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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교회여!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라

ⓒ pixabay

사도들의 발 앞에 둔 밭과 집을 매매한 돈의 처분 문제와 사회 경제의 미래학 (2)

3장 미래학

미래학이란 것이 있다. 내가 미래학이란 학문 분야를 알게 된 것은 80년대의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 阿尔文·托夫勒)가 쓴 「제 3의 물결」(第三次浪潮)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 후에 여러 사람들이 미래를 전망하며 글을 썼다. 최근에는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도 인류 역사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특히 과학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전개되는 미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도 있으나 인류는 여하튼 미래를 진보적으로 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볼 때에 기독교와 연관하여 미래학을 쓴 사람은 피에르 데이야르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皮埃尔·泰亚尔·德·夏尔丹)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화는 하나님에 의하여 의도된 것으로 본다. 다만 그의 진화론은 일반적인 진화론과 다른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찰스 다윈(Darwin, 达尔文)의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그러나 샤르댕의 이론은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 세상은 진화하는 것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서도 그 창조된 생명체들이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독특하며 의미가 있는 이론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한 것은 창조적 진화론은 창조의 시기에 있어서 6일의 창조가 단지 6일이 아니라 오랜 시기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이론인데 샤르댕의 이론은 단지 창조의 시기에만 진화적 개념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나름의 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는 궁극적 진화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나중에 좀 더 깊이 다룰 필요가 있다. 일단 지금은 사회, 경제와 연관된 의미에서 미래학을 살펴보자. 미래로 나아가기에 앞서 현재에서 미래로 전환하는 시기는 인간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가 되고 있다. 그것은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기계 기술의 발전 앞에 인간들은 직업을 잃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당한 충돌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 인구가 줄어들고 나머지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떻게 하면 안정될 수 있는지 자본주의의 틀이 현격하게 줄어든 서민들에게까지 적용되면서 사회는 안정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체제는 자본주의와 과학의 결합으로 대단한 발전을 보이게 될 것이다.

4장 미래를 대비하는 교회

1절 전환의 시기

여기서 ‘현재에서 미래로 전환하는 시기에 경제적으로 매우 불완전한 상황을 교회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경제가 막심한 타격을 입고 인간을 대면하며 이루어지던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은 거의 몰락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코로나 이후에도 인간의 직업을 대신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자본을 축적하고 금융과 주식과 부동산을 통한 이익이 확보되어야 경제적인 삶이 안정될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는 이와 같은 변화를 예측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신속히 변화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업을 잃고 자본에 있어서도 가난해져서 사람들은 자손을 낳지 않고 교회도 그런 영향을 받으며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나중에는 거의 소멸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 간섭하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며 결국은 승리하고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될 수 있는 지를 말하고 현재의 기독교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약해지고 소멸해가는 과정은 보이는데 어떻게 이것이 부흥하고 성장할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자세가 될 것이다. 영국 등 유럽의 상황을 보자. 교회가 매각되고 술집으로 바뀌고 있다.

2절 성경 해석은 계시의 점진적 드러냄을 따라 확장된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전에 대홍수와 같은 재앙을 불로 내리셔서 이 세상을 끝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대비하는 모든 것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巴鲁赫·德·斯宾诺莎)가 말했듯이 비록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할지라도 오늘을 사는 자세는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 성경이 말씀하듯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곧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 생활했으나 그것은 결국에 가서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더 현실의 생활을 대비하여 신자들의 삶도 가정을 중심으로 한 개인 단위로 변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그런데 인간은 그 계시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 하는 것에서는 완전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이 해석하는 것이 완전히 진리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커다란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잘 맞는 해석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교회 천년의 역사는 황제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갖고 세상이 움직였고 서방의 교황체제나 동방의 황제와 주교 체제가 나름대로 정치적으로는 봉건제도와 장원 제도와 결합하여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문예부흥 이후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시대에는 봉건주의, 장원주의, 교황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체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시작되었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만인제사장주의와 직업소명설을 중심으로 인간의 깨어남과 인식이 중요한 것이 되었다.

