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언어가 안 통해도 기도의 자리에서 연합이 이뤄졌어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김맹관.유향순 선교사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라는 비전을 품은 부부 선교사가 있다. 어려움도 있었다. 선교사 훈련과정에서 낙오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부르신 주님을 의심치 않고 따랐다. 그리고 주님은 이들 부부를 열방 한복판에 세워주셨다. 함께 자리할 수 없어 김맹관 유향순 선교사를 별도로 차례대로 만났다.

– 어떻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셨나요?

“2013년 3월, 한 선교단체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됐어요. 헌신 초기에 당시 3살이었던 아들이 2주 사이에 여러 차례 쓰러졌어요. 눈이 돌아가고 입술은 파래지며 몸이 꼬였어요. 주의 종으로 헌신하려고 하니 ‘믿음의 싸움’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또 한 차례 제 눈앞에서 아이가 새파랗게 질리며 쓰러진 순간 ‘이 아이가 죽어도 장사를 치르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믿음을 주셨어요. 다행히 아이는 곧 괜찮아졌어요. 이 사건으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후 전적으로 주님만 따르는 삶이 시작됐어요.”

– 출발부터 쉽지 않으셨네요.

“네. 선교사훈련을 받으며 연합기도의 자리를 통해 자녀, 아내, 나 자신까지도 주님께 드릴 수 있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을 통해 베드로처럼 자기 최선과 열심으로는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나의 열심, 나의 최선, 자기의,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사형선고가 집행됐고 이제는 그런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실제가 되었어요. 영광이었어요. 그러나 6개월간 모든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중도 탈락이 됐어요.”

– 상심이 크셨겠어요.

“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고 주권자 되신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받게 됐어요. 이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예배하고 복음기도신문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선교단체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있는 곳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믿으며 살기로 결심했어요.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드렸어요. 허락해주시는 재정이 많지 않아 쌀만 겨우 사서 누룽지를 끓여 먹기도 하고 길에서 돈도 주워봤어요.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상황에서 주님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이 없는 나를 발견하면서 ‘어떻게 주님이 나를 이렇게 바꿔주셨지?’ 정말 감사하고 감격이 됐어요. 어느 날 아침에 묵상을 하는데 ‘요셉이 창고를 열어 가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었다.’는 말씀을 강하게 주셨어요. 처음에는 가족구원에 대한 말씀인가 싶었는데 가족구원을 넘어 열방구원을 위한 말씀으로 재확증받고 1년 단기선교를 결정하고 준비하게 됐지요.”

전적으로 주님만 신뢰하는 믿음의 삶으로 인도

– 무엇을 준비하셨나요?

“그때 저와 교제하는 지체들 사이에서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가 화두였어요. ‘21세기 희망, 대학생 선교운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정말 가능한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로마서를 보면서 바울이 ‘하나님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의 꿈에 사로잡혔음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 이것이 우리 편에서 가능한가? 질문, 고민, 기도, 씨름을 하면서 우리로서는 안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시며 그것을 우리의 기도로 이루시기 원하신다는 마음으로 받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결론이 났고, 이 기도에 나 자신을 드리기로 헌신했어요. 순간 그동안 해왔던 저의 모든 고민이 사라졌어요. 한 선교사님께서 먼저 이 비전을 받으시고 몇 명의 지체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기도는 점점 뜨거워졌고 주님 오시는 ‘그날’에 대한 소망이 더해질 즈음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전 세계에서도 이 전쟁은 이슈였어요. 대통령이 사석에서 금식기도를 요청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주님은 그때 저희를 우크라이나로 불러 주셨어요. 주님이 정말 주고 싶으셨던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대한 꿈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저에게 주시려고 그 많은 과정을 허락하셨던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로 떠나다

– 하나님의 마음으로 준비시켜 주셨네요.

“2014년 12월에 가족이 우크라이나로 향했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리더 선교사님께서 2개월 간 한국에 들어가시면서 현지 집시 출신 발로자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분과 함께 우즈고로드 종합대학 벤치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했어요. 주제는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 저는 한국어로 된 ‘복음의 영광’이라는 기도정보로, 그분은 러시아어 번역본으로 기도했어요.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기도정보책이 있으니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며칠 후 목사님께서는 집시 청년들을 데려왔어요. 손짓 발짓과 함께 그림을 그려가며 죄, 복음,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대한 소망을 나누며 기도했어요. 그 기도모임에 초청한 대학생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으나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기도했어요. 기도 자체가 우리에겐 영광이었어요.”

