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선교사로 헌신한 이후로는 크든 작던 항상 공동체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혼자’인 시간은 거의 없었고 항상 지체들과 ‘함께’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까지 일곱 식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인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첫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숙소에 홀로 남아 아이를 돌보는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 이전 공동체와 다르게 사역공간과 숙소가 분리되어 있어 저를 제외한 다른 지체들은 모두 출퇴근을 합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가 퇴근하기까지 ‘혼자’인 시간이 허락되었습니다. 물론 아이가 있지만 홀로 식사를 하고 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처음엔 이전에 지체들과 함께했을 때처럼 밥 먹는 것도, 예배도, 육아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은, 혼자 있으니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뭐… 사역의 모양과 공간만 바뀌었지 그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라며 애써 괜찮은 척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느라 밥을 먹는 것도, 예배를 드리는 것도 나의 의지와 애씀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실상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결국 저는 주님 앞에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왜 나를 홀로 두시나요? 아이를 돌보는 것도 서툰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배 선교사들과 함께 두시면 좋잖아요? 그러면 좀 더 배울 수 있고 아이도 돌보면서 예배도 드릴 수 있잖아요. 눈 감고 집중해서 기도하고 싶고요, 저 혼자 밥 먹는 것도 싫고 온종일 대화할 상대도 없다고요.”
기도를 빙자한 원망과 불평의 눈물 섞인 자조를 주님은 잠잠히 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반복되어 갈 때 주님은 아이에게 말하는 내 입술을 통해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가 자는 틈에 주방 일을 하고 있는데 자다 깬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얼른 달려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여기 있어. 너 혼자 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네 바로 옆, 주방에 있었어. 엄마가 안 보여도 엄마는 항상 너와 함께 있어. 엄마는 절대 널 혼자 두지 않아. 그러니까 놀라지 않아도 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울지 않아도 돼.”
스스로 그렇게 아이에게 말하면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하는 그 말을 주님은 내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셨습니다. ‘너 혼자인 것 같니? 아니야. 난 너와 항상 함께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는 늘 너와 함께 한단다. 그러니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아빠가 여기 있어!’
그제야 눈에 보이는 상황에 치여 임마누엘 주님을 보지 못하던 내 마음의 눈이 떠졌습니다. 아이가 울 때마다 습관처럼 반사적으로 외쳤던 말,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간다.” 주님은 그렇게 계속해서 내게 말씀하셨는데도 내 마음이 어두워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 했습니다. “아빠가 여기 있어. 아빠가 함께 있어.”
죄인인 나와 항상 함께 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하는 삶.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지켜보느라 눈을 뜨고 기도해야 하는 그때도, 닥친 상황을 불평하며 혼자 울던 그때도, 대충 차린 밥상 앞에서도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보고 듣고 계셨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때로는 혼자 떠드는 것 같은 그때에도 주님은 다 들으시고 신실하게 일하고 계심이 믿어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전히 혼자 밥을 먹고 홀로 아이를 돌보지만 나는 더는 혼자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아빠 아버지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복음기도신문]
김지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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