3절 전환의 시기와 개신교의 대처

개신교 이후로 지난 500년 동안 인간은 상당한 발전을 했다. 신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염려가 될 정도로 인본주의가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지금 인공지능이 만드는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직업과 경제의 개념에서 보면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농사를 졌다. 그 당시에 노예와 농노가 필요했고 이것이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농노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흑사병 등에 의해 인구가 감소하고 노동력이 귀해졌을 때에 농노는 해방되었고 소유권을 가진 시민이 되었다.

이 변화에 맞춘 것이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 인식 체계의 신앙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인간은 기계가 인간의 생산 직업을 대신하는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때는 다행히 서비스 산업인 3차 산업에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1차 산업인 농사나 2차 산업인 공장에서의 생산업을 기계에게 넘겨주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인공지능의 출현은 이 3차 산업에 기계와 컴퓨터가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교수, 의사, 법률가 등등 인간이 지식을 갖고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향후 이런 직업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것이 미래학이며 유발 하라리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 있어서 인류는 인류가 대량으로 종사할 수 있는 4차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군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상당히 인구가 감소할 수 있음을 예상한다. 4차 산업은 현재의 융합산업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4차 산업 개념은 인공지능을 지향하는 컴퓨터와 기계공학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산업이든 1차 산업인 농업과 2차 산업인 생산업, 그리고 3차 산업인 서비스업과 같이 인간이 주도하는 산업으로서의 4차 산업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4차 산업 개념은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상당한 충돌이 일어나면서 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점에서는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과학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이라는 구조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뛰어난 영재들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금융과 주식과 부동산을 통하여 어느 정도 자본을 형성한 사람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최재형 후보는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했다. 이것은 현재 노동의 대가가 후손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보는 시야가 강하지만 아마 앞으로는 새롭게 인식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손들은 직업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서 생활 전체가 힘들게 될 것이다. 결국 인구는 감소하는데 그 상황에서 살아남고 자손을 낳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을 산업시대에는 안정된 직업이 자손을 낳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으나 미래 사회에서는 안정된 직업은 적어질 것이고 다수의 사람들은 일정한 자본을 갖고 있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미래를 예측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재정에 있어서 안정적이 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서 일정한 시간을 열심히 돈을 벌고 저축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것이다. 정부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연명하도록 하는 것도 한계가 있게 된다. 즉 복지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 전체에게 영원히 제대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면 사회주의 나라들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 같은 나라에서는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거의 무료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무료이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온다. 그러므로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진료를 기다리다가 죽는 사람도 발생한다. 이런 의료복지는 형식으로만 있는 것이지 진짜 의료복지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복지가 거의 이런 식이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는 현재의 과학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결합하면 과학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은 그 발전을 지지할 수 있는 자본주의에 의하여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5장 맺음말

다시 말하지만 지금 교회는 전환의 시기에 있다. 이때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류 중에 전환하는 시기를 예측하지 못할 때에 다수의 사람들이 소멸해 갈 것이고 예측하고 대비한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발전하듯이 교회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이때에 지도자들은 신자의 경제 체제를 보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되어야만 교회공동체는 과학혁명이 여는 미래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미래 세계를 예측한 것은 바로 데이야르드 샤르댕이다. 무신론자가 여는 미래 세계를 예측하는 것은 유발 하라리의 글에 나오고 기독교인의 미래는 샤르댕의 글에 나온다. 그리고 샤르댕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이 볼프강 스미스(Wolfgang Smith, 沃尔夫冈·史密斯)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 시대에 발생했고 유대교와 다른 체제를 구축했다. 중세 천년은 교황주의, 봉건체제, 장원제도를 축으로 움직였다. 문예부흥 이후 개신교(Protestant), 국가주의(Nationalism), 자본주의(Capitalism) 체제로 세상은 진행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세상을 계획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하지 못하는 이론이다.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과학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이다. 새로운 세상은 과학과 자본주의가 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새로운 중세 천년과 문예부흥 이후의 500년 세상인 현대와 같이 향후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기에 들어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가고 있다. 만약 전환기가 맞는 것이라면 교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피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측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그 중에 먼저 경제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변화하는 세상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경제적으로 안정될 것인가? 하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교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느끼는 목사님들께 의미 있게 전달되기를 원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자를 살려야 한다. 영으로, 그리고 육으로! 빈들에 있는 신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눅9:13)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교회는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목사는 과학혁명과 자본주의로 전환하는 이 시대를 잘 읽으면 거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끝>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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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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