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원종실 선교사를 만났다.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도 받고 섬길 선교지도 정해졌지만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의 영혼들과 떨어질 수 없는 숙명적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떻게 일본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셨어요?
“먼저 제가 일본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저의 할아버지는 재일교포라는 것이죠. 할아버지는 김치장사로 성공하신 분이었어요. 아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던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어요. 그때 저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면서 저와 동생이 태어났어요. 그러나 그 결혼을 반대했던 할머니가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두 분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어요. 부모님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겪으시다가 결국 이혼하게 되셨어요. 그러면서 저와 여동생은 부산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했어요. 아빠는 서울에, 엄마는 다른 분을 만나 일본으로 가셨어요. 그때 제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아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성격도 내성적으로 바뀌고 외로움도 심했어요.”
– 어릴 때 힘든 시간을 보내셨네요.
“저는 공부보다는 운동을 하고 싶어서 축구부나 야구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이것이 제게 상처가 됐어요. 외갓집에서 많이 맞고 살았기 때문에 뭐 하나 사달라고 말을 못하고 있었다가 간신히 용기내서 꺼낸 말이었거든요. 그래도 운동이 너무 좋아 학교 끝나고 나면 야구부, 축구부 쳐다보느라고 5~6시가 되죠. 그러면 혼나는 게 무서워서 오락실에 가요. 오락실은 9시에 끝나니까 그때 집에 들어가면 혼나는 거죠. 그런데도 매일 반복했어요.”
방황하던 10대를 보내며
– 부모님도 안 계신 상황에 계속 말썽꾸러기가 됐군요.
“2년 후에 일본에서 친할머니가 우리를 찾아오셨어요. 그제서야 할머니는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셨어요. 할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는데, 아버지는 지금의 어머니와 만나고 계시면서 결혼을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결혼을 하시고 5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에 갔어요.”
– 일본에서의 시간은 어땠나요?
“일본어를 배워야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잘해줬어요. 일본에서는 아무 간섭도 없으니 친구들과 놀면서 나쁜 것도 많이 배웠어요.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불량청소년이 됐어요. 중1 때 가출을 했어요. 오토바이도 훔쳐서 타고 다니고 불량 선배들이 멋있게 보여서 같이 집에도 놀러갔어요. 결국 가출했죠. 형들 집에 살면서 본드와 음란한 생활, 매일같이 집단으로 오토바이 폭주족 행렬에…. 경찰서를 매일같이 갔어요. 너무 어렸던 저를 경찰이 기다렸는지 만 14세가 되자 바로 체포됐어요. 그리고 재판에 넘겨져 소년원에 1년을 가게 됐어요. 중3 때 그곳을 나오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결국 또다시 들어갔어요.”
– 인생의 방황이 심하셨네요.
“소년원 안에서 배운 용접 기술로 사회에 나와 직업을 찾았지만 결국은 옛날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 보면 정상적인 삶은 살 수 없었어요. 18세에는 폭력조직에 들어가게 됐어요. 거기서 귀여움과 인정을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 좋은 차도 타고 다니고, 후배들에게 존경도 받고, 폭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면서 살았어요. 남자다움, 의리 같은 것에 빠져서 싸우다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남자로서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5년 정도 있다가 조직을 나오게 됐어요.”
– 다행이네요.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나와서 할 일이 뭐가 있어야죠. 20대 초반부터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어 흥청망청 쓰기도 했어요. 또 결혼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그러다 사업이 망하면서 눈을 떴는데, 이미 30대 중반이었어요. ‘다시 인생을 시작해야겠다.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옛 모습을 지우고 살아야겠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그 무렵, 중학교 때 싸움을 잘했던 친구가 자살을 했어요. 그것이 제게 큰 충격이었어요.”
친구의 자살, 삶의 전환점
– 어떤 충격이었나요?
“후배들에게 인기도 많고 남자다운 친구였어요. 일이 잘 안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잘나갔던 사람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창피해서 못살죠. 나는 그 마음을 알겠더군요. 저도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어요. 깨어나니까 몸을 벌벌 떨고 있었어요. 동생한테 전화를 했죠. 죽는 게 너무 무섭더군요. 강하게 보였던 제가 혼자서 죽지도 못하고, 제 연약한 실체가 드러나니까 부끄럽고 절망스러웠어요.”
– 위기의 순간이었군요.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서 일본을 떠나 다시 부산으로 왔어요. 간신히 생활을 할 때였는데, 이때부터 하나님이 제 인생에 개입하시기 시작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 동생은 한국에서 신앙훈련을 받고 있었어요. 제게 일주일만 시간을 내달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일도 바쁜데 하루라도 쉬면 놀러가야 된다면서 아예 갈 생각도 없었어요. 근데 제가 늘 술을 먹고 생활습관도 좋지 않다 보니 디스크가 심해져서 못 움직이게 됐어요. 돈도 벌 수 없게 되면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다시 허전함에 빠지게 되면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아버지 묘를 찾게 됐어요. 새어머니가 생각나더군요. 어머니는 신앙이 좋으셔서 저를 만나면 늘 복음 이야기를 하셨는데, 한두 시간씩 설교를 하셨기 때문에 싫어했어요. 그런데 그동안 효도 한 번 못하고 속만 썩여왔기 때문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효도하는 셈 치고 어머니를 찾아가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다시 일본에 가게 됐어요.”
