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복음기도동맹 주관으로 지난 2011년 12월 13~16일까지 진행된 다시복음앞에 연합집회의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1989년 1월에 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한나호(號)를 타고 10년을 사역했다. 그 후 배보다도 더 흔들리는 땅 A국의 B지역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장테러단체의 본거지. 현지어를 전혀 할 수 없는 기간, 언어를 배우고 잠잠히 기다리며 중보하는 시간은 답답했다.
하지만 그 기간들을 통해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다. 맘껏 예배할 수 없는 땅에서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삶이 예배다(롬12:1)
우리 삶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다. 제사에서 살아있는 제물이란 없다. 한나호(號)를 타고 사역하면서 폭풍을 만나 죽었다 살아난 경험을 통해 십자가 복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산 제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거룩한 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전혀 거룩하지 않다. 죄 장아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기 몸을 그냥 씻어 내고 거룩하게 다듬어서 제물로 드리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다.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물이 되셨다.
현지어 한 마디도 못하는 지역에 가서 제일 답답했던 것은 맘껏 예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기간을 통해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배웠다.
그러던 중 내 주변에서 ‘아멘’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미군부대에서 초청이 왔다. 그 곳에 교회가 있었다. 미군들은 예배하는 시간 내내 총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 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격해서 계속 울었다. 예배드린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삶 속에서 아픔의 예배를 드린 사람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은혜요 감동이다.
처절한 삶의 예배를 드린 사람에게 감격이 주어진다.
삶이 선교다(창18:19)
이 말씀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신학적 요소인 하나님의 선택, 거룩, 선교가 담겨 있다. 많은 선교단체를 안다. 그러나 선택과 선교를 이어주는 거룩에 대해 강조하는 선교단체를 많이 보지 못했다.
첫 번째, 선택. 누구의 선택인가?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면 우리에겐 취소할 권한이 없다.
두 번째, 거룩한 삶. 왜 하나님이 선택하셨는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한마디로 ‘나같이 살아라’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내가 거룩함이니라.’ 말씀하셨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갈2:20).
세 번째, 선교.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최종목적이다. 부르시고 ‘나 같이 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다. 약속이 무엇인가?
창18장 18절에 나온다.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땅에 알카에다가 있다면 나는 5000명을 훈련시켜서 이 땅을 뒤집겠다고 외치고 다녔지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이 부르실 뿐 아니라, 선교완성도 주님이 한다고 하신다. 단, 우리에게는 ‘나처럼 살라’고 하신다. 선교의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님이시다.
한 번은 우리 건물에 전쟁 영화에 나오는듯한 사건이 벌어졌다.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쏟아졌다. 3일 동안 지하에 갇혀 말씀기도만 했다.
‘주님도 이 고난을 당하셨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네?’ 모두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다. 말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말씀으로 담대히 서게 해주시는 시간이었다.
선교는 보내시는 곳으로 가서 주님이 사시도록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삶만 살기만 하면 그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게 된다. 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장소 이동만 하면 된다.
자격지심은 내가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는 곳마다 그 곳을 소망의 땅이라고 부른다. [복음기도신문]
OOO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