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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예수님이 지옥에서 설교하셨다?

사진: 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캡처

베드로는 바울 서신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벧후 3:16). 그럼 베드로 서신서는 쉬울까? 아니다, 베드로 서신서도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 신자들을 당황하게 했던 구절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18-20)

18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예수님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즉, 그는 인간으로서는 죽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 그런데 여기서 “영”이 무엇일까? 일부 해석자들은 그 말이 예수님의 인간 영혼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이 현재 살아계신 장소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영”을 연결함으로 베드로는 성령을 언급하고 있다(롬 8:4-11 참조). 베드로는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셨다고 말한다.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심

베드로가 18절에서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는 19절 시작 부분에서 “성령으로 지옥에 가신 예수님이 거기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해석자는 베드로의 말을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 사이에 또는 부활 이후에 일련의 전도 활동을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전도한 대상자는 누굴까? “전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 즉 “옥에 있는 영들”이다. 그러면 이 “영들”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님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천국으로 데려가신 구약 시대 신자들의 영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소식, 즉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들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한편으로 이 “영들”을 수천 년 전에 노아를 거부함으로 정죄받은 영혼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들을 포함한 모든 적들에 대한 승리를 선포함으로써 그들의 정죄받음을 확증하고 있다. (예수님이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위한 사후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자들도 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이 모든 해석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 그러니까 승천하셔서 아예 하늘에서 자리 잡기 전에, 꼭 육체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지역적으로라도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신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수님의 활동을 확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더 명확한 성경적 증거가 없는 이상, 우리는 그런 주장을 전개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 

이런 해석이 내포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베드로가 이 “영들”을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 전에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20절)로 묘사한 데서 비롯한다. 왜 예수님은 구약의 일부 성도들만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키셨을까? (그리고 왜 베드로는 구약의 성도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했을까?) 예수님은 왜 지옥에 있는 특정 세대의 영혼들에게만 정죄를 선포하고 다른 세대에게는 같은 선포를 하지 않았을까? 각각의 해석에는 나름의 문제점이 있다. 구약의 신자들이 죽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조상들의 고성소(limbus partum, “조상들의 림보”)에 갇혀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히려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 신자들의 영혼은 죽는 즉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간다(눅 16:22). 그리스도께서 정죄받은 인간 영혼에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려고 왜 굳이 지옥까지 갔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안한다는 성경적 보증도 없다. 결국 최후 심판에는 개인이 이생에서 행한 것만 고려될 것이고, 내세의 활동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벧전 1:17고후 5:10히 9:27).

또한 이 “영들”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정복한 악한 천사들로 보는 해석자도 있다. 예수님은 지옥의 포로로 잡혀 있는 영적 세력과 권세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견해는 보통 지옥에서 이뤄진 승리의 선포와 관련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의 영적, 마귀적 원수들에 대한 승리의 선언인 것은 사실이지만(22절 참조), 과연 베드로가 19절에서 그러한 승리를 염두에 두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19절의 “영들”과 관련해서 “노아 시대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20절) 불순종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베드로는 그들을 인간으로 본 거 같다. 

더 나은 해석

어려움을 피하는 동시에 베드로의 전반적인 주장 내에서 이 구절의 맥락을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19절의 선포를 행하시는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다. 확실히 설교자가 예수님이라는 건 맞다. 그러나 그는 성령 안에서 설교하신다. 그리고 이 선포의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천 사이의 기간이 아니다. 그것은 노아의 생애 동안이다.

그러면 지금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방주를 짓는 과정에서 노아가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두 번째 편지에서 말했듯이 그는 “의의 선포자”였다(벧후 2:5). 노아는 베드로가 일찍이 “그리스도의 영”(벧전 1:10)이라고 불렀던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했다. 그러나 노아 세대의 모든 사람은 심판을 미루는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선언을 일축했다. 그들은 “이전의” 불순종 때문에 현재 “지옥에” 있다. 즉, 그들의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기 위해 지옥에 던져졌다.

답변할 준비를 하라

이 말씀은 베드로 서신서의 첫 번째 독자들에게 엄청난 목회적 격려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들 중 다수는 무가치하고 악한 삶에서 구원받은 이방인이었다(벧전 1:18, 비교 4:3-4; 참조, 엡 2:12). 이들은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그 사실은 베드로전서 3:8-17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현실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그들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했다(벧전 3:15-16).

당시 신자들은 어떻게 이 힘든 일을 감당했을까? 베드로전서 3:18-20에서 베드로는 다시 한번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지적한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옛날 노아처럼 우리를 불신앙으로 조롱하고 멸시하는 세상 앞에서 복음의 소망을 증언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즉 노아의 선포 사역에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영과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 안에서 진리를 선포한다. 우리의 임무는 헛되지 않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리를 거두셨다(벧전 3:21-22). 우리는 결코 두려워해서도 또 절망해서도 안 된다(벧전 3:14). 오히려 불신자에게 그에 대해 담대하게 말함으로써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해야 한다(벧전 3:15).

우리의 구주가 승리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달콤한가? 베드로는 감각이 말하는 대로 살지 말라고 한다. 대신에 믿음으로 참됨을 깨닫고 그 진리에 따라서 살라고 상기시킨다.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며 그를 섬기자. [복음기도신문]

가이 프렌티스 워터스(Guy Prentiss Waters) | 복음연합 칼럼리스트

출처: Does 1 Peter 3:19 Teach That Jesus Preached in Hell?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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