– 어머니와의 시간은 어땠나요?
“어머니는 북방 지역의 아키다라는 곳에 살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교회를 세우시고 공동체생활을 하고 계셨어요. 그렇다 보니 집에는 규칙이 있었는데, 혼자 방에서 인터넷을 하면 안 되고 항상 같이 있어야 됐죠. 핸드폰으로 쓸데없는 것만 본다면서 못하게 하니까 제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2~3일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갈 곳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제게 동영상 설교 메시지를 들어보라고 주셨죠. 처음에는 들리지도 않았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갑자기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더군요. 충격이 됐어요. 그때는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 같았어요.”
– 메시지를 들으시면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용의 선교사님 메시지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이대로 가면 나는 지옥이구나.’라는 게 깨달아졌어요.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어요. 무릎 꿇고 통곡을 했어요.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더군요. 그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저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잔소리해도 말을 안 들었는데, 제가 자발적으로 세상적인 것, 옷들 모든 것을 정리했어요. 그때 마음은 날아갈 것 같고 나가서 외치고 싶었어요.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그때 앞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어요.”
– 이후의 시간이 매우 궁금해지네요.
인터넷으로 설교 들으며 회개
“그때부터 성경을 보기 시작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성경만 봤어요. 그때 허리 아픈 것도 낫기 시작했죠. 그리고 동생이 이전부터 추천해준 복음학교를 가게 됐어요. 복음은 충격적이었어요. 한국말이 어려워 60%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제 영혼이 살아나는 시간이었어요.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던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 존재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어요. 전 이미 주님을 위해 산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복음학교를 참여하면서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했어요.”
– 그렇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셨군요.
“이후에 교회에서 하는 훈련, 새벽예배, 저녁예배 빠짐없이 참석했어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어서 기도모임이라면 무조건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런 게 몇 개월 지나다 보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보게 됐죠. 다시 복음을 듣고 싶었어요. 복음학교는 처음에는 훈련생으로, 나중에는 섬김이로 참여했는데, 두 번째 복음학교에는 2015년에 참석했어요. 복음의 진리를 들으면서 무엇이 내 삶에서 문제였는지 깨닫게 됐어요.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됐어요.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은 계셨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제가 아니더군요. 다시 주님께 서원을 하면서 6개월 신앙 공동체훈련을 받았어요. 훈련 막바지에 일본에 교회가 필요하다는 마음을 주시면서 내가 교회로 설 것과 신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리고 복음기도신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상 243호에 게재>
– 신학을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요?
“신학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어요. 신학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연구하는 건데, 초점을 벗어나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할 때가 있어요. 지식이 쌓이면서 교만도 쌓여서 신학적 괴물이 될 수도 있죠. 복음과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살면서 지식만 늘어갈 수도 있어요. 그럴 때면 하나님이 말씀 앞에서 저를 꺾어주셨어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 실수를 할 때 멈추게 하시고 돌아서게 하시는 게 감사해요. 내가 알면서도 결단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저를 허물어뜨리고 주님이 세워지는 과정을 겪게 해주세요.”
– 복된 신학과정을 마치셨군요.
“복음기도신학교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갈 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점점 깨닫게 돼요. 그리고 교회는 연합이라는 것을 가정을 통해 알려주세요. 신학교에서 사역을 할 때는 서로가 부딪칠 일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던 1년 동안 높아지려는 존재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연합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으로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겪게 하신 것 같아요. 이렇게 교회가 무엇인지, 어떻게 영혼들을 섬겨야하는지를 보게 하셨어요.”
– 선교현장에 나가기 전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네요.
“코로나 상황을 맞으면서 생각이 많았어요. 말로는 ‘주님이 허락하셔야지 가지.’라고 말하지만, 기간이 너무 길다보니 흔들릴 때도 있었어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오히려 주님이 좋은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역이 바쁘면 언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겠나 싶어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밖에 바라볼 게 없는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을 주셨어요.”
한 일본성도의 요청, ‘전도를 알려주세요’
– 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왔네요. 그러면 어떻게 일본 선교를 생각하게 되셨어요?
“신학교를 섬기고 있을 때,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신학강좌 스탭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저도 일본에 살면서 오키나와는 한 번도 간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택배 일을 하면서 경비를 마련했죠. 준비하면서 현지인들을 만나서 그들과 교제하고 기도제목도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해주셨어요.”
– 현지인들을 만나서 교제하셨군요?
“오키나와의 한 교회를 빌려 강좌를 열었어요. 새벽기도를 마치고 한 성도님과 교제를 하게 됐어요. 그분이 갑자기 전도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더군요. 전도를 하고 싶은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분은 오키나와에서 2시간 떨어진 섬에 사는 분이었어요. 예수님을 믿은 지도 얼마 안 된 분이었어요. 자기가 사는 지역엔 교회가 없다면서 그곳에도 와서 복음을 전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고는 친구에게 복음을 말하고 싶다며 성경구절을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생각나는 대로 몇 구절 알려드렸어요. 그분과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그분이 마음에 남았어요. 어떻게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게도냐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던 사람들이었죠.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면서 오키나와가 마음에 품어졌어요. 이곳에서 선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선교지를 결정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말씀해주세요.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기 때문에 주님의 구원이 실현되는 교회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내가 계획을 세우고 내 주권이 실행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가 순종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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