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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만화 전도 책자 한 상자, 2년에 걸쳐 2000km

사진 : 원정하 제공

2023년 8월은 정말 불타는 한 달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8월 4일에 인도에 귀임하자마자 8월 8일부터 14일까지 선한목자교회 청소년국 단기 선교팀이, 그 팀이 떠나자마자 16일부터 23일까지 하늘꿈 중고등학교 단기 선교팀이, 그리고 그 팀이 떠나자마자 26일부터 31일까지는 생수의 강 단기 선교팀이 다녀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멈추었던 단기 선교팀의 격렬한 흐름에 영은 은혜 속에 기쁘면서도, 후반부에는 정말 누적 피로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그런데 단기선교 와중에 또 다른 부담감이 생겨 버렸습니다. 18박스의 만화 전도 책자가 ‘마히마 학교’로 배달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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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원정하 제공

저희가 사역에 쓰기 위한 만화 전도책자를 주문하면, 돈을 내고도 반년 이상 기다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최악의 경우, 거의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혹여 제가 없을 때 배달이 올까 봐 뭄바이의 경우 수령인을 제가 아니라 ‘마히마 학교’로 합니다. 그러나 그 부피가 만만치 않다 보니 학교에서는 배달받는 데로 제가 바로 가져가 주기를 바랍니다. 학생들 활동할 공간도 부족하니까요. 그런데 단기 선교팀 때문에 꼼짝 못할 시간에 열여덟 박스가 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단기선교 팀 떠나는 데로 우리 집에 갖고 오겠다고, 학교 측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창고에도 열여덟 박스를 넣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보내야 할, 다른 지역 언어 만화 전도 책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 전도 책자를 받으려면, 기존 전도 책자들을 빨리 필요한 곳에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시급히 해야 하는 일이지요.

이 만화 전도 책자는 몇 년 전 ‘푸네’ 시의 선교사님께서 신청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마라티’어와 ‘오리야’어 여러 권, 그리고 타밀, 벵갈리, 까나다어 소량 주문이었는데 나중에 연락이 왔습니다. 열어보니 정작 필요한 마라티어는 거의 없고, 오리야어는 관련 사역자분이 안 계셔서 쓸모가 없게 되었고, 따밀, 벵갈리, 까나다어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감이 왔습니다. 인도의 기독 출판사들은 늘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업무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주문에 견적을 받은 후, 배송을 안 해 줍니다. 몇 달이 지나도 배송이 안 되어 이메일을 보내면 대답이 없고 개인톡(인도는 카카오톡 비슷한 ‘왓츠앱’이라는 것을 주로 씁니다.)을 보내면 ‘개인적인 일은 왓츠앱으로 하지 말아달라.’는 차가운 답변만 보내옵니다. 그러다가 ‘인도 전국적으로 종이 공급량이 적어져서 늦어진다.’는 정도로 대답합니다. 그러다 나중에 보내온 후에는 ‘추가 비용이 50만원(!) 발생했다.’며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 모든 눈물 나는 과정을 다 거친 후, 가까스로 한 프로젝트가 마감이 되어도, 정작 박스를 열어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배송자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여러 언어 만화 전도책자를 한 박스에 섞어 넣어두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문하지 않은 언어 버전으로 상자의 상당 부분을 채워 넣어 버리기도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608km 떨어진 ‘하이드라바드’시로 날아가, 본사 대표를 세 번이나 만나 매번 같은 요청을 해 보았지만, 반영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때 그 시점에 있는 박스의 사이즈에 맞춰 일할 수밖에 없다.’는 답뿐입니다.

