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김종일 칼럼] 무슬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 편지(12): 복음의 의미와 가치

Unsplash의Caleb Minear

밖에서 보는 이슬람(122)

앗쌀람 알라이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평안을 기원합니다. 오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000원씩 공짜로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무시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매일 1000원씩 주는 이 사람에 대해 점차로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찮은 1000원밖에 안 되는 돈이었지만, 이제는 매일 1000원을 받을 것에 기다림조차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매일 공짜로 1000원씩 받은 얘기 혹시 들어 보셨어요?” 이 사람은 이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대화의 소재로 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까?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복음’은 오늘 이 사람이 흥미로 얘기하는 1000원짜리 정도와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의 기쁜 소식은 어떤 이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기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기쁜 소식’을 뜻하는 복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이 ‘복음’은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사이를 보시면, 초대 교회 시대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누었던 복음의 핵심이 언급되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서로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복음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죄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인간의 죄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믿는 모든 사람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은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 사랑과 우리를 향한 구원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들이지만, 오랜 기간을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수많은 죄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해 벌 받을까 늘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16세기 가톨릭 신부였던 루터도 자기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중세 교회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으며, 지은 죄를 대신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민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 해결된 것입니다. 루터가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은 “행위”는 구원받은 자의 열매이지 구원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의 오류는 선행을 열매가 아닌 구원의 조건으로 삼은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17절).

여기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의 죄가 대신 속죄가 되었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의”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완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문제에서 인간이 무엇을 더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의’를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루터의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해결해 준 것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완전한 복음을 주셨다면 ‘구원’이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인 은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 그 구원을 얻는 수단인 믿음도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복음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에베소서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명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삶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인간은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 율법 아래 우리의 죄의 본성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은 우리가 율법 아래 죄를 깨닫고 절망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이해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절망 앞에서 구세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 아래서 깊이 죄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복음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게 되고, 죄가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앞에 서지 않는 어떤 사람도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복음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이제 고작 ‘1000원 받은 얘기’가 아니라 ‘구원받을 기쁜 소식 얘기’로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이 복음(기쁜 소식)을 처음 들은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초청하심에 믿음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는 길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예수님’을 구세주(메시아)로 믿겠다는 믿음의 결정 하나만으로 구원받고 천국 가시겠습니까?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우리의 남은 삶을 그분이 원하는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복음기도신문]

kim ji

김종일 | 전)국립 앙카라대 교수, 현)아신대(ACTS) 중동연구교수, 한국외대, 장신대 신대원, 국립 이스탄불대 역사학 석사 및 박사 |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1)무슬림 이해하기’, (2022, 라비사북스). ‘벌거벗은 세계사(경제편)’, 공저, (2023, 교보문고), ‘하나님의 운동(Motus Dei)’, 공역(2024, 라비사북스), ‘밖에서 본 이슬람, (2)이슬람 이해하기’, (2024, 라비사북스, 근간).

1023book scaled min

[관련기사]
[김종일 칼럼] 무슬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 편지(11): 편견을 깨면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heaven-g776876440_1920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6)
20241019_John
[GTK 칼럼] 사도 요한(4) : 고난을 기꺼이 감당한 사랑의 사도
1018 lausanne
이스라엘-가자 전쟁 종식 위해 ‘화해’가 시급하다
unsplash on noah-silliman
[TGC 칼럼] 나는 혹시 두 마음이 아닐까?

최신기사

50년 된 발전소 돌리는 쿠바…수백만명 덮친 정전사태 사흘째
죄가 제거된 마음의 기쁨
[김종일 칼럼] 무슬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 편지(12): 복음의 의미와 가치
우리의 비욘드 유토피아, 영원한 본향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6)
[GTK 칼럼] 사도 요한(4) : 고난을 기꺼이 감당한 사랑의 사도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yh-AKR20241020022051009_01_i_P4
50년 된 발전소 돌리는 쿠바…수백만명 덮친 정전사태 사흘째
20220718 JOY
죄가 제거된 마음의 기쁨
caleb-minear-JdIGwS4A-F0-unsplashre
[김종일 칼럼] 무슬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 편지(12): 복음의 의미와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