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이란 ‘선별을 통한 인간 개량’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선별이란 말은 결국 ‘선택(select)’을 의미한다. 앞으로 살아야 할 사람과 살아서는 안 될 사람을 인간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우생학은 인간에게 진화론을 적용하는 가장 적극적 행동이다. 이처럼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진화의 메커니즘인 ‘자연 선택’을 받아들이게 되며, 자연의 일부분인 자신도 그 진화 역사 속에서 선택을 받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당연히 선택을 받는 위치보다 선택을 하는 위치에 앉고 싶어 한다.
마거릿 생어는 ‘선택하는 위치’에서 우생학을 연결시킨 여성이다. 백인에게는 자유로운 성관계를 장려하고 흑인에게는 성을 통제하고 ‘불임’을 실행시키려 했다. 이런 목적으로 그녀는 우생학 단체인 ‘미국 출생 통제 연맹(American Birth Control League, 1921)’을 설립했으며, 1942년에 우생학적 뉘앙스를 감추기 위해 ‘가족 계획(Planned Parenthood)’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생어의 운동은 단지 불임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는 성 평등이나 낙태 등의 극단적인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낙태는 낙태로 끝나지 않는다. 낙태의 정당성을 ‘태어날 사람을 위해서’와 ‘인류를 위해서’라고 멋지게 포장한 이상, 태어난 후에 죽이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태어난 후에 태아를 죽이는 것을 ‘출생 후 낙태(after-birth abortion)’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이 낙태지 이는 ‘유아 살해(infanticide)’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유아 살해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렇게 주장한다. ‘윤리주의자’인 프린스턴 대학 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일정한 나이까지의 유아 살해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한다. “장애아를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윤리적으로 같지 않다. 신생아는 인격의 본질적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 신생아가 실제적인 사람이 아니라… ‘잠재적인 사람’에 불과하다. 아기가 기대할 만큼의 건강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면, 부모는 28일 등 일정 기간 내에 신생아를 안락사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말이 옳다면, 수면 중에나 수면제를 먹인 후에 무감각적 상태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합법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면 중에는 자신의 깨어있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주장은 나치 독일의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나치는 태어난 지 28일이 아니라, 3년 내에 죽일 수 있는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과연 28일이나 3년은 어디에 근거해서 나온 것인가?
윤리에 대해 여러 권을 집필한 주빌리니 박사는 ‘출생 후 낙태: 아기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우리가 말하는 ‘출생 후 낙태’는 신생아가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우에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두 저자는 다운증후군은 출산 전 검사에서 64%만 진단이 가능하므로 “(출산 후에) 장애인으로 판명될 경우 부모가 아이를 죽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사회주의국가가 그런 것처럼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가족과 사회 전체에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을 쓴 후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자, 공동 저자인 미네르바는 “자유 사회의 가치에 반대하는 광신자들”이라고 답변했다.
우생학이란 단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혐오스러운 단어가 되어 오늘날에는 사라졌다. 그러나 위의 주장을 보면 우생학적 사고가 여전히 우리 주위와 학교 안에 살아,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단어만 못 쓰게 하는 것이지 그 사고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복음기도신문]
이재만 선교사
(창조과학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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