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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함석헌, 동양 종교와 기독교를 융합한 사상가

사진: kabita Darlami on unsplash

눈먼 기독교(21)

함석헌은 전 생애를 실천적 사상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김교신 등과 함께 우치무라 간조로부터[1] 기독교 정신을 배웠고, 귀국 후 「성서조선」을 발행에 참여하기도 했다. 1942년 5월, 「성서조선」의 발행에 관계하던 열 세 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 투옥되어 그곳에서 자신의 기독교 사상을 다양한 동양사상과 융합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불교와 도교에 관련된 폭넓은 독서는 그를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닌 사상가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다음 글을 보라.

함석헌은 감옥 안에서 『반야경』, 『법화경』, 『무량수경』, 『금강경』 등 다양한 불경을 읽었다. (중략) 그리고는 기독교와 불교의 이치가 같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중략) 함석헌은 또한 『도덕경』과 『장자』를 읽으면서 도가(道家)의 평화주의 사상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감방 대학’의 폭넓은 독서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 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그 근본에서 하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2]

「성서조선」 발행을 통해 식민지 조국에 민족정기와 기독교적 사상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함석헌은 그 일로 말미암아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에서 기독교를 버리게 된다. 『함석헌 평전』의 지은이는 함석헌이 기독교와 불교의 이치가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기독교를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종교의 근본이 하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하니 함석헌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종교혼합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셈이다. 그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자, 공자, 부처의 경전도 보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에게 있어 예수와 다른 성현들은 같은 인생 목적을 지향하는 스승들이었다.

농사짓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이나 고기 잡는 사람이나 공장 직공·정치인·학자·종교인, 심지어는 석가·공자·예수에 물어 볼지라도 잘 살려는 마음 즉, 이 한 생각만은 똑같이 가지고 있으리라.[3]

일반적으로 이 말은 틀리지 않다. 잘 살려는 마음, 틀림없이, 부자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사람답고 존귀하게 사는 것을 말할 터인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 성심(誠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 말은 정확히 틀렸는데, 그것은 예수의 궁극적인 관심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관심은 ‘거듭남을 통한 새로운 피조물’에 있는 것이지 인간성의 실현이 아니다. 물론 거듭남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그 결과로 인간성의 실현도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다른 성인(聖人)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 바로 그가 참 예수를 몰랐다는 증거다. 실제로 함석헌에게 있어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존재는 예수가 아닌 바로 노자와 장자였다.

안팎으로 답답한 가운데에서도 함석헌의 숨을 틔워 준 영적 생활의 동반자가 있기는 있었다. 그 하나는 노장 사상이었다. “이 몇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4]

다석 류영모, 동양적 사상을 추구한 재야 영성 학자

함석헌이 동서양 융합 사상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의 스승 다석 류영모의 영향이 컸다. 일제 식민지 시절, 남강 이승훈이 세운 기독교 민족 학교인 오산학교의 교사와 제자로 처음 만난 류영모와 함석헌은 이후 오랜 세월 사제(師弟)로서 함께 했다.[5] 비록 미션 스쿨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류영모는 오산학교 시절 이미 정통 기독교를 떠났다. 그 무렵 독서를 통해 알게 된 불교와 노장[6] 사상 그리고 공맹[7] 사상에 이르는 동양사상이 그에게는 크게 와 닿았고, 거기에다 톨스토이 사상까지 더해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 체계를 구현하게 되었다.

함석헌. 유튜브 캡처.

류영모는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예수의 신앙을 배우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이것은 그가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신앙을 따르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 자체를 신앙하는 종교인 것을 그는 몰랐다. 류영모는 예수와 부처의 사상이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말한 성령이 노자에게는 도(道)였고 부처에게는 다르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예수의 길, 진리, 생명 역시 맹자의 호연지기와[8]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맹자의 호연지기는 예수가 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얼나를 두고 일컫는 것이다. 얼나로는 하느님과 내가 하나다. 전체인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느님은 바로 참나다. 나약해서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참나의 깨달음이다.[9]

류영모의 사상은 기독교와 동양사상을 융합했으면서도 한국적 심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드러내는 독특한 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또한 자신이 독특하게 깨달은 바를 종교적 신심을 가지고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독창적인 사상과 삶을 흠모해 그를 예수, 부처, 공자나 맹자 같은 성현으로 받들고자 하는 제자들도 있을 정도다. 그의 독특한 삶의 모습 가운데 그가 50대가 되어서 온 가족 앞에서 선포한 소위 ‘해혼(解婚) 선언’이 있다. 이혼이 아닌 해혼은 혼인을 푼다는 의미다. 류영모는 그 후 성생활을 하지 않고, 방 한가운데에 긴 책상 두 개로 담을 쌓고 아내와 한방에서 별거를 하였다.

