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대구에 사는 70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A씨가 장애인으로 등록되면 수당을 받을 수 있다며, 장애인 등록을 해달라고 동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나 행정복지센터는 장애진단심사용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그의 신청을 반려했다. (관련기사)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각장애, 언어장애, 안면장애, 지체장애, 뇌병변 장애, 시각장애, 정신장애,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호흡기 장애, 요루장애, 간질장애, 간장애. 심장장애, 신장장애 등 15가지 유형의 장애를 지원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동사무소가 요구한 심사용 진단서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른 장애정도 판정 기준에 따라 발급하는데 HIV 감염은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다.
A씨는 장애 진단서가 아닌 HIV 감염으로 인한 우울증·말초신경염·골다공증·당뇨 등 7가지 합병증 증세를 담은 의사 소견서를 들고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접수할 수 없었다. 이에 A씨와 HIV 장애 인정을 위한 전국연대는 반려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관련기사)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HIV 감염과 무관하게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상 장애가 인정되면 약 40여 가지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 등록을 노리는 것이다.
김지영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HIV 당사자에게 유일하게 제공되는 건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 수급자 특례가 유일하다. 장애인복지법에서는 등록장애인에게 소득보장, 고용제도 등이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지원되고 있다. HIV 당사자에게 사회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고용 및 생계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국헬스경제신문은 소개했다.
장애인 문제 관계자들은 장애등급제폐지 운동을 통해 장애의 재정의를 요구하며, 이 과정에서 장애 ‘등록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하고 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많은 HIV 감염인들은 약을 잘 먹으면 관리할 수 있고, 비감염인만큼 살 수 있다는 주입을 하며 건강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평소 건강함을 강조하다가 장애등록을 하게 되면 (낙인이) 더 찍힐 것이라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HIV에 감염돼도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 수치를 낮게 유지하면서 일반인처럼 지낼 수 있다. 가령, 위 소송의 당사자가 70대 감염인이 아니라 20대나 30대라면 약값도 100% 지원받는다. 따라서 처방된 약을 복용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데 왜 장애인 인정을 해줘야 하는가라는 논란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보는 또다른 전문가들은 ”70대 HIV감염인을 내세워 판사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같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 2015년 미국 동성혼 소송 당사자들을 노인들로 한 것은 바로 그런 전제에서 시작됐다. HIV 감염인 그룹에서 이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IV에 감염 이후 약을 잘 먹지 않거나 말기가 되어 여러 가지 질환들이 발현되는 것을 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라고 한다. AIDS 단계라 할 수도 있다. 이때가 되면 뇌에 손상이 발생하고 신경인지장애가 발생한다.
가령, 면역 결핍이 심한 말기 HIV 감염자에게서 기억력, 인지력, 행동력, 운동기능 등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증상을 가진 증후군이 나타난다. 이것을 ‘HIV 관련 신경인지장애’라고 하는데, 장애 진단 기준이 있다.(관련자료)
즉, HIV 감염인도 합병증으로 인해서 장애 정도가 나타나면 장애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구 사례는 장애 기준에 들지 않음에도 복지혜택을 더 받게 장애인 인정을 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HIV 감염인 그룹이 추진하는 논리는 장애 정도에 따른 장애인 인정이 아니라 ‘차별, 배제, 억압’을 이유로 한 장애인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가 인정되는 질환이 늘어난다.
HIV 감염증과 같은 질병으로 장애를 판정하는 것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에 맞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폐성 장애라는 질병 자체를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보고 정의하다 보니, HIV 감염 자체를 장애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
복지 선진국도 HIV 감염증 자체, 암 질환 자체를 장애로 보지는 않는다. 질병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질병에 의한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에 따라 사회적 기능의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사회적 장벽에 의해 차별, 배제, 억압을 받으면’ 장애로 판정한다.
즉 암환자라고 해서 바로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암의 후유증으로 인해 고관절 부위 림프에 부종이 생겨 다리의 기능에 어려움이 있고, 이로 인해 이동의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차별받을 가능성이 높으면 장애로 판정받는 것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한 장애 정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HIV 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장애인 등록 제도를 유지할 경우 등록을 위한 장애 측정을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손상에 따라 얼마나 사회적 기능에 제한이 있는지를 측정하면 된다.
일상생활정도(ADL)와 수단적 일상생활정도(IADL)를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종합조사표에서 이를 측정하고 있다. 이럴 경우 현재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HIV 감염인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둘째, 장애인 등록 제도를 폐지하고 장애인복지서비스, 소득보장서비스 등과 같은 서비스 유형별로 별도 기준을 만들고, 이때 기준으로 사회적 기능의 제한, 즉 일상생활정도(ADI)와 수단적 일상생활정도(IADL)를 사용하면 된다. 이 경우 손상에 대한 측정이 거의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HIV 감염인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한 장애개념도 더 확대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장애는 보다 폭넓게 규정하고 각종 복지급여를 받지 않아도 차별금지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HIV 감염인은 차별금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관련기사)
즉, 현재 장애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HIV 감염인들이 복지혜택을 누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보호를 이용하고자 장애의 정의와 법과 체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이 소송의 목적과 결과라 할 수 있다.
HIV 감염인은 심리적 이유나 질환으로 인해서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일을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서 정부 생활비 보조를 받는 것이다.
보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자 하는 동기는 이해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장애인 기준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그러한 기준으로 만일 HIV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공정할까? HIV 감염인도 장애 등급을 받으면 공평하게 장애인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데. 게다가 장애의 명분이 ‘한국 사회가 HIV 감염인을 차별, 배제, 억압을 해왔기 때문이다’는 것인데, 그게 장애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일반 국민들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차별, 배제, 억압’을 받은 적이 있으니 모두 장애인 등록이 가능하게 된다면 나라 재정이 남아날까? 전국민의 장애인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대구의 판사가 정치적 판사가 아니라 법에 따라 판결하는 양심적 판사이기를 바란다.[복음기도신문]
S.Y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