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영 집사(동명교회)
286호 / 사람풍경
황선영 집사는 20년 넘게 인공신장실에서 신장 투석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봤다. 황 집사의 별명은 ‘지혈의 신’. 지혈이 안 되던 환자도 황 집사의 손에선 지혈이 잘됐기 때문이다. 복음을 만난 이후 황 집사는 환자들의 ‘시다(した, 하인)’가 됐다고 말했다. 오랜 경력과 노하우는 그에게 배설물이 됐다. 자신이 간호사라는 사실보다 오랜 병으로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며 고통하는 영혼들이 황 집사에겐 더 컸다. 거절해도 다가가고 또 다가갔던 그의 간호 일기를 소개한다.
병원에서의 일화다. 황 집사에게만 치료를 받기 원하는 한 환자가 있었다. 하루는 황 집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하게 됐다. 환자는 이렇게 된 것이 황 집사의 실수인 것처럼 덮어씌우고 이송비와 합의금을 요구했다. 병원은 환자의 요구를 들어줬다. 황 집사는 간호사로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돈을 해줬으니 그 환자가 다시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 오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환자가 돌아왔다. 마침 황 집사는 선교 훈련을 받으면서 아웃리치도 다녀온 상태였다. 그분에게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자 ‘다시 하나님 얘기하면 가만히 안있겠다.’고 화를 냈다.
며칠 후 그 환자의 예약일. 환자가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대답을 들었다. 주님은 황 집사에게 찾아가서 만나보라는 마음을 주셨다. 보호자는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까지 찾아가야 하냐고 주님께 물었다. 주님의 대답은 같았다. ‘만나보라.’ 황 집사는 환자와의 잠깐의 면회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고 돌아왔다. 하나님은 계속 그분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을 주셨다. 황 집사는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환자와 통화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복음을 전했다. “보호자님, 환자분이 고개를 끄덕이나요?” “네.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다음 날 새벽, 그 환자가 임종했다. 그분의 장례식이 비록 불교식으로 진행됐지만, 주님이 이 영혼을 받아주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다
– 환자들을 이렇게 섬기는 간호사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병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들려주세요.
“제가 복음을 만나고 깨지고 나니까 환자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님이 제 한계를 넘어서게 하시는 환자가 있었어요. 저를 편하게 여기면서도 모진 말을 쏟아내시는 할머니셨는데, 돌아보고 싶지도 않더군요. 그런데 주님이 그분에 대한 마음을 주시면서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분을 위로하라시는 거죠.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위로를 해드렸는데, 할머니가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셨어요. 지금은 요양원에 계세요. 무연고 어르신인데, 그분을 두고 기도하면서, 그분의 장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시는 거예요. 저는 복음을 전하고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는데, 기도할수록 그분의 장례도 우리 교회에서 감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교회 식구들에게 이 마음을 나눴더니 교회 지체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5~6명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작은 풀뿌리 교회일 뿐인데요.”
– 환자의 장례까지 섬기신다고요? 너무 놀라운 일인데요?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놀라긴 해요. 최근에는 이 할머니를 찾아뵙고 왔어요. 이분이 투석하러 오지 못하시기 때문에 몸이 어떠신지 살펴보려고 갔던 것이죠. 가서 보니 할머니가 말을 못해도 응급상황이 생기면 119가 출동할 수 있도록 CCTV를 설치해 드려야겠다고 생각이 됐어요. 그래서 주위 사회복지 센터와 연계해서 CCTV를 설치해 드리고 왔죠. 병원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하니까 ‘진짜 갔다 왔어? 이걸 해준다고? 아무 대가 없이 이걸 해준다고요?’라고 몇 번을 확인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종종 있는 일이에요. 한 번은 빈혈 수치가 3으로 떨어진 사람을 제 차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적이 있어요. 빈혈 수치가 10이 넘어야 정상인데 3이 나왔다는 건 거의 사망 직전이거든요. 환자를 이송하면서 ‘예수님 믿어본 적 있냐.’고 묻고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드렸어요. 주위에서는 ‘아무 대가 없이 한다고?’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지금 그분은 빈혈 수치가 13으로 회복됐어요. 저보다도 높아졌죠.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 또 다른 이야기도 있나요?
