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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족 수십만 명이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대추수를 경험하다

▶ 베트남 소수민족인 몽타냐르족이 종교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정부 단속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박해를 피해 캄보디아로 도피한 모습(출처: ucanews 캡처).
▶ 베트남 소수민족인 몽타냐르족이 종교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정부 단속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박해를 피해 캄보디아로 도피한 모습(출처: ucanews 캡처).
▶ 베트남 소수민족인 몽타냐르족이 종교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정부 단속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박해를 피해 캄보디아로 도피한 모습(출처: ucanews 캡처).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1973년, 세 번째 사역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즈음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수술을 앞두고 계셨다.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지 몰랐다. 두 분 곁에 있고 싶었지만 안식년을 가지면 성경과 찬송가 번역이 지연될 것이다. 우리는 번역 작업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결정했다.

사이공 함락 전의 부흥

기숙사 사감을 맡고 있던 다랏 스쿨이 방학하자 나는 두 아들과 함께 베트남에 돌아와 성경 번역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했다. 주 중에는 화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반적인 일들로 땀 흘렸고 주일에는 다섯 곳에서 설교했다. 쁠레이꾸 교회는 성장하여 1972년 상반기에만 600명의 성도가 새롭게 등록했다. 여전히 주일 오후에는 마을로 전도단을 보냈고 그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둘째 주는 쁠레이꾸 근처의 크리스찬 마을 모든 교회에 들어가 설교했다. 셋째 주는 쁠레이꾸 나병 치료소에 있는 200여 명의 크리스찬 난민들을 위해 설교하고 성찬을 함께 했다. 넷째 주는 째오 레오에 가서 설교했는데,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앞뒷문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난 1년 동안 1000명의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왔다. 그때가 추수기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다섯째 주는 냐짱 신학교의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우리는 사이공 기지에서 성경번역 정리 작업을 했다. 인쇄일이 다가오는데 인쇄용지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주님은 미국에 있는 한 사람을 통해 재정을 주셨다. 이런 기적으로 안식년 귀국 이 주일 전에 모든 번역과 검증 작업이 끝나고 홍콩에 있는 연합성서공회에서 인쇄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1974년 5월, 귀국을 준비하면서 계속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오이와우 할아버지였다. 14년 동안 복음을 거부하던 할아버지는 놀랍게도 우리가 귀국하는 날 아침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일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베트남을 떠났다. 1958년 입국한 후 15년 만이었다.

베트남 그 이후

1975년 2월 16일, 쟈라이 신약 성경이 쁠레이꾸 교회에서 영광스럽게 헌정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산 지대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떨어지기 전에 속히 성도들의 손에 들려졌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항복하고 베트남은 공산주의의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선교사들은 모든 쟈라이 지역에서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수만의 베트남 사람들과 부족민들이 탈출했고, 다른 사람들도 보트 피플로 뒤를 따랐다.

나는 미국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산 속의 부족들과 소식이 두절된 채 10년이 지났다. 1985년, 200명의 소수부족이 캄보디아 태국 국경을 넘어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월맹이 고산지대를 정복했을 때 그들은 투옥과 구타, 폭압적인 대우를 피해 정글로 도망쳤다. 그곳에 모인 다섯 부족(고호, 몽, 라다이, 쟈라이, 바나르)이 ‘데가(DEGA)’ 정글 국가를 이뤘다. 몽타냐르족으로도 불리는 데가족은 인도차이나반도의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30여 개의 종족에 이르는 산지족으로 1060년대에 100만 명, 현재는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데가족 가운데 1971년의 부흥이 계속되어 수천 명의 크리스찬들이 생겼다. 정글을 탈출한 200명의 ‘DEGA’ 난민들은 필리핀의 미국 난민 캠프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부는 우리에게 그들의 미국 정착을 위한 영어와 문화 훈련을 요청했다. 10년이 넘는 동안 베트남에서 준비한 성경책과 찬송으로 난민캠프에 있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은혜였다. 이후에도 조금씩 쟈라이 사람들이 탈출해 왔다.

그들은 쟈라이 족 마을의 교회 소식을 전해 주었다. 1975년 7000명에서 1985년에는 1만3000명으로 늘어났고 곧 2만7000명에 이르렀다. 당시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언어장애인들이 치유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기적이 너무 놀라웠기에 그들의 설교는 매우 강력했다. 이같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1만3000명이 교회로 돌아왔다. 1972년에 5만3000명이었던 크리스찬이 1992년에는 24만8000명이 되었고, 그중 6만2000명은 쟈라이족 신자들이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 <끝>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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