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 인터뷰]
공무원으로 일하다 복음을 만난 후 50대 중반에 주님이 부르신 곳이면 어디든 순종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교육선교사로 섬기겠다고 자원했다. 주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일은 백여 명에 이르는 공동체의 주방을 섬기는 것이었다. 장로 차종석에서 교육선교사로 호칭이 바뀌었다. 그가 겪었던 좌충우돌 이야기를 울고 웃으며 듣고 감격하기도 했다. 햇살이 반짝이는 어느 날 오후, 아내 오영미 선교사와 함께 만났다.
– 어떻게 교육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셨어요?
그는 잠깐 생각하다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복음을 만난 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차종석(이하 차): “겉모양은 장로니까 교회에서 모든 예배 안 빠지고 먼저 솔선수범해서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도 했어요.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었지만, 여전히 죄를 지었어요. 술을 좋아해서 어려움만 닥치면 가깝게 지내는 안수집사 형님하고 안 보이는 데로 가서 밤새워 술을 먹었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 교회에서 어려운 일이 생겼어요. 성도들의 관계가 멀어지고, 신앙생활에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내에게 ‘장로고 뭐고 떠나자. 이런 신앙생활이라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또 가깝게 지내던 성도들도 교회를 하나둘씩 떠나갔어요. 나는 옳고 나가는 분은 그릇되다고 생각했죠. 힘들었어요. 신앙생활도 접고 안하겠다고 할 정도로 지쳐 있었어요.”
– 신앙의 한계 상황을 경험하셨군요.
“그런데 주님이 한 분을 저희 교회에 보내주셨어요. 당시에 부교역자를 뽑고 있었는데 선교사 비전을 가진 목사님이 오셨어요. 오후 예배 설교를 하는데 자신이 복음의 삶을 누리게 된 과정을 정직하고 담대하게 나눠주셨어요. 설교하고 나오는 목사님에게 아내와 같이 찾아가서 교제하게 됐어요. 그때 목사님이 복음학교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린 거죠.”
– 먼저 주님이 복음으로 초대해주신 거네요?
차: “일주일간 진행되는 과정인데, 첫날부터 쏟아지는 복음을 들으며,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말씀이 믿어지면서 감격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첫날부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내가 어떤 죄인이었는지, 이런 나를 포기치 않으시고 그 자리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 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현실이잖아요. 그러나 복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 후속으로 이어지는 신앙훈련을 찾았어요. 선교관학교가 있었어요. 출근을 해야 하니 토요일 훈련만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훈련장소는 전북 전주였어요. 집은 세종이었는데 주말마다 다닐 형편은 못되었어요. 빚 보증에, 매달 월급이 차압됐고, 아내는 옷가게로 간신히 아이들 등록금을 대고 있었어요. 근데 형편을 따지고 싶지 않았어요. 담대한 마음이 들면서 전주로 매주 훈련에 참여하러 갔어요.”
– 쉽지 않은 결단을 하셨군요.
차: “아내는 미쳤다고 했어요. 매주 기름 값이며 고속도로 통행료는 어떻게 할거냐면서 어려워했어요.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한 주간 동안 말씀이 너무 사모되고 기다려지니까 멀고 피곤한 것도 상관없었어요. 아내의 얘기도 안 들리고 복음 앞에 달려가는 게 행복했어요. 아내에게도 복음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 그때 오 선교사님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궁금하네요.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오영미(이하 오): “그동안 살아오던 남편을 아니까 이번에도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어요. 뭐 하나에 꽂혀서 거창하게 시작하고 나서는 마무리를 못했어요. 성경 말씀에 보증서지 말라고 하셨다고 해도 제 말을 듣지 않고 실패를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신뢰를 못했어요. 자기는 이제야 복음을 만났다고 이야기하는데 너무 미웠어요. 사실은 제가 먼저 복음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선뜻 내딛지 못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복음학교를 다녀오고 아들과 나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마음은 저도 간절했지만 그렇게 반응이 나오더군요. 그래도 마음 안에선 목마름이 있으니 여러 과정 끝에 복음학교에 가게 됐어요. 복음을 들을 때는 내가 살아나는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주님 앞에 엎드려지는 시간이었죠. 내가 죽어야 사는 진리가 뭔지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어요.”
내가 죽어야 사는 복음의 진리에 감격하다
– 그렇게 두 분 모두 복음의 감격을 경험하시게 됐군요.
차: “아내가 복음학교를 다녀오고 저는 6개월 합숙으로 훈련하는 복음사관학교 준비를 했어요. 직장을 정리해야 됐어요. 그때는 공무원이었으니까 대학을 가면 장기휴가를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 훈련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여러 방법을 다 알아봐도 장기휴가를 낼 방법이 없었어요. 가족들에게 직장을 내려 놔야 할 것 같다고 하니 난리가 났어요. 충분히 이해가 됐죠. 그동안 사업이 망해서 5년 동안 법원으로 월급이 다 들어가고, 아내가 옷가게를 하면서 아이들 대학졸업을 시켰고, 이제 빚이 청산되고 살 만할 때가 되서 누리기만 하면 됐거든요. 하지만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시 37:5)’는 말씀을 주셨어요. 말만 하면 다투게 되니까 기도하자고 했어요. 근데 그 무렵 큰 일이 하나 생겼어요.”
