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그 영혼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정말 이토록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성도의 모습은 누구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지극히 탁월하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에 대한 놀라움은 곧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크심을 아는 감동으로 바뀌게 된다. 그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죄인이었지만, 그를 그토록 영광스럽게 살게 한 힘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탁월한 아름다움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복음을 받은 신자가 어떤 수준으로까지 살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은 자들이 살아내는 하나님 수준의 삶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미국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그의 나이 30세 여름이 저물 때의 어느 날이었다. 21세에 회심한 후 9년간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렬한 삶을 산 그는 가장 완벽한 영적 아름다움이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가장 두드러지고 격려 넘치는 본보기다. 그의 삶을 보며 우리는 자신의 삶에 너무 쉽게 만족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두 발과 얼굴이 브레이너드가 늘 습관처럼 살았던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하도록 이끌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서 거룩함을 구하는 뜨거운 기도를 일깨울 것이다.
그는 마치 한 순간도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부지런함으로 삶의 모든 시간을 가득 채웠다. 그의 삶의 결론은 늘 복음과 기도였기에, 이 두 은혜의 수단이 주는 거룩함과 달콤함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여행하고, 쉼 없이 공부하며, 늘 가르치고 글을 쓰게 했다. 그는 한 순간이라도 시간을 낭비하거나 헛되게 보내는 것을 끔찍한 죄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가진 특유의 우울한 기질은 신앙적인 애통함과 함께 자주 낙담이나 절망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이 돋보였다. 그는 때로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이나 위대한 신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필자는 오히려 그런 정서적인 굴곡이 거룩함을 갈망하는 신자가 겪는 필연적인 여정이라 생각한다.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비천한 자라고 여겼다.
그의 이러한 내면의 갈등 속에서 결국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위대하심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자주 기도하였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소서. 당신께서 영광을 받으소서. 제가 기뻐하리이다. 당신의 찬양 받으실 이름을 존귀하게 하소서. 이것이 제가 갈망하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의 경건생활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발전한 신앙의 정서는 그의 복음전도와 설교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났다. 그는 성령 안에서 자유로움과 감미로움을 느끼며 설교할 수 있었고, 그의 설교를 듣는 이들의 마음은 녹아내렸으며 눈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기도생활은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에게서 생각 없이 지절거리거나 중언부언하는 기도, 가끔 꾸벅꾸벅 조는 기도를 상상할 수 없다. 그가 깊은 숲 속에서 고뇌에 찬 간구를 하고 나올 때,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 속에서도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무릎을 꿇은 곳에서 일어날 때면 몸이 기진맥진해져서 똑바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무릎 관절은 힘이 풀렸고 땀은 얼굴과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도는 늘 이타적인 기도였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번영과 선교완성을 위해서만 기도했으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야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특히 가엾은 원주민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할 때 자신이 이기적인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고 난 후에 “영혼이 넓어지는 것”을 늘 경험하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심령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감각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다.”고 거의 매번 고백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일기가 거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의 문장에는 우리 심령 속에 거룩하고 은혜로운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필자의 침대 머리맡에는 항상 그의 일기가 놓여 있어서 심령이 딱딱하게 굳어있거나 마음이 건조할 때마다 집어 들었다. 읽을 때마다 그의 글에 깊이 공감하며 은혜로운 확신과 결단을 내리곤 했다.
복음과 기도를 끈기 있게 붙잡는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가? 그리고 복음 때문에 고난 받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으로만 만족하며 살고 싶은가? “톨레 레게!(집어서 읽어보아라!)” 회심하기 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들었던 소녀의 음성이 지금 우리들에게도 들리길 바란다.
박대석 전도사 (대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