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고후7;4
“그리스도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그 죄수들이 노래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이순옥은 당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87년에서 1992년까지 감옥에 수감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나중에 남한으로 도망쳤고, 훗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녀는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북한의 감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기억이란 단순했다. 처형을 당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감옥에서는 죄수들끼리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녀는 그리스도인 죄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아멘!”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곳에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부인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었죠. 그들은 간수들이 아무리 강요해도 입을 꾹 다물었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간수들이 더욱 격노하여 발로 걷어찼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냥 ‘믿지 않겠어요!’라고 말하고 간수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그들은 구타와 발길질이 거세질수록 더 큰 소리로 노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간수들은 그들이 미쳤다고 하면서 전기고문실로 끌고 갔습니다. 거기서 살아서 나온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어요.”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그들의 찬양이었다. 그 귀한 성도들의 찬양이 그녀의 영혼에 씨앗을 뿌려 마침내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이었다.
기독교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인지 평가하기위해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신자들을 관찰하고 주시하고 마음으로 메모한다.
이 무언의 관찰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당하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별 수 있어? 다 똑같은 인간인데!” 라는 평소의 지론을 확인하기 위해 은근히 넘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의 터널을 빠져나와 밝게 웃으면 고개를 꺄우뚱거리고, 신자들이 우는 대신 박수를 치면 깜짝 놀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슬픔 중에 찬양을 하면 설명도 이해도 할 수 없는 그 모습에 저절로 이끌린다.
지금 시련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증거할 전무후무한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 기쁨의 본(本)을 보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북한 / 이순옥
(출처:주를 위해 죽다(2010), 규장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