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통신]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울 때 묻는다.
Unataka nini? (무엇을 원하니?)
우는 아이를 다그치기 전 건네는 그 질문의 의미를 알고 나서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역시 곧잘 그 말을 애용했다.
Unataka nini? (무엇을 원하니?)
문제는 울먹이면서 스와힐리어로 웅얼거리는 아이들의 언어를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Pole sana(정말 미안해)’하고 안아주면 대부분 아이들이 울음을 그친다. 아이들의 원함은 그저 울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달래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열에 한두 명은 끝까지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면서 원함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아이의 원함을 충족시켜 줄 수가 없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나의 마음에 닿지 않은 아이의 원함은 takataka와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곳에서 takataka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원한다’라는 taka 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 되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예전 노예를 부리던 주인들이 노예들에게 단 한 가지만 원하라고 하면서 선택권을 준 것이 죽을래? 살래? 였다고 한다.
‘둘 중의 하나를 원하고 그 외 원하는 것은 모든 게 쓰레기다.’라는 주인의 명령에 살기를 원한 노예들은 그 후 죽을 때까지 그 어떤 것도 원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육체적 노동, 말살된 인권이 주는 고통보다 아무것도 원할 수 없는 것이 더 절망이었을 것이다. 인생이 원함의 결정체인데, 그 원함의 원동력으로 살아지는 게 인생인데, 원함이 없는 생이야말로 노예와 같은 생이 아닐까?
누군가 지금 나에게 Unataka nini? 라고 물어본다면, 물론 하나님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들을 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원해요’ ‘기쁨과 감사로 탄자니아에서의 1년을 마무리하기를 원해요.’ ‘12월 성탄 행사 준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기를 원해요.’
방금까지만 해도 고백했던 나의 원함이다.
이렇게 매일 소소하게 하나님께 나의 원함을 고백한다. 이런 나의 원함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이 사귀고 친밀해진다. 그렇게 나의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더 원하고 기대한다.
나의 원함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닿아있기에, 나는 마음껏 원할 수 있다.
요즘 방학을 맞이한 찬양팀 아이들과 유튜브에 올릴 한국어 찬양 은혜를 연습 중이다.
아이들에게 가끔 ‘너희들은 무엇을 원하니? 꿈이 뭐니? 기도 제목이 있니?’라고 묻긴 하지만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평소에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많은 것을 원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원함을 통해 우리의 작은 신음조차도 놓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유튜브 촬영은 찬양팀 아이들의 원함 중 하나였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기아대책의 후원을 받는 잠비아 아이들이 한국어로 행복이라는 찬양을 부르는 영상을 감명 깊게 봤던 터라 아이들에게 보여줬더니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했다.
자신들도 한국어로 찬양을 부르고 싶다며,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너희들이 원하니? 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Ndio(은디오. 예)
그렇게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뜻도 모르는 한국어로 찬양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은 일주일도 안 돼서 뜻도 모르는 한국어 가사를 외워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스와힐리어로 번역하면서 뜻을 알게 되자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음악을 전공하신 선교사님으로부터 발성, 호흡 등을 배우면서 아이들의 긴장된 표정이 풀어지고 구부정했던 자세가 고쳐졌다.
원함을 통해 아이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의 원함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핸드폰이나 시계가 없어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아이들과 시간을 정해 연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마땅한 장비가 없으니 녹음을 따고, 촬영하는 것도 어렵다. 막상 원하기는 했지만, 원함을 이루어가는 과정들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원함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이기에 쉽게 하고 싶지 않다. 좋은 영상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뿐 아니라 탄자니아 시골 마을 아이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아이들의 인생이 격려받기를 원하는 원함이 하나님과 닿아있기에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좀 더 수고하고 싶었다.
찬양을 통해서 아이들은 모든 것이 은혜임을 고백한다.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아이들이 알아간다.
원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이들의 원함을 들으시고 공급하실 뿐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하나님을 믿는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원하고, 원하고 또 원하면서 살기를 원한다.
세상과 닿아있는 원함이 쓰레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닿아있는 원함은 하나님과 우리를 묶어주는 탯줄이 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탄자니아=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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