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삶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는 이진석, 서찬미 집사
복음이 한 가정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참으로 놀랍다. 주님은 2007년 절망 가운데 있던 한 가정주부를 십자가복음으로 초대하셨다. 4년 뒤인 2011년에는 남편을 동일한 복음 앞에 세우셨다. 그리고 3년의 시간동안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후 마침내 이 가정을 복음과 기도의 통로로 열방으로 보내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주님의 손길에 붙들린 이진석, 서찬미 집사를 만났다. <편집자>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진석 : “대구 토박이에요. 제가 자란 교회가 일찍이 선교에 대해 열심 있는 교회였어요. 저희 형님도 어릴 때부터 선교사로 부르셔서 이미 선교사로 살고 계시죠. 그래서 저는 돈을 벌어서 선교활동을 후원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모태신앙으로 교회는 열심히 다녔어요. 하지만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해 세상과 타협하는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죠.”
서찬미 :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저도 모태신앙이고요. 독실한 신자셨던 부모님 밑에서 엄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어요. 특히 아버지의 모습은 저에게 ‘하나님을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죠.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저는 제가 착하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을 가고 자취생활을 하면서 마치 당겼던 고무줄을 놓았을 때처럼 세상의 온갖 죄를 향해 달려갔었죠. 복음이 제게 실제가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제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던 분이셨어요.”
철저히 교회는 출석했지만…
– 십자가 복음 앞에 서게 되는 계기가 궁금한데요.
서 : “제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아버지가 외도를 하셨고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로 인한 상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우울증이 왔었고, 쇼핑 중독, 인터넷 중독 등 여러 중독 증상들이 생겼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시댁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부 간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고부간의 갈등도 심했어요. 얼마 동안 집을 나와 살기도 하고, 결국 이혼을 결심했어요. 당시 저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상황들이 제 마음을 가난하게 했고 십자가 복음을 진짜 받아들이게 한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이 : “저는 성공을 위해서 직장 상사 한 사람을 붙들었어요. 출세하기 위해서 인맥을 이용하려는 거였죠. 한 7-8년을 그 사람 밑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저를 내팽개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신감에 빠져 술을 마시면서 내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복음 앞에 서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복음앞에서‘죄인됨’을 실감하며
– 모태신앙으로 성경에 관해서는 많이 알았겠지만 십자가복음이 실제가 되는 일은 특별한 사건이셨죠?
이 :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죄인이라고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죠. 저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인정했어요. 그런데 십자가복음에 나의 전 존재가 반응을 하면서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어요. 저는 저의 죄를 숨기고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그 죄에서 제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확증하는 시간이었죠. 그리고 그런 죄인인 나를 십자가복음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변화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정확하게 보는 시간이었어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니면 여전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되었고요.”
서 :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예수님의 십자가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십자가복음을 마음에 품고 창조를 시작하셨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죠. 그 하나님 안에 있었던 ‘어떤’ 사랑이 제게 부어졌어요. ‘왜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 ‘왜 아들까지 내어주셔야 했을까?’ 이해가 안됐어요. 그런데 복음 앞에서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창조되었음을 알았죠. 그 목적대로 나를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 저는 너무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십자가복음이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이었어요. 내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어 있었던 죄인인 것을 복음 앞에서 확실히 볼 수 있었죠.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던 시간이었어요.”
– 두 분이 각각 복음 앞에 서는 데는 약 4년의 시간 차가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요?
서 : “제가 복음 앞에 서고 나니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복음에 관해 말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많이 부딪혔죠. 이후에 주님이 제 입을 막으시고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죠.”
