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호 | 믿음의 삶
나는 내가 종종 거북이나 달팽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이 느린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많이 둔하다. 어릴 때부터 영악하거나 여우 같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고 엉덩이가 무겁다는 말을 듣곤 했다. 학생 때 걱정스러운 엄마의 목소리 “너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 어떻게 시집가서 살래?”였다. 또 나는 기계치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20대 중반에 모든 면에서 빠른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남편과 결혼했다. 삶에서 무엇이든지 정성 들여 수작업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했던 나는 기계, 컴퓨터 등 꼭 필요한 것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불편함이 없었다.
홍콩에서 주재원으로 생활하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매일 외식을 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도 영혼의 만족은 없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고 싶다고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은 우리를 선교사로 불러주셨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이후 20년 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했다. 주로 사역했던 곳이 시골 지역이었기에 나는 주로 현지 교사들에게나 아이들에게 화극 자료, 융판 자료 등으로 그들을 섬겼다. 주일학교가 제대로 없는 그들에게 간단한 시각자료들로 주님을 전했다.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어설픈 내 자료들을 많이 좋아하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50대 중반이 넘어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해 돌아온 한국 땅에서 나는 여러 가지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중국은 ‘만만디’, 즉 ‘천천히’의 문화가 지배적인데 한국은 어딜 가나 급했다. 자주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어떨 땐 한국 사람들이 그럴 여유조차도 없어 보여 안타까웠다. 우리는 한국에 와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은혜를 입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빚을 아무 조건 없이 다 깨끗이, 완벽하게 십자가 사랑으로 모두 탕감 받았다는 것을, 무엇보다 헤브론원형학교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나의 어릴 적 꿈이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겨주시는 학교에 진짜 교사로 불러주시다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수업 진행 상황 등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지금 나는 몸도 튼튼하지 못한 데다 컴맹이었기에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다른 선생님들은 거의 모든 수업을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서 잘 가르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마음이 어려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껏 의기소침해진 상태로 기도실에 앉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주님이 내면에 말씀하셨다. “명희야 괜찮아. 지나온 너의 삶도 귀해. 내가 있잖니. 그리고 나는 똑똑한 사람들만 부르지 않았어. 오히려 너같이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렀지.” 고린도전서 1장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5~29)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택해주신 주님,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산 새 피조물 되게 해주신 주님, 나의 모든 것 되어주신 주님 한 분으로 행복했고 그분 한 분으로 충분했다.
지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손이 아닌 자판으로. 놀라운 장족의 발전이다. 지금이라도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늘 쉽게 교만해지는 나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 지금을 허락하셔서 문지기라도 감사합니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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