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 실패 이후, 유럽연합 포기 시사하며 이슬람 정책 강화
최근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실패 이후, 오랫동안 세속국가를 견지해온 터키공화국이 이슬람국가를 표방하는 종교국가로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현 정부에 맞선 쿠데타 세력 색출을 이유로 각계 각층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하며 강력한 이슬람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또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추진하던 친서방 정책을 폐기하며 그동안 소원했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조금씩 가시적으로 드러나면서 터키 선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선교현장 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
한 현장 선교사는 최근 “터키가 수십 년간 공들여온 유럽연합 가입을 사실상 포기하고 이번 쿠데타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 종주국으로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전세계에 선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이스탄불 광장에 운집한 수십만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수년 전 폐지된 사형제도 부활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미국, 중국, 일본에 사형제가 있다. 우리(터키)도 1984년까지 사형제가 있었다. (사형제 도입에 대한)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결정하면 정당들이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결정권은 의회에 있으며 나는 의회가 사형제를 결정하면 승인할 것이다.”
사형제 부활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다는 이유로 인권탄압과 독재의 공포 정치를 위한 사전 포석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터키의 사형제 도입은 터키의 유럽연합 정회원 가입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사형제도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 가입국 국민들만 누릴 수 있는 유럽 내 무비자 통행법인 쉥겐조약 협정 대상국가에 포함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 가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강경책을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터키의 이번 쿠데타 발생 원인과 향후 터키의 선교적 상황을 전망해본다.
▶ 쿠데타 발생과 배경 = 지난 7월 15일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건국 이후 군부에서 시도한 다섯번째 쿠데타에 해당한다. 1923년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군부의 쿠데타는 1960년, 1980년, 1997년, 2007년에 발생, 터키 사회를 대부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번 쿠데타는 그러나 이전과 달리 발생한 지 불과 6시간 만에 어설픈 해프닝 같이 끝났다. 하지만 쿠데타의 파장은 대규모 숙청과 건국이념인 세속주의로부터의 탈피, 이슬람국가로의 회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쿠데타 발생 당시 해외에 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거리에 나와 반쿠데타 의지를 표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은 탱크를 온 몸으로 막는 등 군부 쿠데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속전속결로 끝이 난 쿠데타 진압 이후, 정부는 쿠데타 주모자 체포, 구금과 함께 쿠데타의 배후라고 지목하는 페튤라 귤렌의 추종자를 전방위적으로 적발, 숙청하고 있다. 페튤라 귤렌 세력으로 통칭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政敵)은 이날 이후 거의 매일 숙청 대열에 오르며, 숙청 규모만도 수만 명에 이른다. 사건 발생 한 달 여만에 진행된 주모자, 관련자 검거 및 피의 숙청치고는 초고속, 대규모다.
이번 쿠데타 관련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적으로 보는 페튤라 귤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그동안 예의주시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명단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이번 군부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쿠데타 주도세력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국민들 사이에 일정 부분 존재하며 이들이 쿠데타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했음직하다. 실제로 에르도안 총리의 부정축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또 터키의 건국이념인 세속주의를 포기하고 이슬람 국가로 회귀하려는 현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세속주의 vs 이슬람주의 = 공화국 출범 이후, 터키는 줄곧 세속국가를 지향해 왔다. 오스만제국의 후예로 이슬람 세계의 리더십 위치에 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터키는 중동의 아랍국가들과 달리 ‘탈이슬람화’를 선택했다. 대신 세속주의를 국가 건국이념으로 내걸었다. 터키의 정치이념인 세속주의는 세속화와는 다르며, 공화주의, 민족주의, 개혁주의, 정부주의와 함께 건국이념 가운데 하나다. 세속주의는 또 교육과 문화 및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과 완전한 분리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터키는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임에도 불구, 이슬람의 정치 개입 불허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타튀르크(1881-1938) 초대 대통령이 가진 건국이념에서 비롯된다. 아타튀르크는 국민 대부분의 종교가 이슬람이지만, 이슬람은 개인의 종교로 여기고 국가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속주의를 국가의 미래로 설정해왔다.
