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 마음의 눈을 밝히사 (7)]
퍼즐 한 조각만으로는 완성된 그림을 알 수 없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지 않는 한 퍼즐 조각을 원래 위치에 제대로 맞춰 넣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주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의도대로 깨닫고, 성경 전체가 말씀하시는 바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조각난 퍼즐처럼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용 복음, 치유용 복음, 가정 회복용 복음, 성공용 복음…. 성경 구절도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와 주제에 따라 자기 편리한 대로 그때그때 골라서 ‘조각난 복음’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복음만으로는 안 되더라.’며 심리학, 의학, 경영학의 도움을 받아 복음을 완성하려고 하는 사상이 가득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복음이 다른 것을 동원해야 간신히 복음답게 되는, 그런 허술하고 부족한 복음으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총체적 복음이 아닌 조각난 복음을 들고 복음만으로는 안 된다며 탓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복음은 완전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예배당도, 대단한 신학 체계도, 신학교도 없었지만 초대 교회는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굳게 잡아 로마를 덜덜 떨게 만들었고, 헬라의 철학도 무력화시켰습니다. 이 완전한 복음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부딪쳐 오면, 세상과 나와 하나님 사이에 반드시 격렬한 고민이 일어납니다. 조각난 복음이 아닌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서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완전한 믿음’뿐입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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