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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700명의 나병환자를 돌보며 복음을 전하다”

▶ 베트남 나병환자들의 모습(출처: crinvietnam 등 캡처)
▶ 베트남 나병환자들의 모습(출처: crinvietnam 등 캡처)
▶ 베트남 나병환자들의 모습(출처: crinvietnam 등 캡처)
베트남 선교 열전(6) – 베트남 전쟁 전후시기 선교 이야기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쁠레이꾸의 나병 진료소

가하오가 순교한 후 우리 부부는 함께 밖에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일이 생기면 한 명은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나는 겨우 6개월 동안 배운 쟈라이어 실력으로 쁠레이꾸 교회의 사역을 맡게 되었다. 그때 한 사역자의 요청으로 나병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그 병은 이전에 성경에서나 보았던 것이었다.

부온메 투옷의 나병환자 요양원에 인력을 요청했지만, 그곳도 인원이 부족해 우리가 직접 환자들을 돌보아야 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쁠레이꾸로 오는 선교사 간호원들의 도움으로 나병 환자 클리닉을 개설하게 되었다.

첫 번째 진료소는 나의 트럭 뒷칸이었다. 그러나 입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나중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나병 환자들이 스스로 간단한 구조의 건물을 세워나갔다. 매달 28일 동안 순회 진료를 하고 700명에 가까운 나병환자들을 돌보며 흔히 말하듯 한 손에는 의술을, 한 손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베트남에 왜 왔는가를 한시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병원 사역이 늘어나자 쟈라이족 크리스찬 밉(Mip)이 스탭으로 참여했다. 인정사정없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 진료를 하는 사이 밉은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가르쳤다.

때때로 오후에 기력이 소진될 때가 있었다. 덥고 목마르고 배고팠다. 나는 겨우 25살이었다. ‘미국에 있었더라면…’. 물집이 잡힌 환자의 다리에 침대 시트로 만든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생각은 고향 마을로 달려갔다. 매듭을 마무리 지을 때 내 안에서 음성이 들렸다. “그것은 나의 손이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그것을 필요로 할 때만 너희의 것이다.” 아마 환자들은 젊은 미국 선교사가 왜 울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그린베레(미 육군 특수부대)를 보내 베트콩의 마을 공격에 대응할 민병대를 훈련시키기로 결정했다. H-21 헬리콥터 중대가 쁠레이꾸로 날아왔고, 우리는 200명의 군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영어와 베트남어, 쟈라이어로 설교한 후 작전 중에 전사한 헬리콥터 조종사 찰스 할로웨이(Charles Holloway) 주임 상사의 장례 예배를 드렸다. 이후 1963년에 가진 안식년 기간에 나는 본국에 돌아가 그의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첫 전사자 장례 예배

“… 그동안 편지로 뭔가 말하는 것이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에게 무슨 위로가 될까 싶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 한 신문에 난 사설을 읽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남편분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부군이 전사한 후 1962년에 베트남인과 부족민들 사이에 2000명의 세례자가 나왔습니다.

날로 더해지는 공산 게릴라들의 살해와 공격 앞에 할로웨이 상사와 같은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미 모든 선교사들은 베트남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2000명의 영혼들 사이에 당신 남편의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나님께 사용되었습니다. 부인과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큰 희생을 치르고도 보답 받은 것이 별로 없는 여러분들을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나는 종종 이사야 8:13절 말씀을 되새겼다. “만군의 주 그 분을 거룩하게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움이 되게 하며, 그로 너희의 무서움이 되게 하라” 나는 돌아보아야 할 아내와 두 아들이 이 땅에 있었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에는 위축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나를 결코 두렵게 하지 못했다. 그의 일을 이루지 못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삶을 향한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내게는 육체의 죽음보다도 더욱 힘든 것이었다. 나의 마음은 온통 하나님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그 분의 구속 계획에 집중되어 있었다.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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