“남편이 일하는 카센터 건물주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어느 날 남편이 건물주가 암에 걸렸다는 거예요.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분 병실에 찾아갔어요. 보통은 음료수 같은 걸 사 가지고 가는데, 그때는 가지고 갈 게 김치밖에 없었어요.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중에 잘 못먹어서 많이 말랐더군요. 그분이 제가 가져간 김치를 드시더니 이 김치가 북한식 맛이 난다면서, 입맛이 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주님이 그분에게 계속 찾아갈 마음을 주셔서 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하나님 전할 거면 오지 말라더군요. 어느 날 갔더니 중환자실로 옮겨져 있었어요. 그렇게 사경을 헤매는데도 제가 가니까 고개를 돌렸어요. ‘주님, 저 그분에게 안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해도 계속 가라는 마음을 주셨죠. 아내 분은 저에게 왜 자꾸 오냐고 묻더군요. 저는 하나님 전하러 오는 거지 다른 건 없다고 했어요. 돌아 나오는데 건물주 아들이 가게 월세 깎아달라고 오는 거 아니냐고 엄마에게 말하더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모르니까. 어느 날 갔는데 그분이 축 처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장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들려주는데, 그날은 고개를 안돌리더군요. 제가 전하는 말씀에 ‘아멘’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만 깜박이면 된다고 했더니 눈을 깜빡거렸어요. 주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돌아왔는데, 그날 새벽에 임종하셨어요. 다음 날 퇴근하고 장례식장에 갔는데, 역시 불교식으로 차려져 있었어요. 그래도 상관 없었어요. 마음이 너무 기뻤죠.”
때로는 복음을 전하다 오해도 받지만…
– 어떻게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간호사가 되셨어요?
“처음 교회에 나간 건 병원에 사표를 던지고 잠깐 보험설계사를 하던 때였어요. 간호사 11년차였는데, 뻔한 간호사 월급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보험설계사를 택했어요. 그러나 막상 두려운 마음에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간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도 병원에 비치돼 있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다니지도 않으면서 힘들면 새벽기도 가서 앉아있곤 했죠. 막상 교회에 나가보니 교회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너무 컸어요.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이 기쁨을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보험설계사를 하면서는 쫄딱 망했는데, 그 무렵의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저의 지난 모든 것들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는 시간을 통과하게 됐어요.”
– 그게 무슨 말씀인지 조금 풀어 설명해주세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제하던 사람과 아이가 생기면서 결혼을 하게 됐어요. 당시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던 남편이 공부를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시댁에서는 우리 아들 앞길 막았다며 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셨어요. 그래도 며느리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시댁에 거의 매여 살다시피 했어요. 그래도 여러 일들을 통해 어려움이 많았죠. 남편과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남편은 저에게 전부였어요. 평생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살았어요. 보험설계사를 한 것도 남편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에게는 끊어지지 않는 죄가 있었어요.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것도 어려웠죠. 제가 43살에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으로, 내게 허락을 잘 해주지 않는 하나님으로 생각이 됐어요. 그런데 복음학교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렸어요. 하나님은 이미 죄인인 저를 구원하시려고, 가장 좋은 것, 하나님의 아들을 주셨더군요. 이제는 하나님이 제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고백을 해요.”
–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신 거군요. 이후에는 어떻게 되셨어요?
“남편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병원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갑자기 직원들이 그만 두면서 사직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그때 마음 안에 전쟁이 치열했어요.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지나온 모든 것을 끊어버리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 말은 그동안 힘들었던 남편 문제, 나의 경력, 부모님과의 어려움들에 대한 모든 것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여기라는 것이었어요. 먼저는 죄가 여러 번 드러나고 죄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고통하는 남편을 보는데 이 사람이 한 영혼으로 보이더군요. 평생 애착하던 남편이 마음에서 분리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전의 황선영은 없다. 이제는 주님이 살게 하시는 삶만 있다.’고 남편에게 고백했어요. 직장에서도 직원들에게 나에게 찾아온 복음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전히 나를 포장하고 싶더군요. 오래된 수간호사라는 위엄도 있기 때문에 나의 연약한 것들을 오픈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말씀에 순종해서 나의 복음을 나누고 나니까 더 감사했어요. 간호사로서 자부심을 가지면 뭐하겠어요. 병원에서 지나온 내 과거를 다 끊어버리고 나니 교회를 다닌 적 없는 후배들도 작은 예수가 여기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상 286호에 게재>
“이전에는 나만 아는 오래된 노하우를 알려주기 싫었어요. ‘나는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그 노하우가 다 전수돼서 제가 바로 그만둬도 상관 없을만큼 돼 있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너 밥그릇인데 왜 남을 줬냐.’고 해요. 이제 그런 건 전혀 상관없어요. 그전엔 잘 웃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사진을 보니 웃고 있더라고요. 환자들도 삶의 소망이 없고 힘드니까 나를 보면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라고 물어요. ‘저도 즐겁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즐겁네요.’라고 말하죠.”
하나님을 알고 시작된 즐거운 삶
– 복음을 만난 기쁨이 환자들에게까지 흘러갔네요.
