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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은과 금 내게 없지만

▲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오는 시에라리온 아저씨. 사진 : Microsoft Bing A.I. 제작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소식에 사무엘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몇 달 전 처음 만났을 때 살기 가득한 그의 눈빛을 생각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 말고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다. 목발을 짚고 처음 교회에 왔던 날, 그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다리 때문에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억울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라는 표정으로 교인들을 노려보면서 위화감을 조성했고, 새 신자인 그를 반기는 리더에게 ‘예수 믿으면 병든 사람이 낫는다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다짜고짜 다리를 고쳐달라고 했다.

그의 아픈 다리 상태를 살펴본 나는 이게 사람의 다리인가 싶어 두 눈을 의심했다. 염증으로 가득 찬 그의 다리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시에라리온의 만병통치약인 팜유를 얼마나 오랫동안 발랐는지 이끼가 덮여있는 것 같았다.

예수 믿으면 낫는다는 믿음 충만한 그에게 ‘병원에 가라’는 본심을 말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나를 이방의 의사로 알고 있는 그에게 난 의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의사도 아니면서 왜 자신 앞에 서 있냐며 화를 버럭 내었다. 그런데 나는 화내는 그가 오히려 가여웠다. ‘나는 당신을 치료해 줄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해줄 수 있다.’라며 그를 진정시킨 뒤, 베드로가 선포한 것처럼 선포했다.

은과 금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6)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뛰어 걸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도 아닌 나의 기도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는지 그는 ‘그럼 그렇지’라는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항생제와 비타민과 파스를 주면서 매일같이 기도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있으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듯 이야기했지만, 그는 ‘의사도 아닌 주제에 네가 뭘 알아?’라는 표정을 짓더니 고맙다 말 한마디 없어 돌아섰다.

다음 주 그는 다시 교회에 왔다. 그의 다리에는 팜유 대신 내가 준 파스가 붙여져 있었고, 내 천(川) 자가 선명했던 그의 미간이 펴져 있었다.

나의 말처럼 일주일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는 그는 ‘언제 걷게 되냐?’ 고 물었다.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에 난감해진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해주었다. 기도가 끝나자 그는 다시 물었다.

“언제 걸을 수 있소?”

나는 항생제 몇 알과 비타민과 파스를 주면서 ‘그건 하나님만이 알 수 있어요. 나도 기도할게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그가 아픈 다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사도행전 3장의 앉은뱅이의 기적이 그의 것이 될 수 있기를 매일 기도했다. 그를 위한 매일의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는 매주 교회에 왔다. 주일예배뿐 아니라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도 왔다.

여전히 그는 목발을 의지해야 했고, 가끔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없어졌다. 분명 하나님이 그를 만지시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호전을 보이지 않는 그의 다리 상태에 오히려 내가 더 안달이 났다.

다리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더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그가 걱정이었다. 그의 다리가 낫지 않는다면 그의 절망은 예전보다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어쩌면 반기독교인이 되어 무슬림보다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님을 오해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의 다리는 나을까요?”

‘언제 낫냐?’는 질문과 결이 달라져 있었다. 그의 믿음이 성장했음을 직감했다. 믿고 기도하면 나을 수 있다고 호기롭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하나님만이 알 수 있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그런데 그의 다음 말이 반전이었다.

“No problem(괜찮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No problem?”

그리고 몇 초도 되지 않아 가슴 저편에서 뜨거운 물기가 차올라왔다. 내가 시에라리온에 있으면서 수만 번도 더 들었던 No problem 중에 가장 감동적인 No problem이었다.

다리가 치료되고 정상적으로 걸어 다녔으면 좋겠지만, 예수님을 알게 되고 구원받았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그의 고백에 그의 다리는 이미 나았음을 믿음으로 선포했다.

예배에 나오는 동안, 다리가 낫기 위해 기도하는 동안, 예수님은 먼저 그의 아픈 마음을 만져주셨다. 그는 치료보다 구원과 영생의 약속을 먼저 받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아픈 다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걷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응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완벽했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는 지금도 괜찮다고, 기도하면 된다고 했다.

옛날에는 자신의 아프고 억울한 마음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들어주는 이가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선하시다는 것을.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와 더 관계 맺고 싶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언젠가 그는 시에라리온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다.

그의 기도는 시에라리온의 수많은 앉은뱅이와 닿아 있을 것이다. 기도하게 된 그는 더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절망에 빠진 이가 아닌 시에라리온의 소망이 되었다.

내가 떠나오던 날, 아저씨는 더는 목발을 짚고 있지 않았다. 절룩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아저씨의 손을 예수님이 꼭 붙잡고 계셨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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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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