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회가 문화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며 좋아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 임신했어.” 여자 친구의 말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는 화창한 봄날 공원 잔디밭에 앉았지만 내 감정은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내 마음과 생각은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분명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몇 초 지나지 않아 충격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십대로서 우리가 나중에 겪게 될 일이 무엇일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생이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정도는 즉시 알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진짜 확실한 거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두려운 질문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둘 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부모가 된다는 건가? 우리는 둘 다 아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를 낳냐고? 우리에게는 이런 문제를 처리할 수준의 성숙함이 없었고, 애를 낳고 키울 돈도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실행한 첫 번째 단계는 의사와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충격과 공포와 절망을 확인했다. 의사가 말했다. “애를 지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당시에도 지금처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깊은 확신을 재확인하고 따라서 의사의 제안을 즉시 거부하고 과감하게 다른 길을 개척했다고, 자신 있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희망이 없는 십대에게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낙태는 마치 해결책처럼 느껴진다.
판결 이후, 다음은?
연방대법원이 낙태에 대해 헌법적 권리가 없다고 6대 3으로 판결했다. 낙태 허용 여부는 이제 각 주가 알아서 결정하게 되었다. 대략 절반의 주가 해당 주 내에서 낙태 시술을 아예 금지하거나 아니면 낙태 횟수를 크게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판결을 환영해야 한다. 낙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에 부여하신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말할 수 없는 가치와 존엄성과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판결을 환영하는 만큼 또한 이 판결에 우리가 이제 어떻게 대응할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은 교회가 문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1. 긍휼의 마음으로 무장을 해제하라
낙태가 더욱 제한됨에 따라, 때로는 파트너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충격과 공포와 절망을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일한 선택지가 사라졌다. 분명히 하자. 이 여성들은 그리스도인의 적이 아니다. 적이었던 적도 없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해야 한다.
정치적 문화 전쟁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팡파르가 판단하기 좋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쭐한 기분을 심어줄지도 모르겠지만 위기에 빠진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더 나쁜 것은, 이런 자축 소리가 상처받은 여성들에게는 교회란 도움을 청할 데가 못 된다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지금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닮아야 할 때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과 똑같은 긍휼의 마음을 위기에 처한 여성들에게 보여주자.
2. 행동에 나서라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백 만의 그리스도인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미혼모를 지원하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영웅적으로 일하고 있다. 복음주의자의 특징이란 다른 게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음해가 만연해 있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수도 없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이, 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소외당한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이 교회가 잘한다고 등을 두드려줄 때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더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임신 여성 지원 센터에 연락하라.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기부 금액을 늘리고 자원봉사에 나서라. 위탁 및 입양 기관에 연락해서 입양이나 양육을 고려하라. 이미 그런 사역을 하는 교회 가족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할 방법을 문의하라.
낙태 반대 사역을 생명이 달려 있는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지원하라.
믿음의 군병들이 이미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우리도 각자가 행동해 나서야 할 때이다.
3. 협력하라
당신의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상처를 치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야말로 예배당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즉각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자선 사역을 위한 구조를 마련하라. 집세를 지원하고 식료품과 기저귀를 구입하고 미혼모를 도울 수 있는 행사를 열라. 외로운 사람이 아무도 생기지 않도록 우애를 쌓으라.
돕고 싶은 마음을 널리 알리라. 광고하라.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교회가 와야 할 곳이라는 걸 지역 사회가 알도록 힘을 쏟으라.
교회가 교회다움을 보여줄 때
낙태와 관련한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던 어느 교회 공동체 때문에 오래전 우리는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내 딸의 생명을 구했다. 그들은 두려운 십대가 행복한 부모가 되도록 도왔다. 내 딸을 처음 안았을 때, 그리고 그 아기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생명의 무게를 느꼈다. 비록 2.7킬로그램에 불과했지만, 내 딸의 삶은 지금도 내게는 여전히 지속되는 영광스러움이다.
시간이 흘러 내 어린 딸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로 성장했다. 낙태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지금도 당시 두려움에 빠졌던 내 마음이 낙태라는 제안에 얼마나 솔깃했었는지를 부끄럽게 기억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족과 목사님, 그리고 지지하는 교인들을 통해 더 나은 길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 그의 영원히 아름다운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 기도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사랑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건 바로 고통받는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긍휼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어느 교회 공동체 때문에 오래전 우리는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내 딸의 생명을 구했다”
제임스 포시스(James Forsyth) | Cedar Springs Presbyterian Church(Knoxville, Tennessee) 담임목사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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