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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현대사, 쿠데타의 연속… 중국의 묵인 아래 단행된 2021쿠데타

▲ 군부 쿠데타 이후 시민들의 저항으로 혼란 상태에 있는 미얀마. 사진: YDJ 제공.

[선교통신]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이해와 선교 전망(1)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1000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고 시민들로 구성된 민주진영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군사정권에 대한 무장항쟁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것 같은 미얀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상황에 놓인 미얀마 선교 방향에 대해 현지 전문가의 시각을 소개한다. <편집자>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COVID-19 상황 속에서 군부 쿠데타로 인해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얀마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약 90%가 불교도이며 135개 종족이 삶을 함께하는 다민족국가로, 주종족인 버마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전도 종족이 살고 있는 국가이다. 

퓨족의 후예 ‘버마’족의 세력 확대 

9세기 경까지 선주민인 퓨족이 살고 있던 미얀마에 제 부족들이 남하해 오는 가운데, 퓨족의 후예를 자처하는 버마족들이 세력을 확대하여 11세기 경 아노야타 왕이 버마족을 통합하여 바간 왕조를 세웠다. 그는 몬족으로부터 상좌(소승)불교를 도입하여 대대적으로 불교를 육성하였다. 바간 왕조는 6만여개의 크고 작은 사탑과 절을 남기고 13세기 경 몽골의 침략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에 혼란기의 잉와 왕조/한따와디 왕조(13~16세기), 부흥기의 따웅우 왕조(16~18세기), 마지막 왕조인 곤바웅 왕조(18~19세기)의 티보 왕을 마지막으로 미얀마의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886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59년)과 일본(3년)의 식민지배를 거치며 공식적으로 1948년 1월4일에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미얀마의 국부로 추앙받는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활약은 지대했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독립운동을 위해 ’30인 동지회’를 이끌며 영국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을 이용했는데, 이후에는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시 영국을 끌어들여 런던에서 영국과 담판을 짓고 미얀마 독립을 이끌어 낸 정략가이기도 하다. 그가 1947년 7월 19일 내각 회의 중 암살을 당하고 ‘우 누’가 버마의 초대 총리가 되며 버마는 혼란한 가운데 1948년 1월 4일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군부 쿠데타의 연속선상인 현대사 

미얀마의 현대사는 한마디로 군부 쿠데타의 연속선상에 있다. 1948년~1961년까지 민주주의 혼란기를 보내고, 1962년 ‘네윈’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우 누’를 실각시킨 뒤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선포하며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17명의 ‘혁명 평의회’를 결성하여 사회주의 경제하에 자립 갱생의 길로 나아갔지만 버마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로 1950년대 동남아시아 부국 중에 하나요, 한국의 6.25 전쟁 때는 식량 지원까지 했던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1988년 미얀마 기술대 학생과 군인과의 개인적인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경제적인 불만이 쌓여 있던 미얀마 전체 국민의 민주 항쟁이 일어나게 되자 ‘소 마웅’은 군부 내 쿠데타를 일으켜 네윈을 실각시키고,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미얀마 연방 공화국)’로, 랭군을 ‘양곤’으로 바꾸는 등 여러 지명을 개칭하게 된다. 당시 내세운 이유는 영국 지배 시 사용하던 명칭이라는 것이었는데, 한편으로는 버마라는 국명이 주종족인 버마족의 명칭이므로 타 종족 민심을 추스리려는 일종의 계책으로서 미얀마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는 아직도 미얀마라 부르지 않고 버마라고 호칭하고 있다.  

1988년부터 미얀마는 사회주의 노선을 버린 가운데 강한 군부독재 국가형태로 군부가 2010년도까지 집권하였다. 1988년 이후 아웅산수찌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1990년도 총선에서 압승하였지만, 군정은 이를 무효화 시키고 아웅산수찌 여사를 가택 연금하였으며 총선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1992년 4월 ‘소 마웅’이 건강상의 문제로 권좌에서 물러나자, ‘딴쉐’가 모든 권력을 이양 받아 부패 청산이란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을 숙청하며 2011년까지 19년간 집권하였다. 

1996년에는 미얀마 관광의 해로 지정하여 외국에 대하여 조금씩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2005년까지는 인터넷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후에 조금씩 열어주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수도를 ‘네비도’로 이전하였는데, 이 배경에는 한 승려가 양곤이 수도일 경우 군부의 집권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예언하면서 요새화되어 있던 네비도로 수도 이전을 권유받아 이전했다는 웃지못할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2007년 8월15일 천연 가스 가격 약 5배,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약 2배로 올리면서  일반 시민과 학생들이 양곤과 만달레이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를 일으킨 게 도화선이 되어 승려들까지 시위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이 샤프란 크로커스 꽃 색깔의 승려복을 입고 반정부 시위에 나섰기 때문에 이 시위는 일명 ‘샤프란 항쟁’으로 불리는데, 이 항쟁은 약 한 달 반 만에 민주화의 열망만을 남긴 채 군부의 진압으로 끝이나 버렸다. 

2010년 11월 인권 문제를 들어 미얀마를 아세안 10개국의 경제동맹체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미얀마 군정은 아웅산수찌를 드디어 풀어 주게된다. 하지만 2010 총선에서 야당(NLD)이 보이콧을 선언하므로 총선에서 여당(USDP)이 압승하였고, 자동으로 2011년 군복을 벗고 출마한 ‘떼인세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2015년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떼인세인 집권동안 88년도 민주항쟁 시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과 정치범들이 대거 석방되었다. 

