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마음껏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마치 절벽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지옥을 향해 달려가던 자가 나였다. 그런 나를 바꾸셔서 주님의 사랑이면 충분하게 하셨다. 주님 앞에 나를 산제물로 ‘아멘’하여 드린 자리가 바로 한 기독교학교의 주방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정신으로 순종한 것 같지 않다. 일방적으로 주님이 은혜를 엄청나게 부어주시고, 사랑의 줄이 꽁꽁 나를 메어 나의 옛생명을 부인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셨다. 지옥에 들어가야 마땅한 나를 위해 하나님의 전부이신 독생자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셔서 구원하셨는데, 그 무엇을 드린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고, 없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방, 모든 것이 낯설고 철저히 나를 부인하는 자리였다. 두 분 권사님이 격월로 쌀 창고에서 내어주는 쌀로 밥을 지었다. 두 분의 성향이 다르기에 때에 따라 밥을 다르게 짓는 것을 처음에는 오해하기도 했다. 한 분은 진밥을 인원수에 딱 맞게 짓는 것을 선호하시고, 다른 한 분은 윤기나는 쌀로 여유 있게 밥을 하는 것을 원하신다. 오랜 시간 각자의 경험으로 “밥이 잘됐다, 안 됐다.”라는 말을 하실 때면 마치 내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믿음으로 했으면 결과는 주님 허락하심으로 받으면 되는데, 어느새 내 속에는 비판과 정죄함으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흉악한 자였으나 어떤 은혜를 받은 자인지, 어떤 사랑을 받은 자인지 하나님은 기억하게 하셨다.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청하여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개 취급을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그 여인보다 더한 취급을 받는다 하여도 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여야 할 자가 나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내가 받은 은혜를 더욱 깨닫다
아주 심하게 밥이 곤죽이 되어 내가 한심하게 여겨질 때, 이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권사님들의 말이 다음세대 선교사들과 선생님들께 맛있는 밥을 지어 섬기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깨어 기도하며 준비하라는 사랑의 음성으로 들려진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는 말씀을 따라 주방을 성전 삼으실 주님을 찬양하게 하신다.
우리 주방에는 밥을 수리하는 ‘밥 수리 전문가’가 있다. 밥 배식을 위해 밥 솥뚜껑을 열었는데, 밥이 완전히 설익어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된 날이 있었다. “큰일 났네.”라는 잔소리보다 밥이 부족해 난리가 날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그때, 권사님께 “밥 한 솥이 설익었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말씀을 드리니 “수리해야죠. 가지고 오세요.”라며 웃어 주시는데 정말 내 안에서 기쁨이 넘쳤다. 나의 작은 실수도 사랑으로 덮으시는 권사님들을 보며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신다.
이뿐 아니다. 언젠가 닭을 손질할 때, 닭에 붙은 기름 부위를 정말 만지기 싫었다. 그때, 한 선교사님이 “장로님, 이런 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처음이라는 나의 대답에 “복음의 능력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 뜯어말려도 끝내 하고야 마는 인생을 살려주시려 나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자리에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 정도면 됐지, 잘하고 있어.’ 언제든 내 안에 교만이 올라와 나태해질 때면 하나님은 사건들을 허락하신다. 그때마다 나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을 확증해 주시고 교정해 주신다. “해 돋는 데에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 113:3) 이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실 주님을 찬송한다. 마라나타! [복음기도신문]
차종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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