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윤영지 선교사는 오직 세계선교만을 위해 결혼을 하고 구소련으로 떠났다. 그 땅의 영혼들을 예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청춘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탈진한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그 한가운데서 십자가 복음을 만났다. 오직 복음이면 충분한 삶을 살던 가운데 다시 구소련이었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부르심을 입은 이들을 만났다.
– 어떻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셨나요?
강정구(이하 강):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선교단체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대학 생활보다는 단체에서 훈련받는 것이 주된 일이 되었어요. 학생 선교단체다 보니까 선교란 주제가 제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면 당연히 선교사로 가야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제대할 때 쯤 결혼을 하게 됐어요.”
윤영지(이하 윤): “저도 80년도에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했어요. 예수님을 만났는데 선교사 이하의 삶은 없다고 생각해 고2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단체에서 남편을 만나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구소련으로 가게 됐어요. 남편은 결혼 후 곧바로 구소련으로 나갔고 저는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해인 92년에 나가게 됐어요.”
– 선교지 상황은 어땠나요?
강: “그 당시 구소련은 아직 한국과 수교를 맺기 전이었어요. 우린 85년부터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를 기도해왔어요. 그러다 한 유학생이 동유럽에 들어가게 된 것이 신호탄이 되어 가게 된 것이죠. 근데 마침 91년도에 구소련이 붕괴됐고 15개의 독립 국가들이 생겼어요. 전 그중 K국에서 개척을 하게 됐고 아내를 초청했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 삼는 사역을 했어요.”
대학 때 복음 만나고 바로 선교사로 헌신
– 선교사역은 어땠나요?
강: “제가 사람들과 교제를 잘 못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중등부까지 다녔는데요. 중등부 회장 될까봐 두려워서 그만 뒀어요. 워낙 내성적이어서요. 그러다보니 오로지 현지인들과만 접촉하면서 제자훈련을 했어요. 한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이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게 연합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러나 교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현지에 형식적인 신자를 세우는 게 아니라 제자를 세워서 예수님 제자 수준만큼 만든다.’ 이런 식의 생각이요.”
윤: “처음 선교현장에 갔을 땐 학생들과 만나고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제자삼아 나와 같은 선교사로 세우는 목표를 가지고 쭉 달렸어요. 그러나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복음을 잘 모른 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윤: “제가 생각한 선교는 부지런히 제자들을 가르치면 열매가 맺히고, 수적으로나 영적으로 부흥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는데 순종이나 성장이 없었어요. 그 모습에 제가 많이 지치더군요. ‘나의 힘과 지혜로는 어떻게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더 깊이 자라지 않고 바리새인과 같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제 모습인줄 알면서도 판단하고 정죄했죠. 그들을 품을 수 없는 한계가 왔어요.”
강: “제자를 양성한다며 열심히 가르쳤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은 것에 많은 한계를 느꼈어요. 그러나 그들은 다른 교회 성도들에 비하면 헌신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존재의 문제에 들어가다 보면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러나 이들보다 더 변하지 않는 내 모습 때문에 실망스럽고 목이 말랐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여전히 살아서 주님을 섬기려 했으니 안 된 것이었죠.
그런 가운데 저는 점점 위선과 외식으로 복음에서 비껴갔어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거룩한 척 해야 하는 삶에 목마름이 더해갔어요. 그러다 선교사 복음학교를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달려갔어요. 충격이었어요. 이런 복음이구나. 그리고 제가 총체적인 복음의 관점으로 성경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위선과 외식의 삶에 목마름
– 그 훈련과정을 마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윤: “남편이 변화되는 것을 보았어요. 탈진한 모습은 사라지고 아주 평안했어요. 이후 제자들 7명도 훈련과정에 다녀와서 완전히 변화됐죠.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외치면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데 제게 희망이 비춰오면서 이런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 젊음을 바쳐서 섬겼을 땐 변하지 않던 이들이 단 일주일 만에 변했다는 것이 당혹스러웠어요.
당시 저도 죄 가운데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한국에서 열리는 훈련에 참여하게 됐어요. 복음을 만나고 나니 육적인 제 삶은 완전히 파산인데 영적으로는 새 피조물, 새 선교사로 회복 된 극적인 인도하심이었어요.”
– 복음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네요.
강: “저는 그 이후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복음훈련에 섬김이로 다 좇아다녔어요. 그러나 실상 복음의 핵심은 놓치고 있었죠. 복음을 듣고 충격은 받았는데 곧바로 머리가 어떻게 돌아갔냐면 이것을 잘 요리해서 현지 제자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으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녹취 수준으로 필기했어요. 그러니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존재적 죄인 된 실체 앞에 서질 못했어요.
더욱 목말랐어요. 주님과 함께 죽은 죽음이 내게 어떻게 실제가 될 수 있는지. 다시 아내와 함께 복음훈련에 참석하면서 이 복음이 내게 실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기도에 응답하셨죠.”
