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서 계란을 사가지고 왔다. 냉장고에 계란을 한 줄 한 줄 넣던 남편이 말한다.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계란을 보면 그 때가 너무 미안해져”
우리 부부가 청년 때의 일이다. 우리는 시장 한 모퉁이에 방 하나에 살고 있는 두 자녀를 둔 전도사님 가정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아버지 나이쯤 되셨는데 늦게 신학교를 가서 늦은 나이에 전도사님이 되셨다. 가까이 생선가게가 있었는데 생선 비린내가 방안에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그 전도사님 집에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계란이 가득히 있는 것을 보고는 판단했던 모든 것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한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뭐 그렇게 잘못한 일, 나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감정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주님과 나만 아는 판단하는 마음, 좋은 마음이 아닌 나쁜 마음이다. 주님은 교묘히 판단하는 나쁜 마음을 지적하시면서 마음을 좋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서 거의 다 죽게 되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에게 첫 번째 비유로 제사장을 이야기하신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된다고 가르치는 제사장은 어떻게 할까 지켜보았지만 그냥 지나간다. 두 번째도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지도자,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역시나 모르는 척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 시대에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의 오염된 혈통으로 무척이나 미움 받는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를 싸매고 치유하는 자가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비유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신다. 예수님의 반전이시다. 솔직히 주일학교 때까지도 잘 몰랐다. 그냥 사마리아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예수님은 왜 많은 사람들 중에 유대 지도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로 이야기 하신 것일까? 사마리아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에 대한 예수님의 반전 해답이었다. ‘가서 너도 사마리아 사람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미움과 편견 없이 다른 이들의 행복을 중히 여길 줄 아는 겸손한 사랑을 하라고 하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우리(조선)학교에 가면 낡고 허름한 건물, 오래된 신발장에 2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의 신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을 보면서 복도에 들어서면 ‘변소’라고 쓰여진 화장실이 보인다. 나의 어린 시절도 ‘변소’였다.
‘아무리 그렇게 노력을 하여도 그들은 변하지 않아요’ 우리 학교 이야기를 하면 가끔 듣는 말이다. 설령 그들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의 행복을 중히 여기며 그들과 공감하며 겸손히 사랑을 나누고 싶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해라’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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