어가야 하는지.’라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으로 자랐지만 아버지의 술 습관으로 그 사랑이 무색해졌다. 이십 대의 어느 날 난,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런 내가 아버지를 섬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화장실을 청소할 때 오시면 소변을 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았고, 여러 진통제의 복용법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이듬해 1월, 첫 예배 때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 33:14) “진짜 데려가시려구요? 안 돼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짜 시간이 얼마 없었다. 죽음의 과정과 고통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의지할 곳 없이 험한 삶을 사신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없는 긍휼함이 부어졌다. 섬길 수 없는 나를 주님께 의탁하며 다시 하늘 아버지를 주목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이 말씀을 힘써 믿었다.
구원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점점 더 마른 가죽 부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셨지만 알 수 없는 평안 가운데 계셨다. 당시 아버지는 밤마다 요한복음을 듣고 계셨다. 어느 날 아침에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더라?”라고 하시며 아이처럼 웃으셨다. 니고데모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응급실에서 이제 이틀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깊이 찌르는 바늘 외에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귀에 시편 23편을 읊조렸다. 그때 아버지가 내 귀에 들려주신 작은 “아멘”은 기적 그 자체였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퇴원한 어느 날, 호스피스병원 의사에게 “의사 양반, 내가 얘기 하나 할까? 우리 하나님이 나를 좋은 밭에 심어 주셨어.”라고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 2주 전, 침대 머리맡에서 자손들과 교회를 축복하셨다. 이미 곡기를 끊으신 지 이십여 일이 지나고, 이 땅에서 마지막 들려진 복음 앞에서 소리 없는 “아멘”을 외치셨다.
아버지는 출애굽기 33장 약속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이 손으로 모세를 덮는 장면을 특히 좋아하셨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주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우리 앞에 선포하게 하시고 심판의 날에 주의 손이 우리를 덮으신다는 믿음을 주셨다. 도저히 못 보내드릴 것 같은 내게도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9~30) 말씀 앞에서 ‘이제는 데려가셔도 괜찮다.’는 고백을 드렸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본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주의 모든 말씀은 신실하셨다. 아무도 도울 수 없는 마지막 시간에 주님은 아버지의 도움이 되셨고, 아버지는 죄 사함과 구원의 절실함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붙드셨다.
임종 당일 새벽,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약속했다. “아버지, 때가 되어 내게도 이날이 이르면 나는 아버지가 한 것같이 똑같이 할 거야. 끝까지 잘 달릴 수 있도록 천국에서 우리를 응원해 줘.” 한때는 큰 고통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큰 기쁨인 아버지를 추모하며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복음기도신문]
윤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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