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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을 사이에 두고 가족들과 헤어지다”

베트남 선교 열전(7) – 베트남 전쟁 전후시기 선교 이야기

re_132_4_1 vietnam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병으로 인해 견고해진 관계

1962년 3월 하순 경, 건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현지인 사역자 ‘밉’과 부온메투옷의 나환자 치료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총으로 정글의 닭을 8마리나 잡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6마리는 밉에게 주고 2마리는 집으로 가져와 아내의 요리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날 밤 갑자기 오한이 나며 고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말라리아 같았다. 약을 먹고 잠들었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황달이 시작되었다. 간염이었다.

나의 몸은 죽을지 살지 모를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소식을 들은 아델 박사가 진찰 후 충분한 휴식과 시간만이 답이라고 했다. 쟈라이 사역자들과 집사들도 찾아왔다. 그들은 ‘이 백인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날 것인가’하며 수시로 찾아와 기도해 주었고, 그 병으로 인해 우리 사이는 아주 견고해졌다. 그들은 나의 진실함을 알아주었고 나는 그들의 위로와 기도 속에 점차 회복되었다.

5월에는 다랏(Dalat)에서 선교사 수련회가 있었다. 몸이 아팠지만 모임을 놓칠 수 없었다. 미국에서 다녔던 교회의 윌리엄 목사가 강사로 오기 때문이었다. 수련회는 우리에게 영육간의 회복을 주었다. 전쟁이 치열해지고 베트콩들에 의해 자주 도로가 봉쇄되는 위험한 시기였지만 동료 게일과 나는 자원하여 윌리엄 목사를 사이공까지 배웅하는 역할을 맡았다.

베트콩들의 매복

우리 가족과 게일의 아내 이렌느는 부온메투옷으로, 우리는 사이공으로 각각 출발했다. 도로를 내려오는 길에 언덕 위에 베트콩들이 기관총을 설치해 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이고 있을 때 한 트럭이 사이공으로 가겠다며 막무가내로 차를 몰고 올라갔다. 우리도 뒤를 따라 가기로 작정했다.

살벌한 현실과 달리 풍경은 아름다웠다. 왼쪽은 푸른 남지나 해(海)였고, 길가에는 야자수들이 창창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만약 총에 맞아 죽거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면…. 죽기에는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게일은 앞 트럭과 함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멀리 간격을 두고 달렸다. 우리 차로는 총알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고개를 넘어설 때 마다 기관총 세례를 받지 않고 지나면 그제야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옵소서. 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산 정상에 이르자 우리는 모두 숨을 죽였다. 그 지점이 베트콩이 매복할만한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오늘이 죽기에 최적의 날인가? 아니지. 아직 죽을 수 없다.” 정상을 지나 고개를 넘어 전속력으로 달렸다. 먼저 간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멀리 논두렁에 처박혀 불타는 차 한 대가 보였다. 그러나 우리 앞에 지나간 차는 아니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기도할 뿐

윌리엄 목사님을 사이공 공항에서 귀국시킨 후 우리는 부온메투옷을 향해 차를 돌렸다. 늦은 시간에야 핼쑥해진 모습으로 집에 도착했다. “베트콩이 치료소로 가는 길을 봉쇄했어요.” 거기에는 우리 가족과 선교부 모든 자원이 있었다. 아내는 임신 5개월째였다. 게일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그날은 1962년 5월 26일이었다. 큰 길 끝에 베트콩들이 크고 육중한 나무를 잘라 바리케이드를 해 놓았다. 풀 돗자리에 숯으로 쓴 큰 글씨가 보였다. “‘위험-지뢰’ 이 길을 뚫는 자는 디엠정권의 하수인으로 알고 나중에 목이 잘릴 것이다.”

베트콩들은 도로에 지뢰를 설치해 놓고 얇은 철선으로 뇌관을 연결해 폭발하게 만들어 두었을 것이었다. 건너편에 있는 가족을 염려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며 기도할 뿐이었다. 우리는 우선 군부대를 찾아가 가족들을 위해 내일 그 곳을 넘어가겠다고 했다. 그들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도움을 줄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간염과 수면부족으로 피로를 느꼈지만 집에 가서도 기도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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