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기도신문 창간호 발간을 몇일 앞둔 어느 날. 갑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몇 일간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다.
다시금 시작될 마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인듯 했다. 선교사로 헌신 전 한 동안 내 삶의 전부나 다름없던 기사 마감.
다시 시작될 마감 인생에 대해 부담감이 송글송글 맺혀가다 마침내 종양이 되어 심령이 짓눌려지는 듯 했다.
기사는 누가 쓰지? 재정은 어떻게 채워지지? 엘리야의 까마귀를 의뢰하도록 구독료 없이 헌금제로 한 재정원칙은 족쇄인듯 했다.
격주 간격으로 다가올 신문제작의 알파와 오메가라고해도 지나치지 않을 기사와 재정의 무게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이미 주님으로부터 ‘그를 높이는 신문’(잠 4:8) ‘다른 사람의 노력에 참여하는 자’(요 4:38)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지만, 시작되지 않은 벽이 현실로 마침내 ‘쿵’하고 떨어지자 벌렁 나자빠진 꼴이 되고 말았다.
시계바늘은 멈춰 서지 않았다. 드디어 2010년 10월 창간호가 나왔다. 그리고 2013년 10월. 3년간 한 번의 결호(缺號)도 없이 발간된 75호의 복음기도신문.
한번 돌아간 방아간의 피대(皮帶)가 떡만들기를 멈추지 않는한 돌아가듯 첫 선을 보인 이후 복음기도신문을 찍는 윤전기는 멈춰서지 않았다.
기사 마감과 함께 시작되는 인쇄비 카운트다운.
“아직 50% 남았어요.” “할렐루야! 이제 다 채워졌어요.” 인쇄 발주 무렵, 재정담당 선교사의 기쁜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주님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채워주셨다.
택배와 우체국을 통한 발송비. 하루이틀의 오차는 있었지만 재정부족을 이유로 발송차량이 움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몇 차례 우리의 간절함을 확인하시는 듯한 상황에 비장한 기도의 향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간혹 첫 구독신청과 함께 많은 수량을 요청할 경우, 마음이 움찔하기도 했다.
발행부수 증가는 곧 비용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주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수준의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그렇게 순종해온 3년의 발걸음. 주님은 절묘한 시기에 한 증인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던져주시는 듯 했다.
창간3주년 기념호 전호인 75호에 소개된 한 형제. 가격없는 식당으로 삶의 현장에서 동일한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여왔다고 했다.
“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7000을 내가 남겨놨어! 보라구.”
주님이 말씀하시는듯 했다. 주님은 3년 만에 가슴 통증을 벅찬 감격으로 바꿔주셨다. 이제 됐다.
설혹 여기서 복음기도신문 발간이 멈춘다 해도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냈으면 충분하다.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보이십니까? 기적의 열매, 복음기도신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