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김명화 사모(하묘교회)
우리 인생이 선교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교회의 목회자 아내인 김명화 사모는 주님의 때에 자신의 삶 자체가 선교적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교적 존재는 곧 중보적 존재 즉, 기도의 삶을 사는 존재라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신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열방기도센터’로 드린 이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고 있다. 그 믿음의 여정을 들어봤다.
– 선교적 존재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정확히 알게되면 우리 존재를 선교적 사명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죠. 너를 통하여 모든 열방이 복을 받을 것이다. 열방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그런 축복의 통로라는 것이죠.”
– 그러면 선교적 존재라는 말은 우리가 모두 선교사라는 것인가요?
“넓게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실 선교적 존재로서 선교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생각의 폭이 그렇게 넓혀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제 경우도 그렇죠. 그런데 제가 현장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선교사가 되면 순교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가난하고, 못 입고, 못 먹는 고생스러운 삶이 싫었던 거죠.”
– 많은 성도들이 선교에 대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있었다고 하는 얘기를 해요.
“어느 날 두 손 들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때 그 사진을 통해서 선교사로 헌실 할 마음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 선교단체 훈련 과정에서 선교사 헌신을 하는 시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덜덜 떨면서 결단하며 일어섰어요. 그렇게 결단한 이후, 내 호흡조차 주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과 함께 선교사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내가 애써서, 내 노력으로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 삶으로 이끄신다고 믿어요.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선교적인 삶에 순종하는 태도가 먼저라는 마음을 받았어요.”
복음 앞에서 내가 선교적 존재임을 확인
– 주님께서 그 다음에 어떤 삶으로 인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총체적인 십자가복음 앞에서 선 이후 먼저 내가 선교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정도에서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으시더군요. 더욱 더 주님을 알아가도록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도에 대한 은혜를 더욱 깊이 누려가게 해주신 것 같아요.”
– 요즘의 기도 생활이 어떠신지 나눠주세요.
“모태신앙이라 기도는 줄곧 해왔어요. 새벽이나 밤이나 시간 날 때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즐겨했어요. 항상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도할 때 은혜도 많이 받았던 것 같구요.
그런데 22살 신학생 때에 일찍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서로 잘 맞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혼에 대한 생각을 할 만큼요. 그러면서 제 기도는 오직 마음의 평강을 달라는 기도에 온통 집중되었죠. 남편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면 늘 하나님께 울면서 하소연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돌아보면 기도는 많이 한 것 같은데 기도의 주제가 모두 나의 필요를 채우는 문제해결과 소원성취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 그 기도 내용에 변화가 생겼나요?
“복음 앞에 서면서 나를 위한 기도를 못하겠더군요. 그런데 정작 주님이 원하신다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도 잘 안되는 거예요.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어요. 일종의 ‘기도의 공황상태’가 일어난거죠. 그런데 그 선교단체의 중보기도학교를 계속 참여하면서 기도의 삶이 계속해서 자라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성경을 읽고 말씀에 대한 묵상과 함께 기도하는 말씀기도는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누리는 시간이에요.”
–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나요?
“중보기도학교에서 기도24365를 소개받았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하루에 한 시간씩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어요. 한다고 해놓고 안하면 양심에 찔릴 것 같아 결단을 못했죠. 기도정보도 너무 두껍고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한 1년이 지났어요. 그러다 기도의 행위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2006년에 기도24365를 시작했어요. 새벽 4시 기도자였죠.
그런데 졸음 때문에 또 무너졌어요. 나를 위한 기도라면 밤새 기도할 텐데, 느껴지지 않는 이 기도는 잠이 그렇게 쏟아지더라구요. 나중에는 그냥 잠에 맡겨버리는 지경이 되었죠.”
– 기도에 대한 결단을 그렇게 그냥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그렇죠. 주님이 새로운 기회를 주셨죠. 2009년에 저희 교회 차원에서 기도24365 교회팀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그리고 교회 자체적으로 24시간이 연속될 수 있도록 시간대별 기도의 파수꾼을 세웠어요. 그리고 저는 남은 시간대인 오전 10시와 오후 5시 두 시간을 파수하기로 했죠. 이 시간들이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시간대라 기도시간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름 기도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 목사님이 우리 교회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열방기도센터를 할 거라고 말씀하실 때, 기쁘게 받지 못했어요. 제 마음 안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죠. 열방기도센터를 시작하게 되면 결국 나 혼자 기도를 채워야 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죠.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그런 열방기도센터, 나는 못해!’ 이런 마음이 들더군요.