– 어떤 일이었나요?
차: “어느 날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저녁식사하자고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뭔 일이 생겼구나 했어요. 약속 장소로 가보니 아들 친구도 같이 나와 있었어요. 아들은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빠져서 7개월 만에 7000만 원 빚을 졌다고 했어요. 친구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갚지 못해서 친구도 신용이 떨어지는 바람에 저를 찾아온 것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처음에는 주님이 안 보였어요. 나는 갚을 능력이 없으니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선 그 자리를 떠났어요.”
– 많이 어려우셨겠네요.
차: “가족들과 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이 일이 주님이 허락하신 일이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작은 아들이 매일 게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PC방에서 끌어내 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주님께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그 기도를 주님이 들으신 것 같았어요. 아내에게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거니까 아멘으로 받자고 했어요. 여기서 더 미루면 불순종이니까 내가 직장을 정리하겠다고요. 하지만 직장에서 제가 그만두는 걸 말렸어요. 직장은 제 안전한 터였어요. 연봉도 좋고, 퇴직하고 연금도 받을 수 있었는데, 주님이 아들을 통해서 다 내려놓게 하셨어요. 퇴직금을 받아 아들의 빚을 청산했어요. 그렇게 갚았는데도 빚이 더 남아 있었어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고 기도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갔어요.”
– 어려운 걸음을 떼셨네요.
퇴직금 조기 정산해 아들 부채 갚아
차: “이제 주님을 따르는 길 외에는 다른 게 없기 때문에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님이 부르신 길이 정확한지 묻고 싶었어요. 이 길을 가려면 이 빚을 갚아주셔야 갈 수 있는데, 나를 부르신 게 맞다면 빚을 갚아달라고, 그러면 이젠 묻지 않고 주님이 가라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기도했어요. 당시 나라에서 보상받을 토지가 있었어요. 훈련을 마치고 정부에서 보상금을 받았는데, 정확하게 그 금액이었어요. ‘이제 내 뜻과 내 계획, 모든 것 던지겠습니다. 어디든 아멘하고 가겠습니다.’ 고백하고 추천을 받아 온 곳이 기독학교인 헤브론원형학교였어요.”
– 그럼 그때 사모님과 함께 오신건가요?
차: “아니요. 아내는 6개월간 진행되는 복음사관학교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합류했어요. 사관학교 훈련을 받는 과정도 강력한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어요.”
–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세요.
오: “남편의 사관학교 수료식에 참석했는데, 그때 수료생 가족에 한해서 사관학교를 추가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광고를 들었어요. 사실 이 훈련을 미루고 있었죠. 근데 그 광고를 듣는데 온몸이 떨렸어요.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내가 여지를 두고 안하려고 하니까 주님이 쐐기를 박으시려고 하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차: “밥을 먹고 있는데 주님이 마음 주시는데 미루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밥 먹다 말고 원서 하나 달라고 해서 받아서 지원하게 됐죠.”
오: “남편이 훈련을 받는 동안 주님이 제가 남편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을 말씀해주셨어요. 이제는 남편을 100% 신뢰할 것을 결단했어요. 이 마음이 변할까봐 아들에게 이야기도 했어요. 아빠가 엄마에게 무엇을 요구하든 순종할 것을 결단했다고요. 저도 다음 걸음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마음이 있었는데, 문제는 아직 정신을 못차린 아들 때문에 걱정이 됐어요.”
차: “주님께 맡긴다는 게 어떤 건지 믿음으로 순종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사실 제가 아들 옆에 있는다고 해서 변할 애도 아니었죠.”
그렇게 차 선교사는 부르심 받은 학교로, 부인은 공동체 훈련을 받으러 입소하게 됐다.
<이상 224호에 게재>
‘자기 의’를 제하시는 주님의 계획은 또다시 이어지고
– 주님이 말씀으로 붙들어주셨네요. 그 다음이 궁금하네요.
차: “제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제 밑바닥을 보여주시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돌아가려고 하면 보여주셨어요. 그날도 백내장 수술을 하러갔어요. 혼자 수술방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너무 불쌍하고 초라한 거예요. 아내는 사관학교 훈련 중이고 아들도 못 온다고 하고요. 그런데 마침 그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수술을 하고 돌아와 혼자 자려고 누웠는데 전화가 울렸어요. 작은 아들이었어요. 늦게라도 내 생일 생각나서 했나보다 하고 받았는데 돈을 달라는 거예요. 또 사고 쳤다고요. 분이 올라와서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생일이란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다시 전화가 오더군요. 받아서 “내가 오늘 생일이다. 근데 아빠 축하한다고 못할망정 돈을 달라고 하냐.”하면서 끊었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난 어쩔 수 없는 놈이구나. 내 자식 하나도 사랑할 수 없는 자구나. 그날 밤은 많이 울었어요.”