– 언어의 장벽을 뚫고 연합기도가 드려졌군요.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기도하는 한 사람을 세우셨어요. 바로 발로자 목사님이에요. 저희가 함께 기도하는 도중에 그 분의 사위가 중한 병에 걸렸어요. 살아날지 조차 불확실했어요. 목사님이 어려움을 당하셨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사님께 권면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의 주권이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 기도는 전쟁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병원에 찾아가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테니 당신은 열방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분은 순종하셨어요. 발로자 목사님은 4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저와 함께 기도에 참여하셨어요.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결국 승리를 주셨어요. 수술은 잘 됐고 지금은 아주 건강해요.”

– 믿음의 기도가 역사했군요.

“그 영광을 본 이후 리더 선교사님 부부와 발로자 목사님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성령께서 저를 강하게 책망하셨어요. 이분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저 자신에 대해서였어요.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 기도는 하는데 그 부흥을 가로막는 자가 바로 저라고 하셨어요. 무릎 꿇고 ‘제가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회개했을 때 모두가 함께 주님 앞에 무릎 꿇었어요. 우리에게 회개를 받아내시고 ‘주님이 친히 부흥을 이루시겠구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 회개 이후 주님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셨나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 진짜 우리의 꿈이 되자 이 소망을 나누고 싶은 열망이 불일 듯 일어났어요. 마침 제가 사는 지역의 큰 교회에서 주일예배 때 이 소망을 나눌 기회가 주어졌어요. 디모데후서 3장 말씀으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실제 기다리는 삶을 살자고 도전했어요.

예배가 끝나자 젊은 청년들은 제게 눈길도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노인들이 반응하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안아줬어요. 하나님께서 말세에 주의 영을 부어 주실 텐데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청년들은 이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될 거예요. 요엘서의 이 약속을 붙들고 주목하니 모든 세대가 눈에 들어와요. 우리는 반드시 그날을 볼 거예요.”

선교사로 삶을 드렸지만
중도 탈락 뒤 상심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끌어 주셨어요”

기도에 삶을 헌신하게 돼
결국 선교지로 이끄신 주님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정말로 꿈꾸게 되었어요”

– 우크라이나로 장기사역을 결정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1년 사역을 마칠 즈음 16시간 기차여행을 하며 혼자 대사관을 방문할 일이 있었어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이었어요. 하나님의 꿈이 있으니까 선교단체이든 열방 어디든 상관이 없게 됐어요. 어디로 부르시든지 아멘하며 장기사역을 결정하게 됐어요.”

–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세대에 그날의 영광, 주님 다시 오시는 비전이 우크라이나 안에서 구체적인 기도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적어도 저 만큼 이 소망을 품은 현지인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한인 선교사님들과 자녀들 안에도 이 기도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주세요.”
이어 별도로 만난 아내 유향순 선교사의 이야기다.

– 우크라이나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이미 다른 선교단체를 통해 공동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두 가정의 연합은 좀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복음이 제게 실제 되지 않은 영역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선교지의 특성상 교제의 폭도 좁다보니 저에게는 그 시간이 광야의 시간이었어요. 주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었죠. 사실 저의 연약함 때문에 공동체가 함께 몸살을 앓았어요.

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불평, 원망, 분노, 다툼, 자기연민과 우울, 게다가 잘 웃지 않는 제 상태가 공동체에 참 많은 어려움을 주었어요.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역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셋째 아이를 출산하게 됐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많이 어려웠어요. 복음의 진리가 저에게 실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리더 선교사님들의 여러 권면을 받고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잠시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불순종의 죄를 인정하며 관계가 개선됐어요

–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됐나요?

“남편은 계속 저와 함께 진리로 싸워주었어요. 어느 날, 선교사님들이 왜 저를 훈계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님 앞에 서보라.’고 권면해 주었어요. 기도하는 가운데 미움들과 불순종 같은 죄들이 제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남편의 말이 진실한 친구의 충성스런 권고로 받아졌어요. 내 영혼을 사랑하여 지옥에서 건지기 위함임을 깨닫게 됐어요. 그것이 마음으로 받아졌을 때 제 마음이 풀렸어요.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고 감사로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현지인들과 관계가 회복됐어요. 아이들과 관계가 어려워질까봐 매를 드는 것도 하지못했던 저였어요. 그러나 매가 영혼을 스올에서 건진다는 말씀과 사랑하는 자를 징계한다는 말씀에 순종해 필요하다면 아이들을 엄하게 양육하고 있어요.”

– 놀라운 변화네요. 앞으로 계획도 말씀해주세요.

“사실 처음에 지원했던 선교단체 허입이 무산되면서 처음에는 마음이 어려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특정단체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저라는 존재를 부르셨음을 알게해주셨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고, 한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서 믿음으로 섬기며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저의 직임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게 됐어요. 자녀를 사랑과 진리로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어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남편과 한 몸, 한 부르심 안에서 우크라이나를 섬기고 싶어요.” [GNPNEWS]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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