‘기도의 자리에서 죽고 싶다.’ ‘기도의 제물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제게 주님은 ‘너는 기도를 싫어하는 존재야’라고 결론을 내려주셨죠. 이전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기도시간에 빠졌는데, 이제 그런 상황에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 일을 계기로 기도24365 자리가 견고해졌던 것 같아요.”
– 열방기도센터에 대한 비전은 어떻게 되었나요?
“열방기도센터에 대한 비전은 저희 교회가 쉬지 않고 일주일씩 기도하는 느헤미야52기도를 계속해서 참여하면서 품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 기도를 자주하다 보니 부담감을 느끼시던 분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24시간 365일 계속해서 내 필요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했으면 좋겠다는 비전이 희미해져갔죠. 그런 위기 상황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네가 열방기도센터가 되면 된다.”는 거였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그렇게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어요. 제가 먼저 교회 안에서 기도의 제물로, 한 알의 밀알로 죽을 때에 그 열매로 또한 기도의 자리가 풍성해질 것을 믿어요. 나 혼자 열방기도센터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모든 성도들과 모든 교회들이 이 영광을 함께 볼 수 있도록 기도할거에요. 나를 뛰어넘어야죠.”
내가 먼저 교회에서 기도의 제물이 돼야…
– 현재 교회에 24시간 기도하는 열방기도센터가 가동되고 있나요?
“교회 차원에서 24시간 이어지고 있어요. 저의 경우는 기도24365 기도시간인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기도 하면서 그 시간 앞뒤로 몇 시간 씩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있어요. 어떤 때에는 저녁시간에도 기도의 자리에 앉기도 해요. 그런데 생활을 하다보면 기도시간을 못 지킬 때도 있는 건 사실이에요. 육체가 피곤한 것도 사실이구요.
최근 사이판에 다녀왔어요. 그곳에 열방기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교회가 있어요. 그곳 성도님들과 교제를 하며 바쁜 생업 중에서도 열방기도센터에 나아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 눈물이 많이 났었죠. 그 일을 계기로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었어요.”
– 기도생활을 하시면서 누리시는 은혜를 나눠주세요.
“기도하면 할수록 주님이 나를 그렇게 원하고 계시고, 더 교제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열방을 회복하시는 일에 제 기도를 사용하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통로인 저를 주님이 더욱 원하시고 다듬어 가시더라구요.
제가 추위에 약하고, 그리고 잠도 많아요. 그런데 주님이 제게 ‘추운 겨울, 늦은 밤 시각에도 기도할 수 있겠니?’라고 도전하셨어요. 그런데 마음이 쉽지 않았죠. 두렵고 못할 것 같았어요. 저의 본성은 정말 따뜻한 이불속에서 자는 거죠.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더라구요.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 같아요. 몇 시간 기도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매 시간 그렇게 주님을 더 알아가는 시간을 누리게 되면서 더 기도하는 자리를 사모하며 나아가고 있죠.”
– 기도제목이 있으면 나눠주세요.
“전에는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해서 전혀 무관하게 살았어요. ‘내게 구하면 열방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이 더욱 실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땅의 영혼들과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더욱 기도하고,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원하시는 그 영광까지 보는 것이 기도제목이에요.”
J.Sお祈りの座で神様と共にするキム・ミョンファさん(ハミョ教会)
私たちの人生が宣教的存在である事実を悟った者はどんな人生を送るだろうか。 典型的な農村の村である全南(チョンナム)、ムアングン(地名)に位置した教会の牧師の妻であるキム・ミョンファさんは神様の時に自分の人生が宣教的存在であることを悟った。 しかしその悟りはここでとどまらなかった。 宣教的存在は、つまり執り成しの存在、すなわちお祈りの人生を生きることに繋がった。 そして自分を、すべての国の人のために祈る祈りの家である‘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祈るお祈りセンター’で捧げた後、神様と深い交わりを交わしている。 その信頼の歩みについて聞いてみた。
– 宣教的存在の言葉の意味は何ですか?