이것은 독특한 모습을 넘어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적 시각에서는 하나님이 부부를 한 몸이라 부르셨는데 그것을 일부러 외면한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서른일곱 살부터 성생활을 하지 않고 아내와 오누이처럼 지낸 것을 알고 류영모는 그것을 본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시점부터 자기 아내와 동침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간디는 그보다 훨씬 더 어린 십대 소녀들과 평생 동침했다.[10]

류영모를 일컬어 재야 기독교 학자라고는 하지만 그의 사상이 성경의 가르침과 같지 않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육체에 대한 그의 생각은 금욕주의를 넘어 영혼만이 영원하고 소중하다는 영지주의의[11]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있다. 인류 역사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한 예수, 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이요 대자연의 이치인 멸망의 생명인 제나(自己)에서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맘의 제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을 버리지 못해 몸의 부활을 꿈꾸고 나라는 마음(意識)을 버리지 못하여 사후의 윤회까지 바란다. 얼마나 끈질긴 집착인가. 한 마디로 이런 생각은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미혹이요 망상일 뿐이다. 짐승인 제나의 의식을 가지고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살겠다는 생각을 한다.[12]

성경을 믿지 않는 자이기에 육체의 부활을 그는 믿지 않는다. 예수의 성육신은[13] 물론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역시 류영모에게는 넌센스일 뿐이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곧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다.[14] 예수와 석가의 사상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았고, 공자가 중생한 사람이라고 믿은 류영모는 사상의 폭은 넓을지 모르나 참된 기독교를 알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동양사상을 포함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전혀 기독교와 다른 것이다.

가수 조영남, 예수와 씨름 한판 하고픈 영적 방랑자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실력파 가수 조영남은 철학자나 사상가 또는 종교인도 아니면서 사상에 대해 꽤 박식(博識)하고 자기 소신도 뚜렷한 괴짜 인물이다. 그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종교성을 남들에게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가 되고 있다. 물론 그가 미국의 유력한 신학교에서[15] 공부를 한 것이 그 자신감의 커다란 토대가 되고 있으나, 그의 당당함은 단순히 학식의 문제가 아닌 기질의 문제다. 그는 비록 보수적인 신학을 배웠으나 결코 보수적인 신앙을 얻지 못했다. 그는 지금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신앙 없이 신학을 공부한 부작용을 매우 확실히 누리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에 대해서 조영남은 이렇게 주장한다.

통상적으로 풀이하자면 예수의 거듭남은 곧 새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다.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마음을 고쳐먹고 똑바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교리는 이미 예수가 니고데모한테 말하기 수백 년 전부터 그리스에도, 중국에도, 인도에도 있었던 얘기다. (중략) 동서고금을 다 뒤져 봐도 결국은 그게 그 소리다.[16]

조영남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는 거듭남은 결국 마음 새롭게 먹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소크라테스를 말하고, 공자를 말한다. 노자를 말하고, 석가와 원효를 말한다. 이들 모두가 결국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거듭남을 말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예수가 유대교 선생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의 진정한 뜻이라면, 기독교는 그냥 마음의 종교고 사람의 종교다. 그러므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한 가르침은 늘 있어왔다고 하는 조영남의 깨달음은 맞다. 이것은 바로 앞서 함석헌이 말한 것이고, 토마스 머튼이 주장한 것이고, 그 앞서 슈바이처가 믿은 것이고, 톨스토이가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거듭남은 각오, 다짐, 마음의 문제가 아니고, 영(靈)과 성령(聖靈)의 문제란 것을. 조영남은 영의 거듭남을 체험한 바가 없다.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세상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 먹히는 말을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러한 주장이 유행을 타고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예수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만 보는 왜곡된 기독교 신앙이 유럽과 미국을 한바탕 휩쓴 결과, 예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냥 존경스런 인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존경스런 인간을 찾는데 굳이 서양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반세기 전부터 동양의 현자(賢者)와 성자(聖者)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이것을 조영남도 익히 잘 알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서성대는 현대인에게 알타이저나[17] 하버드 대학의 콕스[18]같은 이는 전혀 엉뚱한 방향을 제시한다. “동양으로 가보라!” 그래서 많은 서양 청년들이 조용히 동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비틀즈도, 엘비스 프레슬리도 발길을 돌렸었다. 동양에 가면 적어도 하늘나라에 관한 이해만은 쉽게 터득할 수 있음 것이라는 알타이저나 콕스의 권유는 전적으로 타당했다. 동양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멀리 부처나 노자까지 끌어댈 필요도 없다. 가까이에 원효가 있다. 원효는 선지자 아모스였으며 호세아였으며 세례 요한이었다.[19]

