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저기!”
2012년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카셀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은 다급한 외침으로 울렸다.
도큐멘타 연구로 방문한 독일에서의 일정이 빡빡하여 하마터면 보지 못할 작품이었다. 이렇게 쉽게 발견하다니. 순간 ‘아, 주님은 우리가 직접 보길 원하셨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작품이 바로 게르츠라는독일 예술가 부부가 제작한이다.
이 작품의 독특함은 바로 기존의 기념비의 특성을 모두 뒤엎었다는 데 있다. 이전의 기념비라면 수직 상승을 보이며, 의례히 영웅적인 인물이나 희생당한 인물의 고귀한 아름다움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히려 낮고, 밋밋한 사각 기둥의 모습으로 기념비다운 모든 것을 거부했다. 우리 연구팀이 도착했을 때도 휑한 바닥만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가 처음에는 12미터의 납 기둥으로 설치되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이 납 기둥 모서리에는 금속연필이 달려서 사람들이 마음대로낙서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파시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 기둥에 파시즘에 대한 미움을 가득 투영해 마구 낙서를 했다. 심지어 나치에 찬동하는 글이나 이웃에 대한 험담까지 모든 것을 그 기둥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 낙서가 채워질 때 즈음, 기둥은 1년에 1.5미터씩 하강하였다. 작품이 설치된 지 8년이 지나자 기둥은 완전히 땅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기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가운데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왕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왕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신 분.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죄와 아무 상관이 없으셨음에도,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멸시와 조롱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지, 그분은 우리를 죽기까지 섬기셨다. 마치 기둥이 땅속으로 완전히 사라진것처럼…
글. 이상윤(미술평론가
“あ!そこ!”
2012年6月、ドイツ・ハンブルクからカセルへ向かっている自動車の中は緊急な叫び声が響いた。
ドキュメンタ研究で訪れたドイツでの日程がタイトで危うく見られない作品だった。
それをこんなに簡単に発見するなんて、ふと‘そうだ、主は私たちが直接見て欲しかったかも知れない’という心がした。
この作品がケルツというドイツの芸術家夫婦が製作したものである。
この作品の独特なことは、まさに既存の記念碑の特性をすべてひっくり返したことにある。これまでの記念碑は垂直上昇を見せ、形式的にヒーローの人物や犠牲された人物、尊い美しさが強調された。
しかし、この作品はむしろ低く、地味な四角の柱の形をしていて、記念品らしさを全て拒んだ。我々研究チームが着いた時もぽっかりあいた底だけだった。
しかし、初めは12メートルの鉛の柱で設置されてあった。作家の意図によってこの鉛の柱の隅には金属製の鉛筆がついてあり、人々が自由に落書きができるように造られてある。
人たちはファシズムとは全然関係ないこの柱にファシズムに対しての怒りをいっぱい投影して、落書きをした。それにナチスに賛同する文とか、隣人に対しての悪口まで、全てをこの柱に注ぎ出した。
そしてこの落書きがいっぱいになるころ、柱は1年に1.5メータずつ沈んでいた。作品が設置されてから8年にすぎると、柱は完全に土の中へなくなった。
韓国へ帰ってこの柱に対しての報告書を作成するなか、私は誰かを思い出した。王としてこの地に来たが、王の姿をしてなかった方。そして彼は私たちの罪と何の関係もなかったのに、
私たちの罪の代わりに、嘲弄と無視を前身で受けとどめた。そしてその愛はどんなに偉大であるか、彼は私たちを死ぬほどまで仕えた。まるで柱が土の中へ完全になくなったように。。
文. 李サンユン(美術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