”하루는 한 환자가 인생에 소망이 없어서 죽으려고 바다에 갔는데 제 웃는 얼굴이 생각나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너무 감사한 거죠. 제가 병원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다면, 남편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 있었을까 생각해요. 남편과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제 잘난 맛에 살았을 것 같아요. 나를 훈련 시키기 위해 주님이 고르고 고른 통로가 됐던 분들이 한 영혼으로 보여지니까 전에는 원망스러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복음을 전하고 싶고 섬기고 싶은 사람들이 됐어요. 예수님 믿기 전에는 어린 나이에 이 일을 시작해서 자신감이 대단했어요. 어디서나 저는 간호사 황선영이었어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야 하나요? 직장에서 선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헌신은 선교사 같이 특별한 부르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상에서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도 헌신이더군요. 그리스도인으로 직장 내에서 선교사로 서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늘 생각해요. 남들이 하기 싫어하고, 터부시하는 일들에 먼저 달려가게 되고 환자들을 곁에서 살펴보게 돼요.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환자를 대했어요. 단순히 생업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소명이 됐고,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무엇이 힘든지 이야기를 들어주죠. 환자들 숨소리만 들어도 쥐가 나는지, 혈압이 떨어졌는지, 저 하품이 졸려서 하는 하품인지, 혈압이 떨어져서 하는 하품인지도 알죠. 투석실 간호사는 곡식이 익어가듯 익어가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기술 늘었다고, 그게 전부라고 앉아있다 보면 환자들 위험한 상태로 놓칠 수 있다. 한 번이라도 더 환자 곁에 가서 숨소리 들어주라.’고 말하죠. 어떨 때는 숨소리도 못 내고 힘들어하거든요. 그럴 때 포도당이라도 놔 주면 꽃에 물 주듯이 환자가 살아나요. 간호사가 익어야 환자가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 환자들을 돌보면서 힘든 적은 없으셨어요?
“성격이 거친 사람들을 보면서 왜 나를 힘들게 할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를 빚으신 하나님을 보게 돼요. 이것도 다 하나님을 만나가는 과정이라는 게 깨달아지니까 까다롭게 굴어도 원하는 대로 해주게 되더군요. 최근에도 자존심 세고 날카로운 환자가 왔어요. 환자를 처치하다가 팔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야 되는데, 전기장판을 세게 틀어놔서 테이프가 녹았더군요. 그걸 뜯다 보니 피부를 찝었죠. 이분이 병원에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어요. 그래서 제가 사실 그대로, ‘날씨가 더운데도 테이프가 녹을 만큼 장판까지 틀어놨다. 그래서 테이프가 녹아서 이렇게 됐다.’고 이야기했더니 환자가 고개를 돌리더군요. 이후로 그 환자가 오면 불편해서 피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즉시 불편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하셨죠.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다가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순종은 못했어요. 어정쩡한 마음으로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쉬는데 전화가 왔어요. 그 환자가 지혈이 안된다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불러내신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래도 가기 싫어서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안받더군요. 일단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저보다 집이 가까운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전화를 받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죠. 그런데 역시 안받아요. 결국 제가 병원에 가서 그 환자를 만났어요. 환자 옆에 앉아서 손지혈을 해줬어요. 그러는 동안 그 환자의 마음도 녹고, 제 마음도 녹았어요.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옆에 있는 것뿐이었어요. 마음이 녹은 환자가 ‘선생님이 지금까지 치료해줬는데, 다시 나 해주면 안돼요?’라고 묻더군요. 제가 돌파구를 못 찾고 결단하지 않고 있으니 주님에게 결단을 당한 거죠. 그 다음부터 환자가 저를 더 믿고 맡기더군요. 주님한테 감사했어요.”
치료는 환자 옆에 그냥 있는 주는 것
– 한 걸음씩 순종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환자들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것 같은데요.
“투석을 마치고 환자들이 외과의 도움을 받아야 될 때가 있어요. 한 번은 치료를 마친 환자를 제 차에 태워서 외과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밥을 사드렸어요. 사람이 밥심으로 산다고 하면서요. 병원에서도 밥맛이 없다고 밥을 안 드시는 분들에게는 밥을 더 드리면서 ‘허기지면 안된다. 밥심으로 살아야 된다.’고 말하면서 드려요. 그러면 다 드세요. 물론 제 마음은 먹고 살아서 복음 들으셔야 된다는 마음이죠. 그러면 환자들이 어떨 때는 기운 없어 보인다고 과자를 사준다며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세요.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요. 몇 봉지 고르면 과자를 한아름 사서 먹으라고 주세요. 피곤해 보인다고 비타민도 사주고, 간에 좋은 거라며 주시고, 과일에, 생선에, 어느 때는 반찬까지 해다 주세요. 그것으로 주일 예배 이후에 교회 식구들과 함께 나눠 먹어요. 그런데 날마다 그 음식이 풍성해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계획은 없어요. 다만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느헤미야52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주신 마음은 나가서 복음을 외치라는 거였어요. 저는 관계 전도가 은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가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전에 비하면 지금은 주님이 좀 더 깊은 강가로 인도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좀 더 하나님을 깊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가장 최우선 순위에 있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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