하늘나라에 관한 이해는 동서양의 문제가 아니다. 고금(古今)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진리에 관한 문제다. 그리고 성령에 관한 문제다. 진리이신 예수를 믿지 못하고,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인 조영남의 주장은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상에 속한 주장일 뿐이다. 알타이저 같은 사신신학자와 콕스 같은 해방신학자가 제시하는 방향이 삶의 올바른 지표가 되는 것으로 조영남은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동양에는 서양에 없는 진짜 영성이 있을까? 진짜 진리가 있을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그러진 영성의 소유자들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없다. 그가 주장하는 것을 수긍하고 수용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사실 조영남은 그냥 영적인 방랑자일 뿐이다. 동방을 찾았던,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을 결국 찾지 못했던,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말이다.


[1] 근대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로서 복음주의자였으나 무교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비판을 받기도 한다.

[2] 김성수 『함석헌 평전』, 삼인, 164-166 쪽

[3] 함석헌 외, 『영원히 사는 길』, 대경출판사, 81쪽

[4] 김성수, 『함석헌 평전』, 삼인, 242쪽

[5] 그러나 류영모는 1960년 이후 함석헌을 만나지 않았다. 그것은 함석헌이 60세가 넘은 나이에 자식뻘 되는 젊은 여자와 심각한 스캔들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아내와 자녀를 두고 있던 함석헌은 그것을 후에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으나, 류영모는 1981년 죽을 때까지 제자를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6] 老莊, 노자와 장자

[7] 孔孟, 공자와 맹자

[8] 治然之氣, 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크고 올바른 기운이나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울 만큼 넓고 커서 어떠한 일에도 굴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당당한 기상을 말한다.

[9] 박영호, 『다석 류영모』, 두레, 164쪽

[10] 간디는 힌두교의 풍습에 따라 열세 살에 결혼했지만, 술과 여자, 육식을 금한다는 ‘브라마차리아 서약’을 한 다음부터 부인과 잠자리룰 같이 하지 않았다. (중략) 간디는 여자를 끌어 모으는데 묘한 마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열일곱 살 난 소녀 소니아 슈레딘을 비롯하여 수많은 여인들이 그의 비서 겸 간호원으로 일하기를 자청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자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 비서 업무 외에 마사지나 목욕, 심지어 잠자리까지 함께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략) 간디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금욕 결심을 ‘시험’해 보기 위해 발가벗은 알몸의 여인들과 침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인들은 노환으로 밤이 되면 오한이 나는 간디를 온몸으로 껴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간디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기 일쑤였다. 이 같은 일에 종사한 대표적인 여자가 아슈람에서 온 열다섯 살의 처녀 스시라 나얄이다. 그녀는 비서 업무 외에 간디와 동침하는 일에 대해 “어머니와 함께 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자는 간디의 생질부로, 열여섯 살 난 아바 간디다. 어느 날 간디가 침실에서 그녀에게 옷을 전부 벗으라고 하자 문밖에서 그 말을 엿들은 그녀의 남편이 침실 안으로 쫓아 들어가, 자신이 대신 간디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간디의 대답은 간단했다. “보온을 해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브라마차리아’도 시험하기 위해 아바가 필요하다!” 一 김삼웅, 『역사를 움직인 위선자들』 사람과사람, 24-27쪽

[11] 靈地主我, gnosticism,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 또는 그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 체계를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 이단

[12] 박영호, 『다석 류영모』, 두레, 200-201쪽

[13] 聖肉身, incarnation,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심, 곧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

[14]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 믿는 예수 신앙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슬람은 예수를 마호메트 다음 가는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한다. 그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 기적 행함, 숭천, 재림까지도 믿는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곧 예수의 일부가 아닌 예수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들이 부정하는 그것이 예수 신앙의 핵심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15] 조영남은 미국 플로리다 소재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신학학사를 취득하고 1982년 귀국했다.

[16]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 나무의숲, 118-119쪽

[17] 토마스 알타이저, 신의 죽음을 선포한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

[18] 하비 콕스, 흑인 민권운동과 남미 해방신학에 영향을 끼친 사회윤리학자 겸 신학자

[19] 앞의 책, 책 91-92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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