“神様が私たちを造られた目的を正確に知るようになれば、私たちの存在を宣教的使命と切り離す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事実を知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君を通してすべての国の人々が祝福されるだろう。すべての国の人々が祝福される唯一の方法は、神様を知るようになることです。 そんな私たちは祝福の管ということです。”
– ということは宣教的存在の言葉の意味は、私たちは皆、宣教師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広く見ればすべてのキリスト者は事実宣教的存在としての宣教師にならざるを得ないと思います。ところが私たちの考えの幅が広げられるまでには時間が必要です。 私の場合もそうです。しかし、私が宣教現場に行く宣教師になるかも知れないと思うようになってからは心が楽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宣教師になれば殉教しそうな漠然とした恐れと貧しくて、着られなくて、食べられなくなる苦しい人生が嫌いだったからです。”
– 多くの信徒が宣教に対してそのような恐れを持っていて、実際そうだと言っています。
“ある日、両手を合わせて切に祈っている自分の姿が写っている写真を偶然に見つけました。 その時その写真を通して宣教師で献身する心を与えられました。そしてある宣教団体訓練過程で宣教師として献身を告白する時間に従順する心で、がたがた震える心で決断しながら立ち上がりました。 そのように決断した以後、私の呼吸さえ神様の御手にあるという告白と共に宣教師に対する恐れは消えました。
現在は私の努力で宣教師になるのではなく、神様がその人生に導いてくださると信じます。 そして現在この場で宣教的な人生に従順にする心が先だにということを気づきました。.”
福音の前で私が宣教的存在であることを確認
– その後、神様がどのように導いてくださったか知りたいですね。
“総体的な十字架福音の前に立った以後、まずは自分が宣教的存在という事実を悟ったことだけでも大きな喜びでした。しかし神様はその程度で私たちを放っておかなかったのです。 より一層神様を知るように、神様と交わるようにお祈りの恵みを降り注いでくださいました。”
– 最近のお祈りの生活について分かち合ってください。
“キリスト教のお家庭に生まれたこともあり、いつもお祈りをして来ました。早天や夜など、隙間を見つけては神様との交わりを楽しみました。いつもお祈りをする習慣があったと思います。
ところが22歳神学生の時に早く結婚をしましたが、離婚を考えるほどお互い合わなくて辛かったです。その時私の祈りの課題はただ神様に平安を与えてくださいと願うばかりでした。旦那との関係で苦しくなると、いつも神様に泣きながら掻き口説くことが日常でした。振り返ってみると、お祈りは沢山したかのように見えますが、お祈りの内容はすべて自分の必要を満たすための問題解決と願いが叶えられるようにと、この程度のお祈りでした。”
– そのお祈りの内容に変化はありましたか?
“福音の前に立ってからは、自分のためにお祈りができなくなりました。しかし、本来神様が望む神の国と義を求めるお祈りも難しかったのです。口からお祈りができませんでした。いわゆる‘お祈りのパニック状態’が起きたのです。しかし、その宣教団体の執り成し祈り学校に参加しながら祈り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特に聖書を読み、黙想した御言葉でお祈りすることは、御言葉の約束を成就する神様を実際体験する時間でありました。”
– どのようにして神の国と義を求めていますか?