–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강: “복음훈련이 끝나고 다음날 아내가 자신에게 실제가 된 복음을 정리해서 읽어줬어요. 그것을 듣는 순간 주님이 응답하셨구나 깨닫게 됐어요. 아내의 이야기 속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열매들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의 시간들은 나의 죽음을 십자가로 처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습하는 시간이었어요.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가. 비로소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믿음을 써 볼 수 있었어요. 믿음 위에 서 있을 때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믿음이 아닐 땐 지옥을 경험했어요. 이게 몇 년 동안 반복되었어요.”
윤: “죄의 열매와 저에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누고 나서 드라마틱한 시간이 펼쳐졌어요. 부부 안에서 뿐 아니라 우리가 세웠던 교회 리더들과 한인 선교사들, 한국과 세계에 퍼져나간 선교단체 리더들에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눴죠. 죽음을 확인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어요. 복음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오히려 믿고 신뢰하던 분들로부터 정죄와 판단을 받았어요. 주님은 우리의 모든 터를 흔들어버리셨어요. 결국 우리 가정은 홀로서기를 해야 했어요.”
다시 선교사 훈련생으로 재출발
– 복음이 실제 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은 것이군요.
강: “삶의 모든 터를 허물고 모든 것을 0점 처리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었어요.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데 주님이 홍해 앞에 세우시고 우리의 뿌리를 뽑으시는 것 같았죠. 단체를 나오고 보니 갈 데가 없어서 살던 지역에서 1년 정도 교회를 순방하며 다니다 2007년에 복음훈련을 섬기고 있는 선교단체로 초대받아 갔어요.”
윤: “단체 안에 있는 기도센터에 머물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믿음의 증인은 있어도 공동체로 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십자가 복음이면 공동체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하게 됐어요. 우리의 모든 경력을 0으로 만들고 선교사 훈련생으로 지원했어요. 그동안은 나의 최선으로 주님을 따라왔다면 이제부터는 믿음이 아니면 따를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졌어요.
‘보이지 않는 주님의 공급하심을 어떻게 믿고 사는가.’ 상상할 수도 없는 주제였어요. 평생 자비량 선교사로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았는데요.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과 함께 주님이 저의 주인이심을 경험하게 해주셨어요. 또한 암을 통해서도 주님밖에 의뢰할 분이 없음을 확증해 주셨어요. 주님은 그렇게 여러 방면에서 복음과 기도로 충분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무렵 해외지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불러주셨어요.”
강: “처음에는 기쁘기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도망쳐나왔던 곳을 다시 가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선교사로 십수 년을 살았지만 반드시 들려져야 할 복음을 증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픈 마음이 있었어요. 주님이 지금 그 마음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중앙아시아 지역을 순방하며 복음을 선포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를 만났고 복음이 실제가 됐는지. 그러던 중에 현지인 복음훈련을 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현장선교사님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던 거죠.”
러시아어로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 현지인 복음훈련이라면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과정 말인가요?
강: “네.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주님의 뜻이 너무 분명했어요. 주님은 국내에서 먼저 3박4일간 러시아어 미니 복음훈련 과정을 섬기게 하셨어요. 어눌한 언어로 버벅대면서 했는데, 네 명밖에 안 되는 훈련생이 제게 말은 못하는데 내용은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국내에서 2회, 해외에서 5차례에 걸쳐 러시아아로 복음훈련 과정이 진행됐어요.”
– 주님의 놀라운 역사네요. 복음훈련 과정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윤: “선교현장에서 위험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돼요. 그래도 현장에 준비된 갈망하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보면 주님이 얼마나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셨을까 생각하게 돼요.”
강: “90년대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서양문물과 함께 모든 교단, 이단들도 함께 들어왔어요. 그때 현지인들은 ‘축복 받아라. 병고쳐라.’는 복음을 들었어요. 현지인들은 지금 목말라 있어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말과 많은 설명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진리, ‘당신은 존재적 죄인입니다. 이대로 가면 영원한 지옥형벌입니다.’ 이것만 발견하면 되겠더라구요. 복음훈련을 통해 그런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복음의 진리 앞에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통곡하며 얼마나 감격하는지요. ‘옛 생명이 처리됐구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여요.”
– 중앙아시아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네요.
강: “그러나 여전히 어렵죠. 지금 종교법이 강화되고 있어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겼지만 기독교도 탄압을 받고 있죠. 거리에서 전도할 수 없고 성경을 공부할 수도 없어요. 등록되지 않는 교회와 모임은 불법이구요. 그런 가운데 교회는 위축되어 있고 경제적 어려움도 있어요. 사역자들은 풀타임으로 섬길만한 재정이 없어서 사명을 내려놓고 돈을 벌기위해 한국과 러시아로 가요. 그런 곳에서 아주 진지하게 복음 앞에 부딪치는 영혼들을 보며 역시 복음밖에는 없구나. 더욱 복음이 소망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강: “지금까지 주님이 보여주신 것 안에서 허락하시는 한 복음의 씨를 뿌린다는 심정으로 달려왔어요. 매번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순종하고 있어요. 선교지 상황이 언제 막힐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저와 열방이 복음 앞에 서며 세계선교가 완성될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윤: “중앙아시아에 부흥이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복음이 바르게 전해지고 교회들이 복음으로 충분하게 되도록요. 우리를 밀알처럼 사용해 주시도록요.”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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