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46)
결혼 10년 만에 허락하신 아이의 이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뜻이 담긴 ‘여경’이입니다. 저는 여경이를 낳기 전에도 주님 앞에 내가 얼마나 무능하며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며, 정말 주님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경이를 낳고 한 달 동안은 “내가 이렇게까지 불가능하고, 무능하며 악독하구나.”라는 사실이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인정되었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태어나 부족한 젖을 먹자마자 설사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젖을 먹여야겠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무능하고 불가능한 어미라는 사실에 애간장이 탈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잠든 사이 유축이라도 해 놓으려고 유축기와 씨름할 때는 정말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모든 기대와 의지와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엄마의 자격은 정말 제로요, 엄마의 능력도 완전 제로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산후 우울증의 기로에 서 있던 제게 한 줄기 소망은 ‘이런 내가 죽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십자가’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찬양도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분명 절망이었지만 십자가의 주님 외에는 부를 이름이 없는 것이 더욱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니 이젠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여경이의 어미이기 전에 나를 먼저 주님 앞에서 죄 된 존재로 철저히 회개케 하시고, 어린 모세와 사무엘을 주님께 내어 드린 그 어미들처럼 여경이를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도록 주님은 제 심령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이 10년 만에 낳았으니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키우느냐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아니요, 아니요, 그럴수록 더욱 주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외칠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세우시기 위해 오늘도 여경이와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게하시며 지독하게 죄 된 저의 존재를 보게 하십니다.
우리 여경이는 순종하기 싫은 것은 고집부리며 대답하지 않고, 함께 사는 언니 동생들에게 양보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하며, 아름다운 습관이 들기까지 여전히 자기 부인이 필요한 모습뿐입니다.
하지만 혼이 나고서도 돌아서면 ‘엄마’ 하고 웃으며 안기고, ‘예수님 얘기해주세요’를 귀찮을 정도로 반복하고, 벌써부터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자기를 포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새삼 나는 어떠한가 돌아보게 됩니다.
천국은 결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지!
누군가 가장 최고의 영성훈련은 자녀 양육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지금 저에게는 여경이를 양육하는 이 시간이 나를 세우시고 양육하시는 주님의 최고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여경이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님의 자녀로 저를 세워가고 계십니다.
홍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