“執り成し祈りの学校でお祈り24365を紹介されました。はじめはとうてい意欲がわきませんでした。 一日に1時間ずつ、神様がまた来られるその日まで絶えずお祈りができるのだろうか?とてもできそうになかったです。 やると言ってからにはやらないと良心に嘘をつくようで決断できませんでした。祈りの情報も重く難しく感じました。
しかし、またも眠気に負けてしまいました。自分のために祈るなら夜更かしでもできますが、何も感じられないこの祈りはただ眠いだけでした。後ほどにはそのまま睡眠に任せてしまう状況になりました。”
– それでもお祈りに対する決断を諦めてないですね。
“そうです。神様は新しいチャンスをくださいました。 2009年に私どもの教会で「お祈り24365」教会チームで参加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そして教会自主的に24時間お祈りができるように時間帯別にお祈りの見張りを立てました。 そして私は残った時間帯である午前10時と午後5時、この時間帯を担当しました。この時間は最も活動する時間帯であるためにお祈り時間を守ることが容易でなかったですが、それなりにうまくやっていると思いました。
ところで夫である牧師様は、私たちの教会が24時間365日休まないで祈る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祈りをするセンターの役割をすると御話された時には快く受け入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私の心にはこのような考えがあったからです。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祈りをするセンターを始めると、またも自分一人でお祈り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目に見えたからです。くやしい気がしながら‘そのようなお祈りのセンターなど私にはできない!’という思いが生じました。
‘お祈りの座で死にたい。’‘お祈りの捧げ物になりたい’と言っていた私に神様は ‘君はお祈りを嫌う存在だ’と結論を下してくださいました。以前はあらゆる言い訳をしながらお祈り時間を避けましたが、もうこれ以上言い訳をしないで信仰を与えてくださいと祈りの時だと思いました。これをきっかけで「お祈り24365」の場はもっと硬くなりました。”
– 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お祈りするお祈りのセンターに対するビジョンはどうなりましたか?
“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お祈りする祈りセンターに対するビジョンは、私どもの教会が休まず一週間ずつ祈るネヘミヤ52祈りを続けて参加しながら抱くことになりました。初めには多くの信徒たちは沢山の恵みをいただきましたが、この祈りを続けていると、負担を感じた人々は一人二人ずつ抜けて行きました。そうしているうちに24時間365日続けて私の必要ではなく、神の国と義を求めるビジョンは薄れていきました。そのような危機状況で神様は仰せられました。“君が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お祈りする祈りのセンターになれば良い。”と仰せられました。一粒の種が地に落ちて死ぬことで多くの実を結ぶとおっしゃったのではないですか。私がその一粒の種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信じるようになりました。私が先に教会の中でお祈りの捧げ物として、一粒の種で死ぬ時にその実でまたお祈りの座が豊かになることを信じます。私一人でお祈りセンターで満足するのではなく、家族とすべての信徒たちと、すべての教会がこの光栄を共に見るように祈ります。 私を跳び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私が先に教会で祈りのいけにえを捧げないと…
– 現在も教会では24時間祈るセンターが稼動していますか?
“はい、現在も24時間稼働しています。私の場合、「お祈り24365」お祈り時間である午前10時と午後5時にお祈りをしながら、その時間帯の前後何時間ずつ教会の祈祷室で祈っています。ある時には夕方もお祈りの座を守ったりします。しかし、生活のなかで祈りの時間を守らないこともしばしばあります。肉体的に疲れることも事実です。
最近サイパンに行ってきました。そこにすべての国の人々のためにお祈りするお祈りのセンターを運営している教会があります。彼らと交わりながら忙しい中でもお祈りのセンターに進み出て祈る姿を見聞きしながら、神様の心が与えられ涙がこぼれました。これを機により一層お祈りに励みました。”
– お祈り生活をしながら味わった恵みを分かち合ってください。
“祈ればするほど神様が私をどれほど望んでおられるか、もっと交わりをしたいということに気付かされます。すべての国の人々を回復させるために私のお祈りを用いてくださることも事実ですが、その管として私を作り変えてくださいました。
私は寒さに弱くて睡眠も多い方ですが、神様はそんな私に‘寒い冬、深夜にもお祈りができるか?’と尋ねられました。しかしそれは簡単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恐ろしくて出来ないと思いました。私の本音は暖かい布団の中で寝ることでが、しかしお祈りの座に出るように導いてくださる方は神様でした。
お祈りを通して神様をもっと知っていくようです。何時間祈ったかが大事ではなく、ただ常に主を知っていく時間を共にしながらもっと祈りの座に進み出ています。”
– お祈りの課題があれば教えてください。
“以前は神の国と義について無関係の人生を生きてきました。‘神様にすべての国の人々の為に祈れば与えてくださる’と御言葉の約束が本当に成し遂げられるといいですね。この地の魂と教会のために祈る時に天の父なる心で、お祈りの座で神様が示してくださるその栄光を見ることがお祈り課題です。”
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