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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근본주의(6): 교리는 사람들의 합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진: ⓒ Timothy Eberly on Unsplash

마 11:25, 고전 14:33

성경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다(고전 14:3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돈은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의 구석구석을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주관적인 해석과 수시로 바뀌는 교리로 만족해 하고 있다. 또 건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교회들도 성경을 무질서하게 해석하는 길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권위가 없는 성경

나도 잠깐 그러한 교회의 등록 성도였었다. 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 교회는 자랑스럽게 믿음과 실 생활에서 성경의 권위를 따랐다. 그러나 성경에 충성된 모습은 담임 목사가 복음 전도 시에 죄에 대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무너져 버렸다. 담임 목사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내가 성경의 논리로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토론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았을 때, 목사님은 대화를 즉시 중단하고 더 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나는 목사님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성경이 말하도록 만들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성경이 말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은 여전히 성경의 권위에 충성한다고 공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고 믿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 중에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일부 예언은 분명하지 않다. 일부 명령은 문화적인 모호함 때문에 그 의미가 가리워져 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영어 번역본이 원래 언어의 깊은 뜻을 묻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필수적인 교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은 너무나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성경적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그의 책 “거침없는 믿음(Reckless Faith)”에서 이렇게 잘 표현했다.

어떠한 신앙적인 글이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면, 그것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은밀한 지식”이나 숨겨진 진리는 신앙의 근본적인 글이 될 수 없다. 성경의 가르침을 풀기 위한 열쇠는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성경은 명확하다.

하나님의 진리는 학문이 있는 지식인을 위해서만 목표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도 충분히 단순하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서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 복음 11:25). 하나님의 말씀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스럽거나 모호하지 않다. 영적인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하고 분명하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며” (시편 19:7)

성경 전체가 모든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삼위 일체와 같은 근본적인 교리는 어떤가? 삼위 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성경의 한 단락에서도 삼위 일체에 대한 광범위한 진술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삼위 일체 교리를 가르친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삼위 일체의 교리는 성경 전체가 분명히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다른 분은 없다 (출 15:11, 신 4:35, 6:4, 32:39, 삼상 2:2, 왕상 8:60, 사 44:6-8, 사 45 : 22). 그 한 분의 하나님은 복수의 인격이시다(창 1:26; 창 11: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하나님이시다(창 1:1, 마 28:19, 요 1:​​1, 요 10:30, 행 5:3-5, 고전 8:6). 성경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은 근본적인 교리인 삼위 일체 교리 없이는 설명이 될 수가 없다.

교리는 합의로 정해질 수 없다

강력한 세계 교회 운동(에큐메니칼 운동)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교리가 근본적인지를 정의 할 때 말 앞에 마차를 놓는 식의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근본적인 교리의 원천으로 여기기보다, 성경이 교회와 교단의 합의 사항으로 종속된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존 맥아더의 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독교의 필수적인 것인가’를 확인하는 유일한 시험은 그것이 모든 주요 기독교 전통들에 의해 확인되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 생각은 세계 교회 운동적인 연합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뒤에 숨어 있는 중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위트시우스(Hermann Witsius)가 지적한 것과 같이 그들이 주장하는 룰에 따르면, 기독교의 복음이 이교도의 도덕성이나 이슬람 신학에 의해 제공된 “구원”과 구별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의 말은 뼈있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성경은 그 내용을 반대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다.

근본적인 교리는 모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 교회운동가들의 합의에 의해서 정의 되지도 않는다. 근본적인 교리들은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근본적이며, 다음 시간에 보게 될 것처럼 이 교리들은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카메론 부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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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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