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성도 목사 (통일선교소망회)
288호 / 사람풍경
군 복무 중 북한이 바라다보이는 철책 근무를 하며 북한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됐다. 고난의 행군을 하는 북한 모습을 보며 북한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강력한 부담을 갖고 북한 선교에 뛰어들게 됐다. 그러다 탈북민을 섬기던 중 중국 감옥에 수감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던 온성도 목사는 복음통일을 꿈꾸며 오늘도 순종의 길을 걷고 있다.
– 어떻게 북한 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군대에서 북한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1996년도에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철책 근무를 서면 북한이 내려다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을 위한 기도를 많이 시키셨어요. 당시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때여서 TV를 통해 북한의 어려운 모습이 많이 나왔어요.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많이 울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굶어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주님이 기도의 방향을 바꿔주셨어요. 저들이 복음을 듣지 않고 죽는다는 게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저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세요.’ 그렇게 계속 기도하다 보니 나중에는 주님이 ‘네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계속 주시더군요. 그런데 북한에 갈 방법이 없으니 막연했어요.”
전방 철책 근무 중 북한 바라보며 북한 선교 꿈꿔
– 갈 수도 없는 북한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 정말 막연하게 느껴지셨을 것 같습니다.
“99년도에 제대를 하고 북한 사역하는 단체들과 연결해서 중국 훈춘으로 단기선교를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 정말 많은 탈북민들이 있었어요. 한 미션홈을 방문했는데, 성경 천 독을 목표로 양육받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많이 부끄럽고 도전이 됐습니다. 또한 목숨을 걸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보았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삶을 보며 ‘이 길이 내 길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단기선교를 같이 갔던 한 자매를 보게 됐어요. 열심히 탈북 자매들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이 자매와 이 길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매가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탈북 자매들을 사랑으로 섬기면 그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는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기는커녕 사랑으로 섬겨도 날마다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그러나 교제는 1년 반 넘게 이어졌고,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 북한선교 모임이나 선교 단체는 종종 찾아가서 교제를 했어요. 그러다가 2004년에 한 탈북민 전도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 전도사님을 통해 어떤 길이 열렸나요?
“그분의 간증을 듣게 됐는데, 정말 많은 도전이 됐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도 안됐는데 교회를 개척하신다고 했어요. 그분의 개척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기도하면 응답해주시는 것들을 보게 됐어요. 그분이 탈북민들에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이 됐어요. 중국에서 성경을 200독씩 하고 주님을 믿겠다고 하던 분들이 한국에 오면 돈을 쫓아서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런 상황 때문에 실망감이 컸을 때였는데, 이분을 만나게 된 것이죠. 개척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자주 가서 도왔습니다. 그러다 전도사님이 교회 사역을 함께 하자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기도를 하는데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는 이사야 43장 19절 말씀을 주셔서 응답으로 알고 함께 사역을 하게 됐어요. 탈북민들을 전도하고 심방하고, 이삿짐도 날라주고,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도 데려다주고, 밤에 부부싸움이 났다고 연락이 오면 달려가서 말리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3년이 지나자 마음과 육체의 한계가 오더군요. 힘든 상태에서 휴가를 얻어서 복음학교를 가게 됐어요. 충만한 복음의 진리가 내 마음에 채워지면서 많이 회복되고 다시 기쁘게 사역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교회가 조금씩 자리 잡아갈 때 성도님들과 함께 중국으로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탈북민 출신 사역자와 동역
– 중국에서 많은 도전과 은혜가 있으셨나요?
“많은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로 팔려와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더군요. 중국 돈으로 1만 위안, 2만 위안에 팔려온 사람도 있었어요. 한국 돈으로 하면 겨우 100만 원, 200만 원밖에 안되는 돈에 팔려와서 농촌에서 신분도 없이 숨어 살고 있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게 됐어요. 섬겨야 할 탈북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전폭적으로 섬기기 위해 2009년도에 통일소망선교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2010년도에 선교사 부부를 파송해서 중국에서 많은 자매들을 돌봤어요. 재정도 여건도 안됐지만 주님 은혜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처음 선교사님들은 인신매매로 팔려 가는 탈북 여성들을 구출하고 섬겼어요. 몇 명을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이분들이 북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 되니까 교회는 나오지 않고 술집을 다니거나 성매매를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는 안 될 거 같아 이들을 먼저 중국에서 훈련시키고 한국으로 데리고 오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몇 개월 동안 양육을 했어요. 이렇게 훈련원이 세워졌어요. 우리는 탈북 여성들을 평강공주라고 부르고 있어요. 중국에 비참하게 팔려가서 신분도 없이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평강을 가진 자매들을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는 사람들로 세워달라는 바람이지요. 훈련받은 자매들이 주위에 아는 자매들과 교제하게 되면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고 심방도 하면서 이들이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코로나 때는 온라인 양육을 시작했어요.”
