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 추방기(6.끝)
이 글은 중국에서 추방된 조용선 선교사가 2018년 1월 5일부터 18일까지 중국 ‘구어바오’(国保) 요원에 의하여 체포되어 추방된 과정의 자전적 기록이다. 중국 공산정권의 극심한 종교탄압으로 2020년 2월초 현재 중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이는 예배가 사라지기 직전 단행된 중국의 선교사 추방과정을 담았다. 현재 중국교회 성도들은 정부의 불허로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대부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편집자>
내 목숨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나는 중국에서 가정교회와 함께 중국인 지도자 양성에 중점을 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중국 사역의 방향이었다. 중국인 지도자 양성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중국에서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은 불법이기 때문에 언제 중국 경찰에 의하여 추방당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18년 동안 네 명의 지도자를 양성했다. 내가 네 명의 지도자를 양성했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요구하는 기준으로 볼 때에 나를 대신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말하는 중국인 지도자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18년 만에 중국에서 추방되지만 그 네 명의 지도자들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활동할 것이다.
두 번째로 말할 것은 가정교회이다. 교회 이름은 ‘썅티엔찌아오후이’ 한자(漢字)로는 향천(向天)교회라고 불렀다. 한국어로는 ‘하늘을 향한 교회’이다. 영어로는 ‘The Church for Heaven’이다. 향천(向天)은 하늘을 향한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의 신자는 이 땅에서 살지만 궁극적 목적지는 하늘이다. 또한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교회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와 함께 3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던 대학생들이 다른 교회에서 적응하기가 어렵고 또 나의 설교를 듣기를 원했기 때문에 2004년 5월 16일에 향천교회의 이름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이 교회를 통해 대학생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이 성장하고 지금은 중국 전역의 대도시에 퍼져 신앙생활을 하고 가정교회를 만들고 있다.
세 번째는 지하신학교 사역이었다. Y지역에서 지도자들에게 강의한 것과 B지역의 지하신학교에서 강의한 것 등이 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한족 지도자들에게는 보다 깊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조선족 지도자들에게는 조선민족의 역사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 시기에 단지 한국인의 역사가 아니라 남한, 북한, 조선족, 고려인, 재일교포를 묶는 조선민족의 단위 개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네 번째는 북한 사람에게 성경공부를 시키고 세례를 준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 가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 것은 그들이 북한 보위부에 의해 강제로 북한에 압송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에 친척이 없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나는 가슴이 아린 영적인 친척이 생겼다.
다섯 번째는 선교를 하는 동안 중국인들과 조선족과 북한 사람들을 보며 몇 편의 글들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그 글들을 출판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국 선교사로 있는 동안에는 출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름이 나면 자연히 내가 중국 선교사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출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중국 선교사라는 것은 정말 이름도 명예도 없이 빛은 약간 들지만 여전히 어두운 어스름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출판도 못하는 글들을 그 어스름한 환경 속에서 꾸역꾸역 혼자서 써 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주변의 중국인들이나 선교사들에게 주어서 나름대로 열매를 거두어 왔다.
그 외에도 서양 사람들이 나의 중국어 설교가 알아듣기 쉽다고 하여 1년여 동안 예배에 참석했던 일, 대만계 미국인이 수년 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일이 있다.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 가정 또한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수년 동안 함께 했다. 나오기 직전에는 중국 신분증을 갖고 있는 북한 청년을 도우려다가 그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온 아쉬움이 있다.
주님의 선한 계획대로 세워진 한 증인
여기까지 글을 쓰고 그동안 사용하던 SNS에 올렸더니 J라는 한국인 학생이 자신도 내 제자라고 쪽지를 보내왔다. 그 쪽지를 게재한다.
“히브리어로 살펴보는 성삼위 하나님” 편지를 받고 추방 과정이 몹시 궁금했는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년부 예배 중 카톡이 온 걸 보았으나 내용을 잠깐 보니 집에 가서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와서 찬찬히 읽었습니다. 제 예상과 같이 눈물이 콸콸 쏟아지며 그간 얼마나 힘드셨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창가에서 주님과 나눈 대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제가 알 수 없으나 선하신 계획과 뜻대로 하신 줄로 믿습니다.
목사님은 잠시 잊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역시 목사님을 통해 주님께 인도된 귀한 열매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목사님을 만나 처음으로 신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내 인생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한 것을 저는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믿는 형제자매들을 만나 그들이 제 신앙의 근원을 물어볼 땐 항상 조용선 선교사님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HY를 통해 목사님을 만난 일, 금요일 성경공부와 주일 예배, 세례식, 이후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삶 등등… 목사님을 만난건 제 인생의 너무나도 큰 축복입니다. 호칭 편의상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전 사실 “조용선 선교사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항상 간증할 때 제일 첫 번에 나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끝>
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