이는 20세기 초 터키 건국 당시의 국제 정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슬람은 7세기 초 중동에서 탄생해 오늘날 세계 두 번째로 많은 신도수를 거느린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 서구사회의 발전과 변모는 이슬람을 능가했다. 이슬람을 고수해온 중동지역이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 세력의 도전을 받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타튀르크는 이같은 이슬람국가의 한계를 목도하면서 터키의 미래를 이슬람에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한 실리주의와 현실주의를 표방한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미래를 세속주의의 틀 안에서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현대성과 효율성이 세속주의보다 뒤떨어진 이슬람주의로는 서구사회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에 따라 터키 건국 초기, 그는 공공부문에서 이슬람을 철저하게 배제하며 국가의 틀을 짜기 시작했다.
정부가 교육부문을 독점하고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 칼리프를 숙청했다. 또 이슬람학교인 마드라사를 폐지하고, 이슬람관련 행사 규제했다. 비성직주의 등을 내걸고 정치와 종교를 완전히 분리하는 세속주의국가를 나라의 근간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아타튀르크의 통치철학은 지금까지 터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2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슬람주의를 중시여기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터키 사회는 경제와 정치 부문에서 큰 어려움을 겪으며 경제문제 해결이 주된 관심사로 여겨지게 됐다.
터키의 경제적 악순환 속에 등장하게 된 현 집권당인 정의발전당(AKP)은 16년째 권력을 장악하며 강한 이슬람국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이후, 세속주의와 충돌한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1932년 발효됐던 공화국 복장법(服裝法)으로 에르도안은 이를 폐지하고 터키 군부 개혁을 시도했다.
터키에서 복장법 폐지는 여성의 히잡 착용이 법적으로 허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터키에서 히잡 착용 문제는 단순히 여성의 의복자유화란 의미가 아니다. 이슬람이 강제하고 있는 히잡착용을 금한 것은 세속주의의 존폐와 맞물려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또 공화국 건국이념인 세속주의의 수호자로 자처해온 터키 군부에 메스를 가해, 더 이상 아타튀르크 정신을 계승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 터키의 선교적 상황 = 터키는 그동안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이슬람교가 아닌 종교를 규제하는 법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 2000년대 중반 말라티아에서 서구 선교사와 현지인 사역자들이 이슬람 청년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에 의해 반세속주의에 따른 이슬람주의가 강화되면서 교회에 대한 핍박은 더욱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김종일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는 한 기독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터키 집권당의 장기집권 움직임과 반세속주의 정책은 기독교 선교에서 커다란 고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며 “향후 그 땅에 닥칠 수도 있는 핍박에 모든 사역자들과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자적인 자세와 이를 위한 한국교회의 기도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NPNEWS]
미니해설
이번 터키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페튤라 귤렌<사진>은 1938년 터키 동주 엘주름에서 태어났다. 이맘(이슬람 성직자)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60년대 터키 내에 세속주의, 공산주의, 이슬람주의 등 이념 갈등이 심화되자 이슬람 세속주의를 가미한 서구식 교육기관을 설립, 히즈멧(봉사라는 뜻)운동을 시작했다.
히즈멧운동은 고비용 양질의 교육을 슬로건으로 하여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재를 길러내 결국 세상을 이슬람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터키 내 정치, 경제, 법률, 교육, 언론, 병원 등에서 활동하는 ‘귤렌 네트워크’가형성돼 왔다.
2008년에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지성 투표 결과 전세계 수많은 학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 이슬람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귤렌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초기에 함께 협력했으나, 몇 년 전부터 두 사람은 정적으로 갈라섰다. 현재 미국 체류중인 귤렌을 이번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터키 정부는 미국 정부에 귤렌 송환을 공식 요청했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