– 또 다른 사역도 있나요?
“북한에서 외화벌이로 내보내는 노동자들이 있어요.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분들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요. 이분들은 일자리 소개나 여러 가지 도움을 받기 위해 고려인들을 의지하죠. 고려인들은 선교사들과 연결돼 있고요. 그렇게 선교사님과 연결된 탈북민들은 양육을 받아요. 우리는 이 사역을 ‘서상윤 사역’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19세기 말 중국 땅에서 성경을 번역하던 존 로스 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은 서상윤이 국내에 들어와 소래교회를 세웠던 것처럼 이러한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에요.”
– 북한 사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움도 많으셨지요?
“2014년에 중국에서 탈북민을 섬기던 선교사님들이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기도하는데 주님이 ‘네가 중국에 들어가라!’는 응답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중국에 직접 들어가서 탈북자들을 구출하고 양육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도움을 요청해 오는 탈북민들이 많아졌어요. 목숨을 걸고 한밤 중에 차가운 강을 헤엄쳐 건너온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백두산을 넘어왔더군요. 12일 동안 밤마다 이동해서요. 8명이었던 한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나왔는데 절반은 공안에 붙들려가고 절반은 도망쳐온 분들이 있었어요. 또 자매 2명이 밤 중에 두만강을 건너오다가 한 명이 물살에 떠내려가서 혼자 살아서 온 자매도 있었어요. 북송을 당해 북한 감옥에서 간신히 살아남아서 다시 탈북한 분도 있었죠. 그런데 이분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죽음 앞에서 두렵고 숨 막히게 살아왔던 수많은 탈북 형제, 자매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했어요. 이들은 북한에서, 또 중국에서 쫓겨 다니며 엄청난 상처를 안고 있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새롭게 변화되더군요. 너무 감사했어요. 이분들에게 세례를 주고, 많은 형제, 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파송됐고, 한국으로 떠나 보냈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1462명을 구출했어요.”
복음 만난 탈북민,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
– 탈북민 구출 사역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너무 새롭습니다. 위험하기도 할 것 같아요.
“2017년 국경을 넘기 위해 제3국으로 가던 분들이 8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위험하다며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에 공항으로 갔는데, 수십 명의 공안들에게 체포됐습니다. 앞이 막막하더군요. 형사들의 협박과 욕설을 들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성령님, 해야 할 말씀을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취조를 거부하니까 한번은 고문실에 갇혔습니다. 철 의자에 발과 손을 다 묶더군요. 사람들이 감옥에서 고문 당한 이야기를 들어봤기 때문에 이제 고문 당하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문은 안하고 책임자가 와서 마지막 심문을 하더군요. 그런데 성령께서 말 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탈북자들이 중국에 와서 어떤 처우를 받는지 아느냐. 북한 사람들이 북한에 돌아가면 인권 유린 당하며 고통당하는 영상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제 노트북을 가져오라고 해서 영상을 보여줬어요. 그 일 이후 주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붙잡힌 탈북민 8명이 풀려나고, 아내와 아이들은 일주일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셨어요. 저는 북경 감옥으로 이송돼 재조사를 받게 되고 20년 형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죄책감이 몰려오고 낙심감을 느끼며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또 사탄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서 모든 소망이 끊어진 그때, 보배이신 예수님이 제게 찾아오셔서 엄청난 위로를 부어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가슴 깊이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해주셨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상 288호에 게재>
–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셨군요. 그래도 감옥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좁은 감방 안에서 26명의 사람들이 함께 지냈습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중국 조폭이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 부하들에게 저를 앞으로 끌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라는 것이었어요. 그 노래 가사를 잘 모르니 다른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고 ‘실로암’을 불렀습니다. 조폭과 죄수들이 그 노래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이후 자주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게 됐고 ‘나의 등 뒤에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 등을 부르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자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이곳이 저의 선교지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왔어요. 사명을 깨닫고 나니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앞에 나가 특송도 하고, 한국어도 가르치고, 복음도 전하고, 밤에는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거의 1년 만에 재판을 받았는데 최종 판결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게 됐습니다. 또 붙잡혔던 탈북 형제, 자매들도 1년 동안 북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게 됐습니다. 다같이 공범으로 잡혀있기 때문에 북송되지 않은 것이죠. 이들이 북송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어요. 하나님은 정말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셨어요.”
–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네요. 최근에는 북한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브라질에 다녀왔습니다. 브라질 한 교회 목사님이 브라질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북한 선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이었어요. 15년 동안 북한을 위해 기도해오셨더군요. 북한과 전혀 상관 없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기도를 시켜오셨다는 것을 보았어요. 600명 규모의 교회였는데, 북한을 위해 헌신할 사람 손들어달라고 하니 40명이 중보기도팀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지금은 90명이 모여 매주 북한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요.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는 않더군요. 한국교회가 기도를 많이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신 거군요. 이런 일들이 또 있나요?
