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6:2~6
하나님을 예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 혹은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인가?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 중에 특별히 감동이 되거나 경외심을 갖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이 불변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런 속성들은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들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나님에 관한 이런 속성들 외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이다. 하나님의 모든 속성 가운데 거룩은 그분을 가장 독특하게 묘사하는 것이며, 실제로 그것은 그분의 다른 모든 속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거룩(holiness)’이라는 단어는 그분의 구별되심, 유일무이하심 즉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거룩은 하나님이 완전하고 온전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속성의 핵심으로서 이것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영원하시도다, 영원하시도다, 영원하시도다,’ ‘신실하시도다, 신실하시도다, 신실하시도다’ 또는 ‘지혜로우시도다, 지혜로우시도다, 지혜로우시도다,’ ‘전능하시도다, 전능하시도다, 전능하시도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분에 대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계 4:8)이라고 말했다. 거룩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속성 중 으뜸이다.
출애굽기 15장 11절은,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 대답은 물론 거룩하신 하나님과 비길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거룩은 너무나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속성이므로 시편 111편 9절에는,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이름이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거룩이 하나님의 인격의 너무나 근본적인 속성이어서 거룩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들 중의 하나라는 의미이다.
절대적인 거룩함의 기준
하나님은 거룩의 기준을 모방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 자신이 기준이시다. 그분은 어떠한 실수나 잘못을 범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판단의 오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은 어떠한 옳지 않은 일도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거룩은 변함이 없다. 그분은 언제나 거룩하시며, 흠이 없으시며, 실수가 없으시며, 무죄하시며, 온전히 의로우시다. 또한, 완전히, 절대적으로, 무한히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전에 거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한다. 천사들이 범죄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즉시 그들을 그분의 존전에서 쫓아내신 후 그분의 임재로부터 분리된 장소를 예비하셨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결국은 마귀와 그의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그 장소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4절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문제는, 하나님의 거룩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완전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온전한 거룩이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베드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라는 말로 이 진리를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라는 동일한 진리를 말씀하셨다.
이것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에게는 통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본성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진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결코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완전함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거룩함과 의의 전가(imputation)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러한 딜레마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신의 완전한 의(righteousness)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전가(imputed)되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속하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그분의 의로 옷 입게 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은 우리 자신의 쓸모 없는 의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우리가 소망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사실, 아무리 적은 부분일지라도 우리 자신의 의를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이 없다. 인간의 최고의 선행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온전한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신다(빌 3:8~9). 오직 하나님의 의로써 우리는 그분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하나님은 온전한 의(우리 자신의 의가 아니라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를 의롭다 하신 후에는 우리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며, 이를 통해 우리를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가신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우리의 생애가 다하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즉시 영화롭게 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롬 8:29; 고후 3:18; 요일 3:2).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부분적이나마 그분의 피조물이 참여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 – 거룩을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온전한 거룩함이 우리 안에 이루어가도록 도우신다. 이것은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이루어가시는 그분의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다.
거룩함과 죄를 미워함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성품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실 수 없다. 그분은 온전히 죄에서 떠나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아모스 5장 21~23절은 죄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예배의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희생과 예물, 성회와 음악을 싫어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분이 그것들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요점은,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예배는 어떤 예배이든 미워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당신의 간증을 더 흥미 있게 만들거나 혹은 그분의 은혜를 더 위대하게 보이게 만들지라도 당신이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신다(롬 6:1~2). 하나님은 결코 죄를 좋게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억지로 당신이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으신다. 또 당신의 죄를 그분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를 범하도록 용인하시지는 않는다. 또한, 누군가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성취를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그 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를 범한 그 피조물에게 있다. 하나님은 결코 누군가를 죄를 짓도록 하나님 편에서 유혹하거나 이끌지 않으신다. 또한 그분 자신이 죄에게 유혹을 받지도 않으신다(약 1:13). 죄는 그분의 혐오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거룩을 사랑하신다. 시편 11:7은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하나님의 온전한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의 근본이다. 시편 96:2~6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이 시편은 예배의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중심 구절인 9절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Worship the LORD in holy attire; Tremble before Him, all the earth). ‘거룩한 옷(holy attire)’이란 영적인 의미로 사용된 표현이다. ‘그 앞에서 떨지어다’라는 표현은 경외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사실, 영어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은 이 표현을 ‘오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여호와를 경배하라(O worship the Lord in the beauty of holiness)’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배자의 경외심을 자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온전히 거룩하신 분의 임재 앞에서 우리가 너무나 합당치 않은 자라는 깨달음에 압도될 때, 거기서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이 우러나온다. 다음 칼럼에서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이 왜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는 그러한 두려움이 왜 그렇게 결여되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60808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