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지워진 드 쿠닝>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의 격을 높였다면, 1960년대에는 팝아트가 그 명성을 뒤이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이 팝아트를 시작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한때 추상표현주의자 빌렘 드 쿠닝의 지도를 받았는데, 드 쿠닝의 존재는 라우센버그의 예술 세계의 바탕이자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1953년의 한 작품에서 드러냈다. 드 쿠닝의 연필 드로잉을 구입한 뒤, 이를 지우개로 꼼꼼히 지운 라우센버그는 제목을 <지워진 드 쿠닝>이라고 붙였다.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미술로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실험 미술이었다. 스승 드 쿠닝이 폭발적인 감성으로 극단을 보여주었다면, 라우센버그는 이것을 전부 지워 또 다른 극단에 도달했다. 그 후 라우센버그는 “무서운 놈(enfant terrible)”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지우는 데에는 사실 한계가 있었다. 최선을 다해 지웠건만, 드 쿠닝의 연필 흔적을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했다. 뾰족뾰족한 형체가 아직 ‘라우센버그의 작품’에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뒤, 드디어 이 작품을 소장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지워진 드로잉의 복원에 착수하였고, 2010년 원래의 작품, 즉 드 쿠닝의 작품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거듭남도 똑같다. 무서운 놈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옛 모습을 지우려 최선을 다 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지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은 힘써 지우는 것, 고작 여기까지다. 몇 주, 몇 년, 아니 평생을 지워도 남아있는 죄 된 본성의 흔적은 완벽하게 제거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 때문에 믿음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우리는 매일 우리가 믿음으로 완전히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는 그 진리를 믿어야 한다. 남은 흔적 하나도 없이, 완전한 새것으로 바꾸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이 아니면 구원은 없다. 다시 새로운 해의 시작, 완전한 새것으로 바꿔주신 그 은혜가 매일매일 절실해지기를.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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