그래도 인도에서 이 정도 규모로 합법적인 기독 출판업을 하는 곳이 따로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같이 일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은 주문하지 않은 공짜 전도 책자나 기독 서적들을 선물로 같이 넣어 보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물품들에 대한 청구서를 보내기도 합니다.(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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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원정하 제공

그래서 저는 몇 주 전, ‘백일학’ 집사님과 함께 157km 떨어진 푸네까지 찾아갔습니다. 박스들을 하나 하나 샅샅히 살펴보니, 역시 생각보다 많은 ‘마라티어’ 만화 전도책자들이 있어서 선교사님께 남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오리야’, ‘따밀’, ‘벵갈리’, ‘까나다’어 만화 전도책자는 저희집에 가져와서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마히마’ 학교에서는 18박스의 새 만화 전도책자를 빨리 가져가 달라 요청하고, 저희 집에는 공간이 없으니 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있는 상자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거의 반나절의 중노동이었지요. 백일학 집사님께서 차와 기사, 심지어 노동력까지 제공해 주지 않으셨으면 분명 몸살로 누웠을 것입니다.

‘벵갈’어 상자들은 켈커타의 감리교 선교사님들께 보내드렸습니다. 이 상자들은 ‘하이드라바드’ –> ‘푸네’ -> ‘뭄바이(우리집)’ -> 켈커타 1872km’ 총 2572km를 여행하는 셈입니다.

‘까나다’어 상자는 ‘방갈로르’ 시의, 전도를 열심히 하시려는 교민 분께 보내드렸습니다. 역시 ‘하이드라바드’ –> ‘푸네’-> ‘뭄바이(우리집)’-> ‘방갈로르’ 총 1675km의 여정 중이지요.

‘따밀’어 상자들은 해당 지역 예수전도단 친구들에게 보내드렸습니다. 이 전도 책자들로서도 ‘하이드라바드’ –> ‘푸네’ -> ‘뭄바이(우리집)’ –> ‘첸나이’ 총 1896km의 인도 전역 여행입니다.

그리고 ‘오리야’어 제일 큰 한 박스도, 가장 박해가 심한 곳을 용감히 지키시는 선교사님들께 보내드렸습니다. ‘하이드라바드 –> 푸네 -> 뭄바이(우리집) -> 오디사’ 총 2255km의 초장거리 배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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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원정하 제공
<인도 주요 도시들 간 거리>
푸네 – 뭄바이 157km
하이드라바드 – 푸네 546km
하이드라바드 – 뭄바이 608km
뭄바이 – 벵갈루루 972km
뭄바이 – 첸나이 1193km​
뭄바이 – 오디사 1552km
뭄바이 – 켈커타 1872km

그리고 그렇게 각각의 박스들을 직접 분류하고, 박싱하고, 이틀에 걸쳐 들고 다니며 비지땀을 흘리고, 십 수만 원의 배송비를 문 후에야 우리 집 창고에 18박스의 만화 전도 책자를 쌓아 둘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하이드라바드’ 시의 기독 출판사에서 약간 자기들 편한대로 업무를 보면,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며칠씩 비지땀을 흘려야 합니다. 마히마 학교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오래 빼앗지 않기 위해서도, 푸네 시의 신학교에서 현지에 딱 맞는 전도 책자를 혼동 없이 쓰시게 하기 위해서도 저희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박스 하나가 2년에 걸쳐 2000km 씩 이동하고, 저희는 운송비를 몇 번씩 무는 일도 쉬이 발생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수습’이 가능하다면, 감사하고 다행인 일 아니겠습니까? 손해가 아니라 영광이고, 고생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덕분에 이렇게 인도 서부 해안, 뭄바이에도 복음의 실탄이 가득 찼습니다. 동쪽 해안(켈커타), 남쪽 해안(첸나이), 남부 내륙(방갈로르), 서부 해안(뭄바이) 이렇게 곳곳에 주님의 무기고가 가득 찬 것입니다.

세 단기 팀을 받은 후 첫 업무가, 인도 곳곳에 만화 전도 책자를 보낸 것입니다. 마치 단기 선교팀을 보낸 기분입니다. 또 새 만화 전도 책자를 저희 집에 쌓아 둔 것입니다. 다시 전투 준비 완료입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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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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