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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예수님, 가지 마세요!” 슬픈 거리급식

사진: 원정하 제공

오늘의 빈민식사 사역은 ‘거리급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거리급식은 ‘빈민 자선 식당’에서 할 때 보다 많이 힘듭니다. 음식과 절제회 전도팩(만화전도책자+금주금연 팜플릿 +껌 세통)을 나누는 것은 같지만, 통제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을 투입해서 우리의 주의를 산만케 해, 도시락 하나를 더 받아 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차오’ 선교사님과 아들 데이브 군, 그리고 백일학 집사님과 가네쉬 형제가 동역해 주었기에 큰 힘이 되었지만, 음식이나 전도팩을 정량보다 더 가져가려는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거짓말을 다 막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순서표도 나누어 줘 봤는데, 그래도 속이더군요. 이번에는 받은 아이들이 집에 가기 전에 열 명 정도씩, 음식과 전도팩을 들고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그래야 거짓말을 하며 또 왔을 때 거절할 증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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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원정하 제공

아주머니들은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자기 아이들이 몇 번씩 더 받게끔 시도하곤 합니다. 그리고 도우미들이 ‘이 아이는 받았던 것 같은데?’ 하면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랩을 방불케 하는 온갖 빠른 말과 뻔뻔하고 악의적인 연기력을 총 동원해서 따지고 듭니다.

오늘도 그런 분이 있었는데, 자기 아이가 받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계속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쉬지 않고 말을 합니다. 제가 조금 거칠게, 아예 폰을 코앞까지 들이대고 보여주며, 여기 있는 도우미들(이 동네 청소년들)에게 사과하라고 다그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휙 가버렸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토록 우리를 도와주었던 도우미 아이 하나가, 이미 받은 절제회 전도팩을 도시락 밑에 숨긴 후, 도시락만 받고 팩을 못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부루투스! 너마저도!!”) 저는 바로 그 아이의 팩 뿐만 아니라 도시락까지 빼앗아서, 못 받은 다른 아이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리스크가 없으면, 이들은 늘 부당 이익을 시도합니다.

아마 오늘도 저희의 감시망을 피해 어떻게든 하나 둘 더 챙긴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인을 어떻게 속여 뭘 하나 더 얻어냈는지에 대한, 자랑스럽고 효심 깊은 ‘간증’들을 나누고 있겠지요. 저희는 호구입니다. 백년 호구.

그리고, 받은 이들의 행복한 기억보다는 못 받은 이들, 심지어 속임에 실패한 이들의 원망이 더 깊이 남을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교에서도, 어릴 적 미국 선교사들에게 서운했던 것을 강의 때 자주 언급하시던 교수님이 계셨을 정도니… 지금 이곳에서 저에게 칼 갈고 있는 이들은 오죽 많을까요. 한 아이는 끝까지 저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더라구요. 그게 오늘 그곳을 떠나면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그래, 강의 때 마다 제 욕을 해도 좋으니 신학교 교수님으로 자라만 준다면, 아니 그냥 성도로라도 자라 준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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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받은 아이들. 사진: 원정하 제공▲도시락을 받은 아이들. 사진: 원정하 제공

다음에는 도시락을 150개에서 200개로 늘리기로 했고, 또 도시락 받은 아이들마다 하루 이틀에는 절대 안 지워지는 도장을 손톱에 찍어주기(인도 정부에서는 신분증 없는 국민들의 배급품 수령 여부나 투표권 사용 여부를 이렇게 관리합니다.)로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씁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순서표, 사진에다가 도장까지 활용해야 하나 봅니다.

오늘 저와 동역자들이 함께 찍어 공유한 사진만 백여 장인데, 그게 즐거운 사역의 장면이 아니라 거짓말 탐지 여부 증거용이 대부분이었으니 정말 심장이 쪼개지는 기분입니다. 그걸로 약간의 정의 구현을 했고, 속여서 더 받을 이 대신 모자라서 못 받을 이 하나를 더 먹였으니 잘 된 건 사실이지만 정말이지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스탭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 때문에 속이려던 누군가가 시도를 포기하는 예방 효과도 있으니 하긴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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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우미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 사진: 원정하 제공

집에 와서, 부활절 특선으로 공개된 ‘Sight & Sound Theater’의 ‘예수’라는 뮤지컬을 가족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봤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김다위 목사님께서 실황으로 보여주셔서 많은 은혜를 받았었는데, 오늘은 보면서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 꽃동산 같은 곳에서 아이들에게 얼마나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말씀하시는지를 보며, 저는 당장 오늘의 사역에서 전혀 그러지 못했던,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 괴롭더군요. 마지막 장면에 예수님이 승천하시는데, 저는 속으로 ‘가지 마세요. 예수님, 가지 마세요…’ 하며 한탄했습니다.

이전의 어느 빈민가에서는 아이들이 저를 예수님인 줄 안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상영한 후, 현지인 동역자가 예수님의 행적을 소개하는 짧은 설교를 하곤 했는데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아이들이 그 예수님이 저인줄 알았던 것이지요. 제가 외국인인데다 인도 전통 흰옷을 입고 다니고, 또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겠지요. 필사적으로 “나는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 중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수습하면서도, 그때의 흐뭇한 추억은 제 마음 속 보물상자 한편에 잘 갈무리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래도 만화 속 예수님 같기는 했구나 하면서요.

그런데 오늘은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커녕, 사역의 엄격한 선도부장 쯤 되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고 꾸중 들은 제자의 포지션일지도 모르지요. 그게 속상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음식은 그들에게 먹혔고, 말씀은 그들에게 뿌려졌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시고, 또 육신으로 오신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 빵과 말씀의 전달자일 뿐입니다. 그 음식도 만화전도책자도 제가 번 돈이 아니라, 한국의 성도들이 직장에서 번 돈으로 전달한 것이니, 저는 전달자의 전달자 정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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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원정하 제공

택배기사가 불친절해도, 배달받은 물건이 마음에 들면 행복하겠지요. 성실하고 무뚝뚝한 기사가, 친절하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나 외진 곳의 배달을 누락 하는 기사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많이 쓰이는 변명이지만, 인도 분들이 제가 아니라 제가 전달한 것을 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도 배달은 열심히 하니까요.

십자가 앞에서 죄인 중의 죄인에 불과한 저를, 제가 수고도 하지 아니한 재정으로, 이 귀한 복음을 전달하는 책임을 맡기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오죽 사람이 없으셨으면ㅜㅜ)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혹은 무덤 속의 제 뼈가 나사로처럼, ‘일어나라’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될 날까지, 계속 걸어 나가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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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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