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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전쟁, 자유와 독립 위한 대(對) 러시아 지하드(聖戰)

체첸 민족통합성의 근원은 ‘이슬람 이념’에 뿌리를 둬
풍부한 원유.가스 자원 등 지정학적 요충지 확보 쟁탈

[GPNews] 21세기 현재 지구촌 분쟁지역 중 하나로 알려진 체첸은 러시아 남부 접경 산악지대의 작은 무슬림 국가이다. 현재 체첸자치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친러시아 정권이다. 그러나 반러시아 체첸세력은 산악지대에 이츠케리야 공화국을 별도로 수립하고, 적극적인  반러시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체첸자치공화국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이츠케리야 체첸공화국에서는 ‘조하르시’로 개명해 사용하고 있다. 이는 체첸 독립의지를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체첸공화국과도 대립하며 자국이 정통 체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체첸 게릴라들은 이에 따라 스스로를 ‘이츠케리야 전사’라고 부르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를 계기로 두다예프 체첸 대통령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뒤, 1994년부터 두 번에 걸쳐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후 러시아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아직도 체첸반군은 그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체첸 전쟁의 원인, 식민국가에 대한‘지하드(성전)’ =
체첸민족의 관점에서 체첸 전쟁은 수백 년 동안 그들의 염원이던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려는 역사적 투쟁이다. 정치 경제 문화적 요인 중 무엇보다도 체첸의 독립 이유를 그들의 독특한 종교문화와 역사적·사회적문화를 통해 발견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이슬람사회라는 배경으로 체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첸이 언제 이슬람을 수용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7세기에 이슬람을 수용한 이웃인 다게스탄 민족에 의해 16세기 이후에 받아들였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체첸이 급격하게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계기는 러시아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18세기부터 러시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서 체첸과 다게스탄 민족이 거주하는 북카프카즈에 군사적 원정을 감행했다.
체첸 등 북카프카즈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러시아는 이 지역으로의 진출을 위해 페르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등 카프카즈 지역의 강력한 패권 국가들과 일대 대충돌이 불가피했다. 러시아는 이 국가들과의 경쟁을 위해 체첸 등 북카프카즈 지역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 관계로 인해 제정러시아는 체첸에 대한 식민주의 통치를 강화해 나갔으며, 역으로 체첸은 반식민주의, 반봉건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러시아에 항쟁하였던 것이다.
19세기의 카프카즈 전쟁은 체첸의 반(反)러시아, 반러시아정교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해주는 사건이 되었다. 이때 체첸 민족은 지하드(성전.聖戰)의 형태로 러시아에 대항해 나간다. 이 시기에 체첸민족에 의해 선포된 지하드는 특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성전의 개념이 북카프카즈에서 선포된 사건은 제국주의 점령지역에 대해 피지배민족이 종교이념으로 강력한 제국주의국가와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형태로 단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체첸으로서는 이슬람 이념으로 민족통합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체첸의 민족통합성은 이슬람이 그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원리인 이교도를 향해 지하드를 선포함으로써 러시아와 장기간의 투쟁이 가능하게 되었다.

▷ 정치.경제적 원인 = 체첸 민족들은 또 소련연방시기에 집단농장화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1944년 스탈린 통치 때에는 중앙아시아, 즉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으로 강제 이주가 있었다. 체첸 민족이 나치 독일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 스탈린이 체첸 민족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떄 강제이주 된 45만 명 중에 이주와 정착과정에서 8만 명이 사망했다. 연해주에 살고 있던 18만 명의 고려인이 단지 일본인들과 내통의 가능성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한국의 역사와 동일한 고통을 경험한 것이 체첸 민족이었다. 체첸 민족은 1957년에 후르시초프의 해빙 시대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이곳에 이주하여 정착해 살던 러시아인들과 땅 소유 문제 등으로 많은 갈등을 가졌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독립을 선포했던 두다예프는 체첸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외치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1차 전쟁으로 러시아군 폭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2차 전쟁이 1999년 10월 이래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번의 전쟁으로 체첸의 민간인 수만 여명이 희생되었고, 러시아군 또한 1만 4천명에서 1만 6천 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체첸의 난민은 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태에서 체첸의 독립을 허용한다면 도미노 이론으로 러시아연방 내 다른 공화국에서도 독립 요구가 거세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정부가 체첸의 독립을 허용할 수가 없다고 보고 있다.
또 경제적 원인으로는 체첸을 통과하는 원유 송유관에서 발생하는 수송 이익이 엄청나서 러시아정부와 체첸이 이를 포기하기가 어려워 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경학적 원인이 있다. 또 체첸의 절반은 카프카즈 산맥에 걸쳐 있고 절반은 넓은 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토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옥토라는 “체르노젬”(흑토지대)으로 뒤덮여 있어 농작물 생산에 아주 좋은 지역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체첸 민족의 의지가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져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GN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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