그런데 2012년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아웅산수찌 여사가 이끄는 NLD 당이 8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으며 45개 투표지역 중 43개 지역을 승리로 장식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당이 88%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미얀마 헌법상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아웅산수찌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기에 수찌 여사는 대통령의 자문위원으로 실질적인 통치를 하게 되었고, 2016년부터 본격적인 미얀마의 민주주의 초기 단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행정부는 군부나 경찰을 통솔할 수가 없었다. 군부는 치외법권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대통령 조차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국회 의석의 25%를 자동으로 군부에 할당하도록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합법적으로 바꾸려 해도 군부가 반대하면 못 바꾸는 실정이었다. 현행법상 국가적 중대 사안은 군부와 함께 상의하여 결정하게끔 되어 있는데 2020년 11월 총선 투표와 관련하여 행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한 것을 실정법 위반이라고 빌미 삼으며 군부는 부정 선거라는 명분하에 또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사실 쿠데타의 직접적 요인은 COVID-19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예상외로 NLD 당이 압승하여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의석수까지 차지하게 되자, 군부가 기득권 및 권력 유지의 불안감을 느껴 중국의 묵인하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또한 군 총사령관인 ‘우 민 아웅 흘라잉’이 총사령관직 임기 만료가 되어 은퇴를 해야하는 데 아웅산수찌 행정부가 그의 임기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개인적 사정 역시 쿠데타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쿠데타 이후 민 아웅 흘라잉이 군 총사령관의 임기 제한을 없애버린 것에서 증명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이 예편할 경우 로힝야족 문제로 국제 사법 재판소의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미얀마 국가 조직상 로힝야족 탄압의 장본인은 군 총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으로, 그의 결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와 군정  

현재 아웅산수찌 여사와 지난 행정부 수반들은 감금되어 있고 군정은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을 아예 해체해 버리는 강수를 두었다. 이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약속했던 1년 6개월 후 재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정지 작업 중의 하나이면서 반군부 활동의 예봉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NLD 당 세력을 포함한 종족 연합으로 세워진 임시정부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각 종족들의 합의를 끌어내며 연방군을 결성하여 현 군정과 대결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연방군을 결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한계는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임시정부는 수립되었지만, 대내적으로 모든 종족을 통합하여 군부와 맞서며 대외적으로는 서방의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리더쉽의 부재가 가장 큰 한계이다. 두 번째로는, 군대 동원 능력에서 군정이 50만명 정도인 반면 임시정부는 약 10만명 정도이고 무기의 화력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재정 능력의 한계인데, 임정에서 발표한대로 한 달 군대 유지비가 1억 달러라고 할 때 이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의 문제이다. 지난 5월까지 국제적으로 모금된 재정은 80만~1백만 달러 정도라고 발표되었다. 미얀마 쿠데타 후 군정이 인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모든 미얀마 재정을 동결시킨 바, 임시정부 쪽에서 동결된 미얀마 재산 중에서 10억 달러의 인출을 미국에 요청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로힝야’족의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임정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다. 왜냐하면 미얀마 국민들은 ‘벵갈리’라 부르는 로힝야 족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연방군에 합류해야 하는 야카인족(AA), 까렌족(KNU), 까야족(KNDF), 친족(CDF) 등의 종족별 반군 활동 단체들이 현 군정과 전면전을 피하며 정전 협정상태에 들어가 있다. 미얀마의 임시정부가 집권하여 민주주의가 승리한다 해도 중국은 차치하고 주변 국가인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태국은 현 집권 세력이 군부요, 나머지 두 나라는 공산국가로서 아랍의 봄처럼 연쇄적인 시민 혁명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쿠데타 와중에 국군의 날 기념식에 축하 대표가 참석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 8개국이었다. 서방과 다른 아세안 5개국은 축하 대표를 보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또 제일 먼저 미얀마 쿠데타를 강하게 규탄하고 경제제재 조치를 내린 나라가 한국이다. 미얀마 국민들(약 82%)은 대거 환영하고 한국을 좋아하며 아주 우호적이지만 군정은 매우 못마땅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아주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데, 현지에 거주하며 생업에 종사하는 한국국민이 약 3,000명 정도 있기 때문이다.  

COVID-19와 쿠데타가 일어났음에도 미얀마에 완전히 정착한 약 1천여명 정도의 한국국민들은 피신하지 못한 채 미얀마에 머물고 있으므로 군정으로부터 불이익이나 탄압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미얀마 군정은 한국 안에도 일종의 스파이를 보내놓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과 한국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거주 미얀마인 두 명에 대한 수배령을 내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 군정은 1년 6개월 후든 언제든지 본인들이 자신감이 설 때에 재선거를 실시하여 군부 세력의 장기 집권을 꾀할 것이다. 

2010년의 떼인세인 처럼 현 총사령관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으로 출마해 집권할 것인지 아니면, 전임 군 실세였던 ‘딴쉐’처럼 군부 통치로만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어쨌든 현 군정도 이전의 군부 통치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겠지만 일말의 작은 기대를 갖는 것은, 현 군정의 수장인 ‘민 아웅 흘라인’ 사령관이 쿠데타 이후 인터뷰할 때 이전 군부와는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이다. [선교타임스 · GP선교회 제공] <계속>

YDJ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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