이 : “아내가 복음을 만난 이후에 뭔가 좀 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자꾸 저를 가르치려고 하더군요. 아내가 말하는 복음이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 반감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아무 말도 안했어요. 심지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를 안 해서 편하다고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도방에서 아이들과 열방을 위해서 기도를 하다가 잠든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기도하다 잠든 아내를 보며 감동
– 부부가 함께 복음의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이 : “제가 2011년 3월 복음을 만난 이후로 쉴 틈 없이 달려왔던 것 같아요. 주님이 저희를 정말 쉬지 못하게 일을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서 : “정말 많은 과정이 있었어요. 선교단체의 여러 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삶의 터전을 떠나 공동체 생활도 해보고, 아들 녀석의 몸부림에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죠.”
– 그런 과정 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주세요.
이 : “저는 될 수 있으면 재정을 안 가지고 있으려고 해요. 차라리 재정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는 게 상책이죠. 하지만 재정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좀 불안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파요(웃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나마 조금 있는 재정을 아내가 다른 지체에게 흘려보내자고 해서 잠을 못 이룬 적도 있어요.
서 : “제가 더 믿음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에요. 복음을 만난 이후에 남편보다 제가 먼저 재정에 대해 다루심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일인 것 같아요. 훈련학교들을 통한 아웃리치 비용이나 복음의 삶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주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채우시는 것을 경험했죠. 광야에 나가니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되더라고요.”
이 : “한 번은 가족이 함께 지방에서 서울로 몇 차례 올라가야 할 상황이 있었는데 교통비만 해도 적지 않은 재정이 필요했죠. 저는 주님이 주실 거라는 ‘막연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차비가 채워지지 않기를 바랐죠. 그런데 매번마다 재정이 신기하게 채워지는거예요. ‘이렇게 채워주실 거면 좀 미리미리 채워주시지!’라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어요.”
– 가족 아웃리치를 통해 가족의 선교적인 삶을 확증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서 : “복음 앞에 선 이후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어요. 심지어는 아이들의 공교육도 내려놓았죠. 주변에서 말들도 많았고 저 자신도 어떻게 할지 몰라 기도하던 중에 2012년 3월 빌립보서 4장 말씀을 통해 가족이 함께 국내 아웃리치를 갈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가족 아웃리치를 하면서 기도하면서 주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고 머물라는 곳에서 머물렀죠.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가족이 걸어야 할 믿음 여정의 축소판 같은 시간이었죠.”
이 : “저는 가족 아웃리치 중에서 만난 한 목사님을 통해서 본격적인 선교적 삶을 준비하기로 결단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 목사님은 당시에 말기 암환자셨어요. 목사님은 성치 않은 몸으로 전하시는 새벽 설교말씀을 통해 제게 허락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6개월 합숙훈련 과정인 복음사관학교를 다녀왔고 제가 다녀온 이후에 아내도 그 과정을 수료했죠.”
아프리카를 섬기기 위해 출국
– 아프리카 M국으로 곧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 “선교자원은행 선교단체인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를 통해 ‘열방연합기도팀’으로 M국에서 1년을 섬기기로 결정했어요. 현실적인 마음의 염려도 있어요. 현재 형님과 여동생 모두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너는 한국에만 있어라’고 하셨던 간절한 요청이 많이 생각나요. 하지만 지금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서 : “제가 대구에서 지낼 때 함께 복음의 동지가 되어주셨던 목사님 부부가 그곳에 계셔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말씀과 기도의 생명이 있는 그런 존재로 부르셨다는 것을 믿어요. 그 땅에서 누리게 될 하나님의 영광과 행하실 일들이 정말 기대가 돼요.”
– 끝으로 기도제목이 있다면?
서 : “사실 아무것도 준비 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정말 가도 되나?’, ‘괜히 선교사님들에게 피해만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선교지로 나간 한 집사님과 통화를 하게 됐어요. 그분이 “이거 정말 돼요. 진짜에요. 살아져요. 주님이 정말 해주세요.”라고 확신을 갖고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이 주변의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이 인도하신 과정을 들으며 정말 감사하고 격려가 되었어요. 저희가 가진 것이 없고 부족해도 주님이 친히 그곳에서 저희를 통해 일하시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