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1971년 가을 냐짱(Nha Trang)의 신학교에도 부흥이 시작됐다. ‘부흥의 역사’ 과목이 추가로 신설되면서 그들은 매일 아침 5시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12월 3일 금요일. 수업을 위해 117명의 학생들이 교실에 모였다.
한 학생이 인도네시아의 부흥에 대한 리포트를 발표한 후 바로 지금 베트남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학생들은 한 명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학생이 흐느껴 울며 자기 죄를 고백하자 갑자기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교실 안은 기도의 열기로 뜨거웠다. 하나님의 영이 학생들 모두에게 임했다.
지나가던 학생들도 그곳에 임한 주님의 영광에 사로잡혔다. 학생들은 상대를 찾아 미움, 속임, 시기, 도둑질한 것을 고백했다. 여기저기 서너 명씩 모여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모임은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죄에 대한 깊은 회개 이후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큰 위로가 뒤따랐고 회복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부흥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런 일들이 나타났다.
부흥의 확산
냐짱의 부흥은 곧 다랏의 고원 도시로 이어졌다. 신학교에서 부흥을 맞이한 5명의 꺼호(KoHo)족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귀향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나누었다. 숨겨진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하심을 받으면 성령충만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명이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십대 청소년이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부모님을 속인 것과 또 다른 죄들을 고백했다. 어떤 학생은 찬양하기 시작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재하기 시작했다. 죄로 인해 심령이 상한 그들은 서로 기도를 요청하고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갔다.
다음날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자의 마을로 돌아간 사람들은 이 일을 증거했고, 그들의 고백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다. 믿음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젊은 청년이 아픈 자, 육신적으로 문제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고 귀신이 쫓겨나갔다. 꺼호 청년들이 가는 곳마다 약하고 냉담한 교인들이 죄를 고백하고 회복되었다. 어떤 꺼호 신자는 감춰놓았던 50만 피아스타(약 미화 2000불)의 십일조를 드리기도 했다.
부흥의 여러 가지 사건들
한 달 후 전국 부족 회의가 다랏에서 열렸다. 그곳에서도 역시 주님의 임재가 일어났다. 다랏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이 고향으로 흩어졌다. 이내 부흥의 불길이 산지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마다 성령 충만이 임했다. 이후 3년 동안 9개 산지 부족에서 2만3000명이 주께로 돌아왔다. 한 부족에서 1만 명이 회심하는가 하면 몇 주 전에도 신자가 없던 동네에 교회가 세워지기도 했다.
한 마을에서는 무당이 그리스도께 돌아왔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사탄의 공격으로 무너진 이들이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다시 일어났다. 공산군의 포로가 되었던 베트남 군 소령은 그곳에서 십자가의 꿈을 꾸고 기적적으로 탈출해 그의 모든 집안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상들을 불태웠다. 이것은 베트남의 고산지대를 휩쓴 부흥의 흔적의 일부다. 성도들은 매일 아침에 모여 기도했고 하나님은 기적과 표적으로 응답하셨다. 이 부흥은 공산주의자들이 베트남을 장악한 후에도 한참 지속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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