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마음이 흔들릴 때 예배로 단기선교의 부르심 깨달아”

쉽게 입국하기 어려운 C국으로 1년 동안 단기선교를 다녀온 차세은, 이은진 자매를 만났다. 선교사 자녀를 섬기는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고 비장한 마음으로 날아간 선교지에서 막상 그들을 기다린 것은 무료함과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이 먼 데까지 우리가 애 보러 왔나? 우리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고 하찮아 보였다.”는 고백이 “이 땅의 영혼들을 생각하면 기도하고 싶다.”는 고백으로 변하기까지 그들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 어떻게 1년간 단기선교를 나가게 됐나요?

이은진(이하 이):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파송될 선교지가 정해지고 그곳으로 가기 전 공동체 선교훈련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제 존재의 절망을 맛보게 됐어요. 뜨겁게 하던 기도도 잘 안 되고, 어린 지체들이 저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고, 마치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았어요.

그동안 잘한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제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처음으로 선교사가 나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훈련을 마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그렇게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드린 후 한 선교단체를 통해 인도하심을 받고 간 곳이 C국이었어요.”

주도권을 넘기고, 두려움을 뒤로하고 헌신 결단

차세은(이하 차): “저는 고등학교 때 처음 교회에 나가 주님을 만나면서 막연히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저의 부족함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주님께 저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앙훈련을 계속 받으면서 복음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한 선교단체 간사로 섬기게 되면서 실제적인 선교에 대해 접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교사로 헌신하는 분들을 직접 보면서 두려워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을 뒤로하고 선교지로 나가는 건 도저히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의 영광이 무엇인지 보게 됐어요. 그 영광에 비해 저의 두려움들은 너무 작았어요. 그렇게 두려움을 뒤로하고 C국 사역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곧바로 응답하게 됐어요.”

– 선교지에서 어떤 사역을 했나요?

이: “저희는 세 가정의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았어요. 각 가정으로 한 명씩 흩어져 하루에 네 시간씩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저희도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이들을 지켜보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나름대로 아이들과 찬양과 율동도 하고 미술활동이나 바깥놀이 등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그 시간들을 채워나갔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만은 않았어요. 처음엔 너무 무료하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어요.

도대체 이 멀리까지 우리가 애를 보러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곳 문화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어요. 게다가 우리끼리 연합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주님은 저의 마음을 예배자리에서 붙들어 주셨어요. 매일 아침 둘이 드리는 예배, 열방을 위한 기도, 그리고 저녁 말씀으로 기도하는 시간까지 나를 부르신 분이 누구신지 말씀해주셨어요. 비록 작은 일처럼 느껴지지만 ‘주님이 바로 이 일로 나를 부르셨구나. 충성해야겠다.’ 생각했죠.”

– 어려운 시간을 주님이 말씀으로 인도해주셨네요.

이: “네. 그러면서 진정한 섬김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됐어요. C국에 선교사로 부름 받은 선교사님들이 기도하고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바로 저의 부르심이었죠. 마치 페이스메이커(Pace maker) 같았어요. 육상에서 메인 선수가 달릴 때 기록을 잘 낼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역할 말이에요. 오직 선교사님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달릴 수 있도록 저를 돕는 자로 부르셨다는 것이 감사했어요. 내가 없는 자리, 오직 주님만이 남는 자리였어요.”

– 세은 자매님은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차: “저는 아이 돌보는 일이 처음이었어요. 단순히 복음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어린아이들 뒤치다꺼리만 했어요. 그러나 적은 일에도 충성된 종이라는 말씀을 붙들면서 나를 찾기보다 주님을 찾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러다 아이들과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말씀도 전하고 주제 말씀도 암송해보고, 열방의 소식들을 가지고 기도해보기도 했어요. 일단 할 수 있는 게 없어 예배를 시작한 거였는데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도 아이들을 사랑하게 됐고요.”

–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차: “대부분 미취학 어린이였어요. 많이 어리죠. 식사기도 정도만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그러면서 열방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됐어요. 물론 숙제로 내준 것이었지만요. 그러다 아이들이 복음을 만나 변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선교사님들이 4박 5일간 선교단체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일정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을 꼬박 돌봐야 하는 일정이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는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곳에 함께 가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과 복음캠프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복음의 내용을 나누고 여러 활동들도 했어요. 처음엔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을까 걱정하셨는데 오히려 부모님들이 쉬는 시간에 와서 아이들을 만나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복음에 집중했어요.”