“지금 북한과 관련해 전혀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많은 일들이 이뤄지고 있어요. 한 독일 자매는 북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요한복음 1장부터 마지막까지 한글로 다 외웠어요. 독일에 살던 사람이 북한에 대한 마음을 받고, 한글로 요한복음을 외우는 걸 보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게 분명하죠. 현상을 보면 북한은 변화되지 않을 것 같고 변화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측량할 수가 없어요.”
– 북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은 얼마 정도 되나요?
“저희 통일소망선교회는 20명의 전임 사역자가 있어요. 우리 외에도 국내에 있는 탈북민 중에는 신학교에 다니는 수가 많고 훌륭한 분이 많아요. 대부분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복음이 살아있고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죠. 한국 사람이 탈북민을 데리고 목회하는 건 쉽지 않아요. 공감대 형성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온 탈북민 목사님들은 탈북민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 이들을 품어줄 수 있어요. 한국에 탈북민이 3만 4000명 있는데, 그중에 신학생이 100명 돼요. 이분들은 북한이 열리면 귀한 역할을 감당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도 신학생들을 돕고 있어요. 북한이 열리면 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죠. 북한 사역을 하시는 분 중에 드러나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을 거예요.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순수하게 사역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자기 소유를 다 털어서 사역하고, 자기 이름이 높아지는 걸 원하지 않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분들 앞에 있으면 부끄러워요. 어떤 분은 중국에서 탈북자 자매들을 양육하고 있는 분인데, 자매들이 고통 가운데 탈북하는 걸 보면서 헌신을 결심하신 분이죠. 이분은 무릎이 아파서 절뚝거리세요. 제가 감옥에서 나와서 만났더니 암에 걸리셨더군요. 그럼에도 탈북자들 만나고 양육하고 돕고 계셨어요. 암병동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고 좋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감옥에서의 시간이 행복한 시간으로 마음에 남아 있죠. 몇 개월 동안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은혜를 많이 누렸어요. 천국의 맛을 조금 보게 하셨다고나 할까요. 이런 힘으로 상황에 상관 없이 모두들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 한국교회도 북한 선교에 협력하고 있나요?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비율이 떨어져요. 그래서 한국교회가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북한 선교를 위한 모임을 가동 중인 교단도 있고, 교단들이 연합해서 북한 선교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북한 선교에 대한 정보나 기도 제목들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통일소망선교회는 소식지를 통해 매월 긴급한 기도제목을 나누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통일 소망 TV’에서는 많은 기도 제목들과 북한의 소식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지하교회가 있죠. 정치범 수용소에는 7만 5000명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야기에요. 그 안에서 예수님이 전해져요. 우리 교회 집사님의 경우도 교화소 안에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요. 알게 모르게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지고 있어요. 눈에 보이는 교회는 아니지만, 가정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같은 단체들은 통일이 되면 북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북한 교회 개척 학교를 진행하면서 북한이 지금이라도 열리면 팀을 만들어서 북한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복음 전파의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2021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곧 28기가 시작됩니다. 대구, 대전, 포항, 일산, 부산, 제주 등에서 열리고, 미국에서도 북한 선교학교가 열립니다. 이 학교에는 북한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분들이 오셔서 훈련을 받으세요.”
– 통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도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게 통일 준비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북한 선교 단체들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도 복음만 제대로 들으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거든요. 우리 열방샘교회 성도들은 160명 정도 되는데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절반씩 있어요. 통일된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거죠. 처음엔 갈등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갈등이 사라지고 지금은 서로 간에 관계가 좋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먼저는 북한에 대해 배우는 것이 북한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인들을 일대일 양육할 때도 저는 ‘나는 배우러 왔다. 북한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고, 나는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겠다.’ 이렇게 하면 공감대도 형성되고 서로가 북한 선교를 위해 준비될 수 있어요.”
– 끝으로 기도 제목 말씀해주세요.
“탈북한 분들이 중동에 있는 난민들을 돕자는 의견을 냈어요. 누구보다 난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탈북민들이죠. 그래서 이슬람까지 복음을 들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동 선교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탈북민들과 튀르키예로 난민 사역을 하러 가면서 통일 후를 내다봤어요. 나중에 북한에 들어가서 사역을 한다고 해도,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게 사명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바라보며 나가야 된다. 통일은 될 거고 중동 난민들을 향해 나아가자라고 말이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부르신 곳에서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C.K.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정년을 앞두고 방문한 선교지에서 헌신을 결정했어요”
“위로받는 환자들, 예수님을 영접하다”
“고아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