– 마음이 얼마나 많이 상하셨어요.
차: “지금 돌아보면 주님이 나를 살리시려고 그런 상황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깨닫죠. 그 시간들을 통해 뭘 잘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나를 부른 게 아니라 나를 살려주시려고 부르셨다는 것을 새겨주셨어요. 하루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뇌 동맥류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는 지금 이대로 두며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혈관이 더 부어오르지 않고 살다 가면 이것이 병이라 할 수 없지 않겠냐고 의사는 말했어요. 그 소견을 듣는데 걱정보다 ‘주님으로 살게 하시는 조치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와 교장선생님께 진단결과를 말씀 드렸더니 “사명자는 사명을 다해야 하나님이 데려가세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아멘으로 화답했죠.”
– 저도 아멘입니다. 이후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셨나요?
차: “그런데도 아직 저에게 ‘자기 의’가 남아있었어요. 주방 권사님은 저 때문에 속이 터지실 거예요. 제가 청력이 안 좋아서 소리를 질러야 알아들으니까요. 그렇지만 남에게 짐으로 여겨지기는 싫었어요. 얼마 전까지도 그런 내면의 싸움을 했어요. 도움을 못주는데 내가 여기 더 있을 필요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 또 한 번 저를 살려주시는 시간이 있었어요.”
– 또 어떤 사건일지 가슴이 덜컹하네요.
“18년 전에 친구 보증을 선 것으로 인해, 전화가 왔어요. 원금에 이자에 엄청났어요. 유일하게 남은 거라곤 집 한 칸뿐이었는데 그것을 가압류 하고 경매처분 하겠다고 했어요. 당장 한 푼도 없는데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그 사람들은 정말 마음을 상하게 하고 피를 말리게 해요. 전화 통화 하고나면 ‘빨리 나가서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돈 빌려 줄 사람 없을까.’ 여러 방법을 찾아봐도 대책이 없었어요. 휴가 때 집에 갔는데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문제만 일으키는 아빠잖아요. 은행측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어요. 다 갚으라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으로 걱정하던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제 이야기를 들은 한 분의 도움으로 이의신청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기다렸어요.”
– 어려움의 연속이네요. 이의신청은 어떻게 됐나요?
차: “주님이 보증을 섰던 친구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친구는 전화도 받지 않고 나몰라라 하고 있었어요.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복음을 만나야 된다. 이제까지 돈 쫓아서 살았는데 복음 만나면 좋겠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소송하는 기간은 정말 힘이 들었어요. 재판정에 가서 앉아 있는 게 죽을 만큼 싫었어요. ‘나는 대책도 없다. 변호사, 법무사 살돈도 없다. 난 돈도 없다.’고 말하는 제 처지가 너무 싫었어요. 끝나고 돌아오는데 진짜 죽고 싶더라고요. 나 죽으면 더 이상 문제 일으킬 일도 없고 가족들이라도 편하게 살텐데…. 이런 공격이 오는데 너무 힘들어서 기도 좀 해달라고 아는 주위 지체들에게 기도제목을 나눴어요. 근데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입으로는 끝까지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계속 흔들리는 거예요. 내 편에서 나오는 믿음이 아니구나. 주님이 잡아주시지 않으면 한순간이구나. 깨닫게 됐어요.”
– 주님이 믿음을 요구하신 거였군요.
차: “그날 주님이 제 마음을 바꾸셨어요. 베드로전서를 보면서 성도들의 고난을 보게 됐어요. 네로의 박해가 계속되고 카타콤에 숨어서, 십자가에 불태워 죽이는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이들에게 찬양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기껏 돈 달라고 하는 건데 그마저도 두려워서 죽겠다고 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믿음 없는 자인지 보게 됐어요. 새벽에 기도를 드리고 났는데 내 안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어요. 주님이 나를 바꾸시려고, 나에게 믿음 주시려고 이 일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 주님이 나 같은 게 뭐라고 포기치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 게 뭔지 가르쳐주시는지…. 주님이 저를 너무 잘 아시니까 불 같은 연단을 통과하게 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군지 알려주시려는 것이었어요. 재판은 감사하게도 돈을 갚지 않는 것으로 판결이 났어요. 내 인생에 계속 개입해주시고. 지금도 계속 저를 만들어 가고 계세요.”
– 너무 감사하네요. 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차: “장래는 주님이고 계획도 없어요. 주님이 창세기 12장 말씀으로 복의 통로가 되겠다고 약속해주셨어요. 주님이 불러주셨으니 가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밖에 없죠. 그리고 기도제목이라면 온 가족이 복음으로 달려가는 것뿐이에요. 주님이 작은 아들도 바꿔주셔서 함께 이 걸음을 걷게 되도록 기도해주세요.”<끝>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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