– 아이들이 어린데도 복음에 집중을 잘했군요.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 “아이들 중 동생을 때리고 심하게 반항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죄에 대한 진리를 나누는 시간에 하기 싫다고 울었어요. 자기가 어떤 죄인인지 고백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러나 결국 그런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았다는 고백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 모두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하기까지 했어요. 그 다음날 그 친구가 새벽 일찍 일어나 말씀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생님, 오늘은 뭐해요? 정말 기대 돼요.”라는 말을 듣는데 ‘정말 성령님이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를 계기로 아이들과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서 관계도 끈끈해졌어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집중도 잘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캠프 이후로는 오늘은 어느 나라 기도하냐고 묻기도 하고 모두 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예배공동체가 된 것 같았어요.”

미취학 선교사 자녀들과 복음캠프를

– 다음세대가 복음으로 일어났군요. 너무 감사하네요. 그런데 앞서 은진자매님이 문화나 연합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었나요?

이: “인종차별 문제였어요. 그곳엔 동양인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우리를 쳐다봐요. 또 남자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동양인 여성을 대놓고 무시했어요. 그래도 저는 그것이 그렇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세은 자매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차: “처음엔 현지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기대도 했어요. 예수 생명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 돌보는 일을 마치고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매번 만나는 남자들이 우리를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들의 눈빛과 말들로 우리를 두고 낄낄거리고 얘기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들이 너무 미워졌어요. 예배 때마다 회개하고 기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버스에서 또 그러는데 마음이 너무 상해서 견디다 못해 내리면서 우리말로 ‘바보!’”라고 크게 소리쳤어요.”

이: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웃었어요.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것도 알지만 속은 시원했어요(웃음).”
차: “그날 기도하는 중에 나에게서는 사랑할 힘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됐어요. 그때부터 구하게 됐어요.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달라고요. 기도하면서도 내가 과연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국은 주님이 그 사랑을 이루어주셨어요.”

– 그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네요.
차: “단기선교사역을 마칠 때쯤 선교사님들과 기도제목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 땅의 영혼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그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해달라고요. 제 마음에 아직 상처가 남아있기도 하고 저의 다음 걸음도 고민하고 있던 때였는데 그들을 향한 기도제목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사랑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 마음을 부어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비록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움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알려주신 주님께 감사해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을 붙여주셨어요.”

나로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가능케하신 하나님re 157 5 1 interview2

–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 “저희에게 현지 언어를 가르쳐준 선생님이에요. 아주 종교심이 깊은 무슬림였어요. 선생님은 학교에 도착하면 반드시 10분 동안 기도하고 수업을 시작해요. 우리는 길거리에서 전도할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캠퍼스가 유일한 전도의 장이라 선생님과 관계를 잘 맺어보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그러나 선생님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어요. 수업시간을 갑자기 바꾸겠다고 연락이 오곤 했어요. 어느 날은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갑자기 수업을 취소하기도 했어요.

화가 나서 학교에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혼을 두고 기도해온 터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다음 수업에 선생님이 약간 우리 눈치를 보긴 했지만 바뀌진 않았어요. 그러나 우리가 바뀌었죠. 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생일이면 선물 주고 성탄절에 밥을 사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해 나갔어요. 그렇게 1년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만나자고 약속했어요. 그러나 별 기대는 안했어요.”

차: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약속을 지켰어요. 선생님이 맛있는 밥도 사줬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아주 쉬운 단어로 “나는 너희를 만나서 정말 기뻤다.”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 손을 잡으면서 진심을 담아 하는 말에 울컥했어요.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이 영혼들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 주님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버스에서 울었어요. 비록 난 부족했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이들에게 기쁨이 됐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숙소에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을 보내줬는데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 우리를 꼭 기억해 달라.’는 답장이 왔어요. 이것이 마치 그 민족이 외치는 음성 같았어요.”

이: “맞아요. 마지막 만남은 잊지 못해요. 저는 비록 그 나라 영혼들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갔지만 이렇게 그 영혼들을 생각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이: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선교지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러웠어요. 저희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으니 어려움이 있어도 잠깐 견디면 됐지만 그분들은 선교지가 삶의 터전인거죠. 저도 지금은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선교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혼들을 섬기고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남는 삶으로, 삶이 예배가 되도록, 그리고 주님이 부르실 때 언제든 열방에 주저 없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차: “그곳에서 만난 영혼들을 잊을 수 없어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 걸음씩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기도로 열방을 섬기고 싶고 열방에 나가 섬기는 자리에 있고 싶어요. 주님이 부르실 때 선교사로 나갈 수 있게 기도 부탁드려요.” [GNPNEWS]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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