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 뷰즈 인 북스
한국은 이제 의식주의 문제를 벗어난 지점에 와 있다. 6.25전쟁 직후는 먹을 것이 없는 생존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삶의 질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부유한 나라로 탈바꿈했다. 그저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앞이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걷는 것이 미덕인 시간을 지나 생각의 전쟁터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생각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잠시 멈춰서 고민해 보길 권한다.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의 영적 사고는 오래된 고전이지만 인간의 본질에 대한 부분을 다루다 보니 지금 우리에게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복잡하고 여러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얻는 경쟁 한가운데 있다. 저자는 ‘하늘과 땅의 큰 경쟁은 우리가 사람이라고 부르는 가련한 벌레의 감정에 대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 감정이다.
사람은 내면적 존재로 지음 받았기에 마음의 움직임이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의무나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세상은 우리의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어 우리의 감정에 손을 올리게 하고 지성으로 하여금 온 영혼이 세상의 이익을 향해 관심을 쏠리게 한다. 이 전쟁터에서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로 인해 우리의 능력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또한 죄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죄의 가공할 만한 힘과 죄에 뒤따르는 대가지불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죄의 내용에 빠져들게 만든다. 죄의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얽매이게 끌고 가버린다. 죄의 결과를 묵상하지 못하게 함으로 결국 저항할 힘을 잃고 죄 앞에 번번이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감정이 영적인 사고로 향하게 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묵상하는 생각의 길을 새로 낼 때 가능하다. 생각도 습관이다. 생각했던 그 길을 다시 가게 된다. 마치 압정으로 우리의 생각을 고정하는 것처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실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향하도록 고정시켜 놓는 것이다.
영적인 감정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도 사라진다. 그런 감정이 우리의 사고의 길 즉 세계관을 구축할 수는 없다. 결국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우리의 생각을 영적인 사고로 고정하여 그것을 추구하는 자리까지 끝끝내 나아가는 것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늘에 속한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매일 구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영으로 사고하는 것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영적 사고만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과 그분 안에서의 안식을 가져다준다. [복음기도신문]
최현정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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