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 입 “새로운 위협에 대응해야…영국, 홍콩에 민주주의 준 적 없어”
조니 라우 “많은 사람 불안해 해…홍콩 정부만 새로운 법 필요하다 여겨”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전멸했음에도 홍콩 당국은 별도의 ‘홍콩판 국가보안법’ 추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직접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후에도 이를 보완하는 별도의 국가보안법을 홍콩이 따로 제정해 자신들이 만든 법에 담기지 않은 다른 죄목까지 처벌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22일 중국의 반관영 매체인 홍콩중국통신사와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 위험에 맞설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올해나 늦어도 내년까지 반드시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콩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의 레지나 입 의장과 언론인 출신 정치 평론가 조니 라우의 의견을 들었다.
◇ 친중 정치인 “국가보안법으로 홍콩 사회 안전·안보·안정 되찾아”
친중 진영 정당인 신민당의 주석이기도 한 레지나 입 의장은 “2019년 폭동의 전복적인 성격이 중국 정부가 우리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게 만들었다”며 “국가보안법 시행 후 홍콩 사회는 안전·안보·안정을 되찾았고 이는 우리의 경제 회복을 위한 초석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해당 법의 시행으로 많은 이들이 이민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언급을 회피했다.
홍콩 기본법(미니헌법) 23조는 반역, 분리독립, 폭동선동, 국가전복, 국가기밀 절도 등에 대해 최장 3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이와 관련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외국 정치기구가 홍콩에서 정치활동을 하거나 홍콩 정치단체가 외국 정치기구와 관련을 맺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입 의장은 “우리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법률을 제정할 의무가 있다”며 “마카오는 이미 2009년에 그러한 의무를 완수했는데 우리는 중국으로 반환된 후 26년 동안 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영국(식민지 시절)으로부터 이어진 간첩죄, 반역죄 등이 낡아 새롭게 손을 봐야 한다. 영국·호주·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들도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국가보안법을 수정하고 있다”며 “우리 역시 똑같이 그렇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입 의장은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촛불 집회가 자취를 감췄다는 지적에 “개인적으로 6월 4일에 촛불을 들어 올리는 데는 아무런 위법 요소가 없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공안조례, 형사조례 또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지난 30여년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 집회가 강력한 반중 색채를 띠고 반중 정서를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촛불집회 주최자들은 중국의 집권당(공산당)을 무너뜨리겠다고 맹세했다”며 “중국에서 분리할 수 없는 지역인 홍콩에서 그러한 일을 묵인하는 것은 홍콩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입법회(의회)는 친중 진영만으로 채워졌고 선거제 개편으로 보통 선거권에 대한 희망은 더욱 멀어졌다.
현재 홍콩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은 국민의 0.02%에 불과한 인원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체육관 선거’로 뽑고 있다.
여기에 2021년 선거제 개편으로 입법회의 직선 의석은 35석에서 20석으로 줄었고, 연말로 예정된 구의회 선거에서도 시민들이 직접 뽑는 의석수는 기존 452석에서 88석으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대해 입 의장은 “영국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준 적이 없고 서구식 민주주의는 영국과 중국이 1984년 체결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이나 기본법에서 약속된 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홍콩에서 지난 26년간 펼쳐진 서구식 민주주의 실험은 잘되지 않았다”며 “이는 분열을 심화하고 정치적 폭력을 부추겼다. 입법회 선출직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는 홍콩의 발전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 정치 평론가 “구의회 선거 개편, 홍콩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퇴보”
조니 라우 평론가도 지난달 홍콩 정부가 새롭게 조직한 56인의 전문가 자문단에 발탁된 인사이지만, 입 의장과는 다른 의견을 냈다.
그는 “홍콩이 국가보안법 시행 후 대단히 많이 변했다”며 “국가보안법은 모호하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은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이들이 이민을 떠난 것이 국가보안법의 여파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다”며 “특히 금융·교육·의료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이민을 갔다. 이러한 종류의 전문가들은 홍콩에 귀한 존재들이다”라고 답했다.
라우 평론가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별도 제정에 대해 “홍콩 정부만이 그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이 이미 대부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기본법 23조에 따른 법률은 주로 홍콩의 내부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구의회 선거에서 직선 의석이 대폭 줄어드는 것과 관련해 “입법회 선거에 이어 홍콩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퇴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19년 거센 반정부 시위 도중 치러진 구의원 선거는 민주화 열망 속 역대 가장 높은 71.2%의 투표율 속에서 민주당 등 범민주 진영이 선출직 452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이전까지 고위 공무원과 입법회 의원에 국한됐던 ‘충성 서약’ 대상을 2021년 5월 구의원으로까지 확대하며 압박에 나섰다.
당국의 충성 서약 심사 결과 자격이 박탈된 구의원은 이전까지 받은 수억원대에 달하는 활동비를 반납해야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210여명의 구의원이 파산과 조사를 우려하며 충성 서약을 하기 전에 자진 사퇴해버렸다.
또 구의원 49명은 충성 서약 후 당국에 의해 자격이 박탈됐고 일부 의원은 구속됐다.
이를 두고 입 의장은 “2019년 구의회 선거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 역시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보편 선거권에 기반한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강력한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2019년 시위가 폭동이며, 당시 치러진 구의회 선거도 혼란 속에서 자격 없는 의원들을 대거 배출했다는 것이 친중 진영의 주장이다.
그러나 라우 평론가는 구의회 선거제 개편이 퇴보라고 지적한 것이다.
라우 평론가는 “홍콩인들은 가까운 미래에 보편 선거권이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이나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다만 “그러나 그에 대한 요구는 일정 시간 후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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