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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사탕 한 알의 호의

사진 : 김봄 제공

시에라리온 막대 사탕 한 개의 가격은 500레온이다. 한국 돈으로는 50원.

50원으로 껌 하나도 사 먹을 수 없는 한국 물가로 따지면 엄청 싸다고 하겠지만, 이곳은 세계 최고의 빈민국인 시에라리온. 대부분 이들의 한 끼 양식인 빵 한 개가 1000레온이다.

하루 1000레온 짜리 빵 하나로 하루를 사는 사람도 있는 이곳에서 500레온 짜리 사탕은 언감생심이다.

내가 마을 아이들을 만나서 처음 한 일이 500레온짜리 사탕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이방 아줌마를 보고 도망가는 아이들을 나의 앞으로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안녕. 이곳에 이사 왔어. 잘 부탁해. 친하게 지내자.’라고 멋들어지게 팀니어를 하고 싶었지만,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하고 사탕을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비싼 고급 사탕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만만한 막대사탕이었다. 나에게는 동네 아이들에게 막대 사탕 하나 사줄 만한 여유는 있었다.

처음에는 몇몇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더니 어디 방공호에 숨어있다가 나온 것처럼 순식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나에게 손을 뻗은 아이 중 한 명도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최선을 다해 사탕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악착같이 사탕을 받은 아이들이 껍질째 입에 물고만 있었다.

귀한 사탕이라서 아끼고 나중에 먹으려나 했는데, 알고 보니 껍질을 못 까고 있는 거였다.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껍질째 입에 물고만 있던 사탕을 내밀었다. 까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아이가 내민 사탕은 침 범벅이었지만,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침 범벅이 된 사탕보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건, 까지지 않는 껍질이었다. 어떻게 단단하게 동여매어 놨는지, 까서 먹으라는 건지, 영원히 봉인해서 유물로 남겨두려고 한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국가의 기밀도 아니고 겨우 사탕이지 않은가?

어렵게 구한 만큼 먹는 것만큼은 쉽게 먹어야 하지 않은가?

결국, 나도 아이들처럼 이로 물어뜯었다. 아이의 입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탕이라는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겨우 까서 건넸더니,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내밀었다.

한국 같으면 ‘못 까면 못 먹어. 혼자서 깔 수 있는 자만이 사탕을 먹을 수 있어.’라고 말했겠지만, 이곳에서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어서 빨리 하나라도 더 까서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 밥도 아니고, 과일도 아니고, 무슨 몸에 좋은 거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나는 사탕 나눠주고 껍질도 까주는 백인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면 당연하게 사탕을 요구했다.

‘절제가 필요한 것일까? 나중에 안주면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호의가 호구를 만든다고 하는데…. 무절제한 나눔, 원칙 없는 기부는 수급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그동안 내가 고수했던 원칙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결국 ‘그깟 사탕 하나가 뭐라고. 하루 한 끼 겨우 먹는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 주는 거잖아. 밥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지독히도 껍질 까지지 않는, 겨우 막대 사탕 하나잖아’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기로 했다. 이때까지 내가 고수했던 원칙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현지어를 할 수 없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굶주린 아이들 입에 사탕 한 알 넣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도, 이것도 절제와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사탕 껍질을 까는 것만큼 너무 어려웠다.

어느덧 능숙하게 사탕 껍질을 깔 수 있게 된 나는 멀리서 나를 보고 달려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나의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 궁금해하고, 스윗(sweet)을 달라고 한다.

‘당신은 나에게 사탕을 주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어요?’라는 당당한 표정으로.

그러면 나는 조건 없이 사탕을 준다.

아이들이 나를 사탕 주는 호구 아줌마로 생각해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여전히 나는 사탕을 나눠줄 것이다.

처음에는 사탕만 요구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디가 다쳤다며 약을 발라 달라기도 하고, 신발이 필요하다며 맨발을 보이기도 하고, 다 떨어진 옷을 보이기도 한다.

예배 때 가르쳐준 찬양을 시키지 않아도 부르기도 하고, 내가 가르쳐준 알파벳을 외우기도 한다. 이렇게 했으니까, 사탕 하나 더 달라는 소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뭔가를 하지 않아도 나는 사탕을 줄 텐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줄 때마다 기도한다.

‘아이들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를.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나님만을 기대하기를. 겨우 사탕 한 알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 보답받지 않도록. 준 것은 잊어버릴 수 있도록. 내 안의 사랑이 매일 매일 차고 넘치기를. 사랑을 낭비하고, 나의 몫으로 갖고 있지 않기를. 그러니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달라고.’

내일도 나의 가방에는 한가득 사탕이 들어있을 것이다.

사탕 한 알의 호의가 나를 호구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난 호구가 되기로 했으니까.

나에게는 아이들에게 사탕 정도는 사줄 만한 여유가 있고, 사탕 정도는 사주라며 헌금을 해주는 호구 친구들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이 나를 호구처럼 사랑하시니까.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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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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