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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수하기 전에 월남에 밤이 찾아올 것인가?”

▶ 쟈라이족을 위해 번역된 성경 요한복음(world bibles 캡처)과 쟈라이족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united bible societies 캡처).
▶ 쟈라이족을 위해 번역된 성경 요한복음(world bibles 캡처)과 쟈라이족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united bible societies 캡처).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으로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1962년 10월에 미 공군은 베트남에 공군을 파병했으나 이듬해 베트남 육군은 첫 번째 큰 패전을 경험했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베트남 전쟁은 치열해져갔다. 1962년 8월21일, 응오 딘 지엠 정권은 정부를 전복하려는 공산 분자들의 아지트가 되어 있는 불교 사원을 공격했다. 11월 1일 군사 혁명으로 지엠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 암살되었다. 20일 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린든 존슨 부통령이 그의 뒤를 이어받았다. 1964년 2월 7일 미국은 모든 군속들을 베트남에서 철군시켰다.

안식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몇 주 후면 태평양을 건너 전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그리로 보낼 것을 믿고 있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위험 속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 5년간은 쉬운 일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성령충만을 구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베트남에 전쟁이 사라지고 자유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그 길밖엔 없었다.

치열해져가는 베트남 전쟁

1964년 7월에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홍콩을 거쳐 사이공으로 들어오는 길에 마주친 통킹만(東京灣)의 짙은 회색 강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행복한 감상은 곧 사라지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위험을 떠올렸다. 1961년부터 아내는 바깥출입을 삼가 했다. 만약 사고를 당하더라도 둘 중 한명은 남아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사야 8:13절 말씀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불과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통킹만에 정박해 있던 미군함이 공격받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베트남 북쪽 군사기지를 폭격하였다. 8월 7일, 미의회에서 ‘통킹만결의안(Tonkin Gulf Resolution)’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베트남에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에 돌입했다. 만약 선전포고 후 공격했다면 공산권 국가들까지 전쟁에 참여케 함으로써 3차 대전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쁠레이꾸에 돌아오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정치 소요와 사회적 격변, 예상할 수 없는 위험한 군사 작전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월남이 함락될 것 같았다. 패망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언제 패망하느냐는 시간 문제인 듯 했다.

우리는 베트남에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쟈라이 부족들이 복음을 듣고 그들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을 원할 뿐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대한 강한 부담이 있었다. 쁠레이꾸에서 첫 해에 그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언어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팜 쑤언 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처음으로 쟈라이 마을로 들어 온 베트남출신 선교사였다. 그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쟈라이어로 번역했다. 델타 지역출신인 쯔엉 반 상 목사가 띤 목사의 뒤를 이어 성경을 번역했다. 상 목사는 성경 번역을 계속했고 우리는 쟈라이족이 성경을 갖고 싶어 하도록 직접 말씀을 가지고 찾아갔다. 그들을 직접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커 우리의 번역작업은 지연됐다.

베트남 출신 선교사와 성경번역 시작

나는 1964년부터 4년 동안 쟈랴이어 연구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기간에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씨를 심었다. 하지만 항상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한복음 9장 4절의 말씀을 붙들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쟈라이 족 사이에 씨를 뿌리기 위하여 더 열심히 일했지만 밤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추수하기 전에 월남에 밤이 찾아올 것인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와 쟈라이 족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밖에 없었다. <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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